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더 플레이], ★★★☆ 인생이라는 연극

2016.08.31
연극 [햄릿-더 플레이]
창작 초연│2016.08.02 ~ 10.16│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극본: 지이선·김동연│연출: 김동연│배우: 김강우·김동원(햄릿), 이갑선·김대령(클로디어스), 이진희·서태영(거트루드·오필리어), 최진석(폴로니어스·무덤지기), 김지휘(레어티즈·길덴스턴), 송광일(로젠크란츠 외), 이현철(요릭·호레이쇼), 탕준상·정재윤(어린 햄릿)
줄거리: 어린 햄릿은 광대 요릭과 함께 전쟁에서 돌아올 아버지를 위해 연극을 준비한다. ‘살해된 선왕의 복수를 행하는 왕자’라는 내용의 비극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연습을 계속해나간다. 한편, 성인이 된 햄릿은 아버지인 선왕이 죽은 지 채 3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 거트루드와 숙부 클로디어스가 결혼하는 상황에 자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선왕의 망령을 만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다.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친 척 연기하기 시작하는데….

인생이라는 연극 ★★★☆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햄릿은 검은색 코트 자락을 휘날리더니 총까지 겨눈다. 원작에는 없던 ‘어린 시절의 햄릿’이 등장하는가 하면,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인간”처럼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여겨지던 대사조차 거침없이 해체된다. 정석적인 [햄릿]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무수히 언급한 본질만은 고집스럽게 지켜진다. 비극을 공연해야 하는 어린 햄릿과 죽음을 예감하고 연극을 무기 삼아 나아가는 성인 햄릿. 작품 속에서 두 햄릿의 시간은 교차되고, 마침내 ‘인생은 연극’이라는 사소하고 무거운 깨달음에 가 닿는다. 그렇게 햄릿은 고결한 왕자가 아니라, 연극 같은 생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지극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다.

Recreation: 한 편의 광대놀음이 완성되기까지
이 작품은 초연작이되, 초연작이 아니다. 김동연 연출이 2001년 모교인 중앙대학교 공연으로 올렸던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를 전신으로 해서다. 2009년 대학로에서 단 5일간의 짧은 공연을 끝으로 한동안 감춰두었다가, 올해 지이선 작가가 합류하며 세월의 더께를 털어냈다. 일곱 개 버전의 [햄릿] 번역본과 더 많은 논문과 주석을 지나오면서도 ‘광대’만은 오롯이 남았다. 광대는 김동연 연출과 지이선 작가의 작품세계를 관통한다고 해도 좋을 소재. 김동연 연출은 초기작 [환상동화]에서, 지이선 작가는 전작인 [씨어터 RPG 2.0]에서 각각 광대를 화자로 삼거나, 광대코를 낀 관객들을 무언의 배우로 세우기도 했다. 이번에는 무대가 열리자마자 빨간 광대코를 매단 어린 햄릿이 등장해, 장기 말을 늘어놓는다. 연극은 뒷전인 어린 햄릿에게 광대 요릭은 “배우는 연극의 결말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건네기도 한다. 무대 위에는 침묵만이 흐르고, 생이 끝나버린 자들이 각자의 장기 말을 움켜쥐는 마지막 장면. 모두가 인생의 장기 말이자, 연극 속 광대임이 공표되는 순간이다. 부제인 ‘더 플레이’는 작품이 햄릿의 연극, 햄릿의 놀이임을 보다 명확히 드러낸다.

Actor: 연극하는 인간, 햄릿
오랜 기간 무대 밖에서 활동해온 김강우의 햄릿은 신선하다. 그럼에도 깨끗한 발성과 호흡이 무대와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필요는 없다. 알고 보면 [햄릿]이 그의 시작이었으니까. 2001년 [햄릿-슬픈 광대의 이야기]에서의 햄릿도, 공석이었던 연출에 선배인 김동연 연출을 직접 초빙한 이도 모두 김강우였다. 그의 햄릿이 15년간의 성장과 노련함을 응축했다면, 김동원의 햄릿에는 특유의 무심함과 날것 같은 분위기가 깃든다. [청춘예찬],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강철왕] 등의 대표 레퍼토리를 차례로 거치며 극단 골목길의 문법을 체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2011년 [제7회 여성연출가전]에서 [햄릿]으로 데뷔했다고 하니. [햄릿-더 플레이]의 두 햄릿은 모든 배우가 평생을 꿈꾼다는 궁극의 배역을 두 번째 하고 있는 셈이다.

Character: 강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성
당시의 시대 탓도 있겠지만, 셰익스피어가 여성을 그린 시선에 동의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정점은 단연 [햄릿] 속 두 여인 차지다. 하지만 [햄릿-더 플레이]는 거트루드와 오필리어에게 그들만의 동기를 확고히 부여한다. 거트루드는 ‘정숙한 어머니’라는 고루한 프레임에 갇히는 대신, ‘왕관과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시동생과의 결혼도, 아들을 향한 독배도 불사하는 당당한 왕족으로 거듭난다. 오필리어의 변화는 한층 격렬하다. “수녀원에나 가라”던 햄릿의 폭언에 “당신의 말로 상처 입지 않는다”며 단호히 응수하거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대체 문제일까” 의문을 던지고, 자신의 선에서 비극을 멈추려는 용기도 내보인다. 극 중에서는 한 사람의 배우가 거트루드와 오필리어를 번갈아 연기해 두 여성 캐릭터의 강인함이 보다 심화된다는 점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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