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국가처럼 보기], 최적화는 일을 망친다

2016.08.19
장관이 하필 그 단어를 쓰지만 않았더라도 이 싸움에 관심을 둘 생각은 없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요즘 청년정책을 두고 옥신각신하는데, 보건복지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을 직권취소하고, 고용노동부는 서울시 청년수당과 비슷한 현금지원 정책을 내놓았다. 당연히 표절 의혹이 일었다. 그러자 노동부 이기권 장관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서울시 정책은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 껀 없어!”라고 했다. 손실. 오늘의 키워드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노동부 현금지원은 청년의 구직 노력과 타이트하게 연동되는 반면, 서울시 청년수당은 지원서를 평가해서 돈을 준다. 무임승차가 나오기는 후자가 더 쉽다. 정부는 마땅히 손실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청년정책만 그런가. 학계로 가는 연구개발(R&D) 예산도 사전·사후 심사를 강화하여 예산 낭비를 막자는 기조다. 대학의 입학 정원도 인문계를 줄이고 이공계를 늘리도록 예산 지원을 무기로 유인한다. 손실은 막아야 하고, 자원은 최적화해야 한다. 국가란 무엇보다도 ‘최적화 머신’이다.

이 자명하고 아름답고 헌신적이기까지 한 최적화의 논리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게 결국 일을 망칠 뿐이다. 1998년에 나온 우리 시대의 고전 [국가처럼 보기]에서 정치학자 제임스 스콧은, 자원 배분을 계량하고 예측하고 최적화하려는 국가의 욕망을 “가독성을 높인다”라고 표현한다. 세상은 국가가 읽기 쉬운 방식으로 재편되어야, 그러니까 바둑판처럼 격자화 되어야 한다. 청년 현금 지원은 왜 구직 노력과 연동되어야 하나? 그래야 가독성이 생기니까. 왜 가독성이 필요한가? 최적화!

19세기에 독일은 가장 쓰임새 많고 성장이 빠른 나무 한 종류만 심는 인공조림을 시도했다. 숲은 얼마 안 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균류와 곤충과 동식물의 공생, 토양 형성과 양분 흡수 등, 근본적으로 격자화 할 수 없는 생태적 직조 관계가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최적화에 포획된 시스템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에서 혁명가 레닌의 전위정당까지 20세기 세계를 일주했고, 어김없이 붕괴했다. 실행 과정에 녹아들어 있는 암묵적 지식, 생태적인 다양성과 복잡성,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임기응변 등 일련의 비공식 과정은 최적화의 합리성 못지않게 시스템에 요긴하다. 스콧은 이렇게 쓴다. “공식 계획은 비공식 과정에 기생한다.”

오류와 낭비는 시스템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필수 전략이다. 진화 시스템은 돌연변이라는 복제 오류와 유전자풀이라는 낭비에 기댄다. 오류도 낭비도 없는 시스템을 기다리는 운명은 멸종이다. 노동부 정책은 서울시 청년수당보다 낭비를 줄이겠지만 청년을 격자로 된 목표로 밀어 넣는다. R&D 심사를 강화하면 진정 혁신적이지만 실패 가능성이 큰 연구 대신 예측 가능한 연구가 양산된다. 대학 정원 재편 정책은, 미래 사회에 어떤 지식이 얼마나 필요할지 정부가 안다는 터무니없는 격자에 대학을 맞춘다. 최적화가 지배하는 시스템은 낭비와 창발성을 함께 제거한다. 이러면 시스템은 예측 가능한 죽음으로 평화롭게 흘러간다. 이것이야말로 선하고 사명감 넘치고 최선을 다하는 국가가 일을 망치는 방식이다.

덧붙임. 이 책에 열광한 독자 중에는 시장 원리주의자 그룹도 있었다. 그들은 국가가 손을 대기만 하면 망가지니 시장이 답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스콧은 이 난독증을 예견한 듯 미리 철퇴를 놓는다. “동질화, 획일성, 격자, 그리고 용감무쌍한 단순화의 조직이라는 점에서 대규모 자본주의와 국가는 똑같다.” 가격 매커니즘은 국가만큼이나 격자화, 가독성, 최적화를 적정선 너머로 밀어붙인다. 스콧이 고발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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