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와 함께 여성들의 시대가 시작되다

2016.08.08
지난 7월 30일.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 사업을 독단적으로 진행한 학교에 맞서 본관을 점거하고 있던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은 총장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총장 대신 나타난 건 1,600여 명의 경찰병력이었다. 경찰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노래를 불렀고, 그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전해주고 싶어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들리지만.” 학생들이 서로의 팔을 붙잡고 흔들림 없이 부른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시위 현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이화여대 학생들. 이 하나의 풍경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는 그들 앞에 전경이 서 있는 것에 놀라고, 또 누군가는 들려오는 노래가 ‘바위처럼’이 아닌 것에 놀라고, 심지어는 걸 그룹 노래인 것에 놀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세상발랄(‘Save Our Ewha’ 페이스북 페이지 ‘다만세’ 영상 아래 달려 있던 해시태그)한 시위의 방식에 놀란다. 또 누군가는 ‘다시 만난 세계’가 그토록 아름다운 노래인 것을 그 순간까지 몰랐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모든 충격의 공통점은 하나의 결론을 불러온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 그들의 노래에서 다시 만난 ‘새로운’ 세계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하필이면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른 이유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단순하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위 중이던 학생들이 모두 알고 외워 부를 수 있는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부른 ‘다시 만난 세계’는 기존의 민중가요나 투쟁가처럼 마주한 대상과 맞서거나 투쟁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기능하는 대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젊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다. 동시에 시위에서 부를 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노래 대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개인들의 연대가 거기에 있다.

‘다시 만난 세계’는 2007년 여름, 정확히 9년 전에 발표된 노래다. 소녀시대 데뷔 당시에도 인기를 얻었던 곡인 것은 확실하지만, 가장 성공한 걸 그룹 데뷔곡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중은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발차기를 날리던 소녀들보다는 “나는 그대밖에 모르는 바보”(‘Gee’)라고 노래하는 소녀들을 더 쉽게 기억했고, 더 많이 사랑했다. 오히려 ‘다시 만난 세계’를 소중히 간직해온 건 이 노래의 가사가 내가 부르는 것이며 동시에 나를 향한 것이라고 느낀 동세대의 여성들이었다. 청자의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이 노래에서는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라는 가사를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강해지는 것도, 소녀를 울지 않게 돕는 것도 모두 여성으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만난 세계’의 힘찬 리듬과 아련한 정서가 열린 해석이 가능한 가사와 만날 때 그 모든 것에 공감하는 것은 오랫동안 소녀로 불려온 젊은 여성들이었다.

‘다시 만난 세계’가 한 철의 인기곡이 아닌 현재형의 노래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데뷔 시절 소녀시대를 롤모델로 삼은 몇몇 걸 그룹을 포함해 바로 그 젊은 여성들이 노래를 9년간 끊임없이 재발견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른 곳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서로를 강해지게 하고 또 울지 않게 도와줄 존재를 기다려왔다. 당연히 그건 왕자가 아니며 오빠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이번 이화여대 학생들의 노래에 그 누구보다 기꺼이 빠르게 응답한 것은 그 노래의 청자가 자신이라고 믿는 또 다른 젊은 여성들이었다. ‘다시 만난 세계’의 날로부터 나흘 뒤인 8월 3일, 본관의 재학생들을 지지하는 시위에 참여한 이화여대의 졸업생들은 휴대폰 플래시의 빛을 모아 아름다운 연대의 별자리를 만들었다. 그들의 “언니 왔다”는 네 글자에 학교 밖의 수많은 여성들도 지지의 의사를 표명하며 또다시 거대하고 느슨한 연대의 고리가 완성됐다.

그 사이에서 “시선 속에서 말은 필요 없는” 경험을 공유한 이들은, “희미한 빛”을 보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밝은 빛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알고 사랑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만 들어온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개인의 추억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불러온 체험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들려온 이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세계와 세대만을 읽는다면 틀렸다. 이미 도래한 미래, 원래 존재했던 서로와 세계가 그 순간 그곳에서 다시 만난 것뿐이다. 소녀들에게서 소녀들에게로. 젊은 여성으로 살아왔고 살아갈 여성들의 과거와 또 미래에게로. 문장을 맺지 않고 사라져가는 노래의 끝, ‘세계’를 마저 완성하는 것은 결국 이 노래를 나의 노래로 품고 ‘거친 길’을 걷는 소녀들이다. 그리하여 다시, 비로소 지금이야말로 소녀, 젊은 여성들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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