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미래도시 표류기

2016.08.17
뮤지컬 [페스트]
창작초연│2016.07.22~09.30│LG아트센터
원작: 알베르 카뮈│원곡: 서태지│편곡: 김성수│작: 김은정·노우진│연출: 노우성│주요 배우: 김다현·손호영·박은석(리유), 김도현·윤형렬(랑베르), 오소연·린지(타루), 김수용·조휘(코타르), 조형균·정민·박준희(그랑), 황석정·김은정(리샤르), 이정한(카스텔), 김주연(잔)
줄거리: 오랑 시티에는 질병도, 고통도, 그리고 죽음도 없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물론이고, 욕망과 행복까지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원인 모를 병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4일 만에 100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완벽해 보이던 도시를 혼란에 빠뜨린다. 시립병원의 신임 원장 리유는 이 병이 중세 유럽을 초토화시킨 페스트의 변종임을 널리 알리려 하지만, 통제력 상실을 우려한 지도층에 의해 묵살된다. 페스트가 속수무책 퍼져나가자 중앙정부는 오랑 시티를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의와 타의로 오랑 시티에 잔류한 의사 리유, 식물학자 타루, 기자 랑베르 등은 각자의 방법으로 페스트에 대항하는데….

★★☆ 미래도시 표류기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 알베르 카뮈와 한국 대중문화의 판도를 바꾼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만남은 [페스트]를 올해의 기대작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속성에 충실하게, 록과 랩을 오가는 서태지의 자유분방한 음악은 [페스트]의 줄거리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외피로 전체의 무게를 잴 수는 없다. 매끈하게 연결된 넘버와 이야기의 줄기가 작품 자체의 개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페스트]는 여전히 역병이 들끓고 있는 2016년의 오랑시티를 뒤로하고, 2096년의 오랑시티를 표류한다. 음악에서의 파격은 물론, 유감스러운 시대를 거침없이 꼬집었던 서태지와 인간애를 바탕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의문을 던지던 카뮈는 깊이 감춰둔 채로.

Stage: 빛과 어둠의 무대
[페스트]는 다들 한 번쯤 상상해봤을 미래도시를 구현한다. 보편적이되, 구태의연하지 않은 무대는 정승호 무대디자이너의 몫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레베카]의 회전무대처럼 미장센에 대한 감각을 드러난다. 무대의 공간과 시간적 제약에 대항한 무기는 영상이다. 무대를 여닫아 다층적인 스크린처럼 활용하는데, 공연 중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거나 홀로그램 등의 특수효과를 주어 시시각각 첨단도시를 쌓아올렸다 무너뜨린다. 그 중심에는 단순한 형태의 철제 구조물을 두었다. 네온조명이 부착된 반원형 철골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빛을 내는 번영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회색조의 암울한 죽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Drama: 이곳 아닌 어딘가의 대서사시
“공화국은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장 리샤르의 대사는 지금껏 지켜지지 못한 현실의 말들과 겹쳐진다. 미래도시를 거울삼아, 우리의 문제들과 대면하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 지점이다. 그러나 원작과는 달리 기자인 랑베르를 화자로 내세움에도, [페스트]의 현실감각은 뭉툭하다. 통제되는 삶이 페스트로 마비된 삶과 다르지 않음을 충분히 보여줄 서사적 여유가 없어서다. ‘저항하는 리유’, ‘변화하는 랑베르’, ‘치유하는 타루’처럼 캐릭터는 세분화하였으나, 각 인물들이 가진 의지를 충분히 납득할 만한 과정은 생략된다. 큰 줄기를 축소한 자리에는 원작에는 없던 리유와 타루, 그랑과 잔 사이의 말랑말랑한 감정이 채워진다. 이런 상태로 ‘사형수의 일화를 회고하는 타루’나 ‘임상실험의 실패’, ‘타루의 죽음’과 같은 원작의 장면들과 만나니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카뮈의 목소리가 함축되었다고 해도 좋을 장면들이 도리어 군더더기가 되고, 저항이나 연대라는 핵심은 인물의 행동이 아니라 빼곡한 설명에 의해 전달된다. 공감을 얻지 못하는 비장함은 결국 신파와 다르지 않다. 방대한 대서사시 안에서 어떤 재료들을 취사선택할지, 과감한 생략과 집중이 필요한 때다.

Music: 록 스피릿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났을 때
극장을 웅장한 사운드로 꽉 채우는 Overture로 시작해 랩 메탈인 ‘Live Wire’를 록킹한 절규로 그려내고, 오케스트레이션 위에 배우들의 화음이 쌓여나가는 ‘Coma’로 방점을 찍는다. 넘버의 면면을 보면, 록이 주를 이룬다. ‘난 알아요’, ‘하여가’, ‘교실 이데아’, ‘컴백 홈’ 등 가장 유명한 대표곡은 과감히 제외하고, 다소 낯선 8집까지 범위를 넓혔다. 작품의 구성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본래 서태지가 록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고, 3집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록을 추구해온 사실로 짐작하면 예상외의 결정은 아니다. 원곡의 훼손을 경계해 리메이크를 허락지 않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서태지는 자신의 곡을 뮤지컬화할 적임자도 직접 지목했다. “음악감독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편곡을 보호하기 위해서”([아이즈])라 말하는 또 다른 완벽주의자 김성수 음악감독이다. 본래 기타리스트였고, 검정치마, 메이트 등 개성적인 인디밴드를 프로듀싱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서태지스러움’을 견지하면서, 전작 [에드거 앨런 포]에서처럼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공간감을 살리는 자신의 장기를 확장시켜나간다.




목록

SPECIAL

image 스크린독과점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