[포켓몬 고]│① 속초기행

2016.07.26
속초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건 오전 8시였다. 덕분에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지만 잠이야 가는 동안 자면 될 일이었다. “[포켓몬 고] 기사를 쓰려면 어쨌든 속초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회의에서 취재에 대한 사명감 반, 사심 반을 담아 강력하게 주장한 끝에 얻어낸 출장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버스 좌석은 매진이었고, 운전기사님의 표정도 어쩐지 온화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은 타자마자 버스 안을 둘러보며 “이 중에 절반은 [포켓몬 고]를 하러 가는 이들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웃기도 했다. 한숨 푹 자고 눈을 뜨면 한국의 태초마을, 속초에 도착해 있겠지. 한국과 더불어 [포켓몬 고]를 할 수 없다는 중국과 대만·쿠바·이란·미얀마·수단의 국민들이여 미안합니다. 나는 잠시 서울을 떠나 포켓몬의 땅으로 갑니다.

문득 잠에서 깬 것은 도착 예정 시각으로부터 20분 전쯤이었다. 언제 포켓몬이 나타날지 몰라 켜놓은 [포켓몬 고] 앱에서 드디어 포켓몬이 등장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창밖으로는 ‘포켓몬 고 가능 지역’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휴대폰을 이리저리 돌려 보니 화면 안에 뿔충이가 나타났다. 몬스터볼을 던지는 방법이 손에 익지 않아 몇 개를 낭비했으나, 속초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몇 개의 포켓몬들을 사냥한 끝에 이미 레벨 3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마주한 속초의 얼굴은 포켓몬을 쫓아 온 여행자의 마음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버스터미널 내 편의점에는 ‘포켓몬 서식지역’, ‘속초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험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하세요’라는 문구가 위화감 없이 붙어 있었고, 과일주스 가게 앞에는 ‘태초마을 입구’임을 알리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잠시만요.” 길을 가다 잠깐 멈춰서 포켓몬을 잡는 사이, 롱보드를 타고 휴대폰을 손에 쥔 여성들이 옆을 지나갔다.

“오늘은 평일이니까 한산한데, 주말에는 손님이 진짜 많이 늘었어요. 평소보다 30% 정도?”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횟집의 주인아주머니는 [포켓몬 고] 이후의 분위기에 대해 묻자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증언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트레이너를 환영한다”는 식의 글귀가 붙어 있고, 심지어 동서고속철 사업이 확정됐음을 알리는 현수막에도 아무 상관 없는 피카츄와 라이츄 캐릭터, 정체를 모를 싸인까지 그려져 있었다.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도 관리 담당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매우 신중한 태도로 [포켓몬 고] 관련 문구를 붙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현지 주민들은 관광객이 몰려와서 좋고, 방문객들은 [포켓몬 고]를 실컷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존재만으로도 환영받을 수 있어 행복한 곳. 모텔과 음식점이 쭉 늘어서 있을 뿐인 길을 걸어갈 때조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다 보면 킹크랩이니 파라스니 하는 포켓몬들이 튀어나왔고, 건너편 인도에는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장소로 향하는 게 분명한 동료 트레이너가 있어 어쩐지 든든했다.

그리고 마침내, 포켓몬이 가장 많이 잡힌다는 엑스포공원에 도착해서 본 광경은 놀랍도록 성스럽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공원 안을 거닐거나 앉아 있을 뿐, 그 누구도 크게 떠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같은 [포켓몬 고] 플레이어임을 눈치채도(사실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을 골라내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았지만) 과도한 친밀감 혹은 경쟁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각자의 세계는 오로지 포켓몬과 ‘나’로만 이뤄진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 될까 말까 한 어린이는 물론 40대 초반 정도 돼 보이는 남성들도 [포켓몬 고]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할아버지는 청년들에게 [포켓몬 고]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었고, 청년들은 이 낯선 할아버지에게 친절하게도 “휴대폰 화면을 통해서 현실처럼 캐릭터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땀을 식히기 위해 바닷가 근처 벤치에 앉아 인센스 아이템을 사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깜찍한 꼬부기가 나타났다.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여기다 여기!” 소리와 찰랑이는 바닷물, 서늘한 바람, 작은 전기 스쿠터를 타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쾌적하게 [포켓몬 고]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완벽한 포켓몬 파라다이스였다.

이날 약 4시간 동안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엑스포공원, 속초시청 부근까지 총 16,376걸음, 11.83km 정도를 걸으며 59개의 포켓몬을 채집했고 레벨 7이 되었다. 목이 말라 잠시 머문 스타벅스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이브이와 망키를 사냥했으며, 걸핏하면 나타나는 잉어킹과 슬리프는 처음 것 외엔 아예 잡지 않는 여유와 사치를 부려보기도 했다. 더운 날씨 탓에 진땀이 배어나고 햇빛 아래 드러난 팔과 목은 살짝 타기도 했지만 충분히 움직인 덕인지, [포켓몬 고]를 경험했다는 기쁨 때문인지 도리어 몸은 적당한 운동을 한 것처럼 상쾌했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것 자체를 거의 하지 않는 내가 포켓몬을 잡다 몬스터볼이 모자랐을 때 기꺼이 0.99달러를 결제해 20개를 획득했던 것 역시 속초의 분위기에 들뜬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시 앱을 열자, 주변에는 어떤 포켓몬도 뜨지 않았다. GPS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는 경고 아래 나의 캐릭터는 깜깜한 허허벌판을 마냥 달리고 있었다.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속초에 다시 찾아오지 않는 한, 한국에서 [포켓몬 고]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실컷 진화시켜 놓은 슬리퍼를 체육관에서 다른 포켓몬들과 치열하게 겨루게 만들 날이 올까? 사람으로 가득 찬 복잡한 지하철에서도, 텁텁한 공기 때문에 숨쉬기가 불편한 길거리에서도, 포켓몬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서울이었다. 모두들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은 속초에서와 같지만 누구도 포켓몬을 잡을 수 없고, ‘너도?’라는 비밀스러운 눈짓으로 적절한 거리의 동료애를 나누는 재미도 없는 곳. 그래서 새삼 이곳이 한국임을 실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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