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I.O.I의 헝거게임

2016.07.27
Mnet [프로듀스 101]의 테마곡 ‘PICK ME’는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쇼를 기획한 한동철 Mnet 국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로듀스 101]을) 여자판으로 먼저 한 건,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웃음) 출연자들을 보면 내 여동생 같고 조카 같고 귀엽잖아? 그런 류의 야동을 만들고 싶었다. (후략)” 인터뷰가 논란이 된 뒤, 한동철 국장 측은 발언이 의도와 다르게 실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의 출연자들은 데뷔를 위해 끊임없이 극심한 경쟁을 치렀다. 그 와중에 체중을 감량해야 한다는 압력도 받았고, 언행이 이른바 ‘악마의 편집’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에 노출돼 있었다. [프로듀스 101]의 성공은 그들이 이 모든 것을 겪으며 이루어낸 것이다. 그런데 한동철 국장은 이 시점에서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야겠다는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여동생”이나 “조카” 같은 존재로 출연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한동철 국장의 발언은 [프로듀스 101]에서 시청자 투표를 통해 뽑힌 걸 그룹 I.O.I의 현재와 맞물린다. 그들은 지금 어떤 걸 그룹보다도 꿈을 꾸기 어렵다. 애초에 1년만 활동하는 팀이기에 지속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 활동이 끝난 뒤에는 소속사로 돌아가 또 다른 데뷔를 준비해야 한다. 아니면 소속사의 의향에 따라 I.O.I와 소속사 걸 그룹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I.O.I 멤버인 김세정, 강미나, 정채연, 유연정은 소속사의 뜻에 따라 소속된 팀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팀으로 데뷔했다. 그들은 이 결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청자의 뜻으로 결성된 팀에 금세 등을 돌렸다는 이유로 일각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동철 국장의 발언이 단지 실언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지금 I.O.I의 멤버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어느 팀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소속사에 대한 비난과 별개로, 정채연이 돌아간 걸 그룹 다이아의 새 앨범은 이전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구구단 역시 신인으로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데뷔할 수 있었다. Mnet만큼은 아니지만, I.O.I의 멤버들이 소속된 회사도 원한다면 당장 소속 걸 그룹의 인지도라도 올릴 수 있다. Mnet은 여러 회사의 연습생들을 무상 임대해 프로그램과 그룹을 제작할 수 있다. 회사는 걸 그룹이 포화상태인 지금, SM 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라면 [프로듀스 101]에서 소속 연습생의 활약을 바탕으로 준비 중인 팀을 주목받게 할 수 있다. 반면 출연자들은 춤과 노래를 연습해야 할 책임, Mnet과 소속사가 원하는 모든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책임, 그 정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다.

그래서 [프로듀스 101]로부터 시작된 미디어와 기획사가 결합된 리얼리티 쇼는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새로운 산업에 가까워 보인다. 과거보다 더욱 ‘을’의 희생을 전제로, 그 외의 모든 계약 주체에게 이익을 보장해주는 수익구조를 가진 산업. 그러니 이 게임을 조금이라도 출연자에게 공정하게 하려면, 산업적인 규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쇼의 모든 출연자들에게 상식적인 출연료가 지급될 필요는 있다. 또한 각종 계약 및 스케줄을 수행하는 데 있어 출연자가 어떤 안전장치를 갖느냐도 분명해져야 할 것이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I.O.I의 멤버 11명은 데뷔를 위해 나머지 90명을 이겨야 했다. 그들은 시청자의 지지를 바탕으로 살아남았지만, 꿈에 그리던 데뷔를 한 뒤에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1년의 활동이 끝나는 시점까지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 역시 그들이다. 이 모든 것을 무사히 지나가도 다시 데뷔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이것보다 비현실적인 일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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