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전쟁│③ 재미있는 페미니즘 웹툰 10

2016.08.02
2015년과 2016년을 거치며, 대중문화 콘텐츠의 부족한 젠더 감수성을 비판하고 페미니즘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이러한 요구들이 그들에게서 재미를 빼앗아간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이 ‘재미있으라고’ 한 농담을 차별이라 이야기하고, 무심코 한 행동에 ‘불편하다’고 지적하며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그 어떤 이야기나 재미도 제한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많은 부분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의 가부장적 관계에 대한 고민과 젠더 감수성을 반영하는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나타날 수 있다. 지금, 페미니즘을 통해 더욱 재미있는 창조성을 발휘한 웹툰들을 추천한다.

[카산드라] (1, 2부 다음 웹툰 완결, 3부는 작가 블로그에서 비정기적으로 연재)
트로이와 그리스 사이의 전쟁을 그린 [일리아드]를 여성 예언자 카산드라의 입장에서 다시 재해석했다. 신화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인 헬레네와 카산드라를 전쟁의 판세를 엎치락뒤치락하는 전략을 짜는 핵심적인 인물들로 그려낸다. 특히 ‘예언의 힘을 받았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 카산드라에 대한 해석이 백미다. 카산드라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상황과 전략을 예측하며 ‘예언’하지만, 사람들은 여자가 지성을 가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를 신뢰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카산드라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의 예언을 ‘믿지’ 않고, “옳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차별에 대해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카산드라]의 메시지는,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메리카노 엑소더스] (네이버 웹툰 연재, 현재 휴재 중)
여성만이 ‘마력’을 가지며 영지와 가문을 계승하는 절대적 권력을 물려받는 사회에서, 남들보다 더 큰 마력을 가졌지만 남성이라는 허용되지 않은 존재로 태어난 아메리카노가 여장을 하고 가문의 일을 물려받는다. 가부장제를 가모장제로 전복시킨 사회를 배경으로 하자 아메리카노의 이야기는 평범한 마법소녀물과는 전혀 달라진다. 예쁘고 어린 소녀들이 등장해 마법을 쓰는 평범한 판타지 마법소녀물의 비주얼을 가졌지만 아메리카노의 존재로 이런 비주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아메리카노가 가장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우웅~?!★ 그게 모에여? 저는 그런 거 잘 몰라여♥”라고 말할 때, 이것이 단순한 마법소녀물의 ‘애교’가 아니라 아메리카노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읽혀지는 그 순간의 재미다.

[여자 제갈량] (레진코믹스 연재, 현재 휴재 중)
순욱, 곽가, 제갈공명, 가후 등 삼국지의 영웅들을 만들어낸 책사들이 여자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삼국지] 이야기. 책사의 성별이 여성으로 바뀌면서, 그들이 전략에서 고려하는 부분이나 모시는 영웅과의 관계도 조금씩 변한다. 전쟁이나 기근이 오면 사회적 최약자인 여자 아기가 가장 먼저 버려지고 죽게 되며 이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옳은 일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여성으로서도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소망을 가진다. 곽가의 “사내들의 그늘에 사는 운명을 태울 거센 화염”이 될 수도, 순욱이 초석부터 돌을 올리며 돌담을 쌓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여성의 몸을 가진 책사들의 공통된 소망이 각자 다른 판단과 전략으로 정세를 쥐었다 폈다 하는 [삼국지] 역시, 당연하게도, 흥미진진하다.

[캐셔로] (다음 웹툰 1,2부 완결)
저마다 돈을 갖고 있거나, 술을 마시거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능력을 발현하게 되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 하지만 세계를 구하는 남성 영웅과 그를 돕는 사이드킥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히어로물 서사와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능력으로 가정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서 벗어나는 정호의 모습이나 데이트하던 여성의 손을 잡아채는 남성을 응징하려는 수오의 모습은 일상에서 필요한 평범한 영웅의 일을 보여주고, 히어로들은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구하는 상웅은 동생인 상안이 걱정할 것을 미안해하며 허락을 받고, 부탁한 마요네즈도 잊지 않는다. 어쩌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영웅이 아닐까 싶은, 평범한 히어로들이 잔잔하게 마음을 흔드는 히어로물의 새로운 영역이다.

[내 ID는 강남미인] (네이버 웹툰 연재)
성형을 했다고 생각되는 여성을 ‘강남미인’이라 부르며 비하하는 여성 혐오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캠퍼스 스토리물이다. 학창 시절 외모로 인한 차별과 비하에 시달린 미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성형을 했고, “조금 티가 나는 형태로” 예뻐졌다. 미래의 대학 생활은 현실에 만연한 외모 평가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며, 경석이 “썩어빠진 정신머리”라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할 때 미래는 외모 평가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반박한다. 그런 미래 역시 콤플렉스를 가진 스스로에게도 내재된 차별을 발견하기도 한다. 현실 속의 차별에 대한 의견을 하나의 스토리로 다듬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어쩌면 ‘이야기’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작품.

[게임회사 여직원들] (다음 웹툰 연재)
스타트업 게임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기획자인 세 여성의 이야기. 게임 회사라는, 주로 남성 직원이 기준으로 상정되는 업계에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 프로페셔널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시멜과 아름, 여기혜는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사장과 팀장, 프로그래머 동료는 인간 남성이 아니라 동물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이 구성한 팀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게임을 만들고 출시하는 과정 속에서 게임 회사라는 업계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동시에 능력 있는 세 명의 여성 캐릭터들의 매력도 부각된다. 생활툰 속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던 일하는 멋진 여성 직장인의 모습은,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 없다.

[혼자를 기르는 법] (다음 웹툰 연재)
‘시다’라는 이름처럼 회사의 막내로 야근에 시달리고, 외로움과 공포를 이겨가며 혼자 사는 20대 여성을 그린다. 직장인이자 혼자 사는 자취생의 이야기를 하는 생활툰 속에서 덴마크인 남성과 함께 길을 걷던 혜수가 듣는 말이나 시다가 독립을 하게 되는 과정, 골목길에서 성추행을 당할 뻔했던 순간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지금 한국에서 혼자 사는 20대 여성이 마주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슬퍼하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쓸쓸하지만 담담한 톤으로 이런 현실을 그려내고, 댓글창에는 “위로받은 기분이다”라는 이야기가 종종 달리곤 한다. 잘 보이지 않았던 어떤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단지] (레진코믹스 1, 2부 완결)
[단지]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독립한 후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단지가 이야기하는 오빠와 아빠의 폭력과 성희롱, 엄마의 차별과 방관 같은 경험은 ‘단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이며, [단지]는 이를 웹툰으로 그려내면서 그들에게 지금 괜찮은지 묻고 함께 생존하자는 연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적절한 공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먹는 존재] (레진코믹스 1, 2부 완결)
먹거리를 주제로 20대 여성 유양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며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필수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 “배고픔이 양아치”라고 이야기하는, 시니컬한 태도의 유양은 때로는 현실에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대신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여자는 자고로 폭신폭신해야” 한다며 성희롱 발언을 하는 직장 상사의 면전에 굴을 집어던지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은 때로 속이 시원할 정도다. 그리고 결혼 후 멀어질까 걱정하는 친구 예리를 위로하거나 남자친구인 박병에게 결혼할 의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밝히는 유양의 삶은 타인과도 이어지며, 결국 누구든 언젠가 부딪혔거나 부딪히게 될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보여준다.

[미지의 세계] (레진코믹스 완결)
[미지의 세계] 프롤로그는 “20대 여대생 조미지의 상큼하고 달콤한 캠퍼스라이프와 피끓는 청춘의 아름다움”이라고 소개하고, 1화는 이 단어들에서 연상될 만한 이미지들을 한 번에 모두 깨뜨리며 시작한다. 미지의 얼굴은 짧은 숏커트 머리에 동공도 잘 보이지 않는 눈, 여기저기 주름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미지의 속마음 역시 욕설은 기본이고, 자신을 차버린 남자 둘이 게이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하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경멸을 퍼붓는다. 그러나 미지는 돈이 없어 술자리에서도 취하고 싶으면 편의점으로 달려가 맥주를 사 마시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기도 하다.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어나는 순간 만들어진, 20대 여성 대학생을 보여주는 가장 독특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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