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은 왜 돈을 쓰고도 무시당하는가

2016.09.01
이번 여름, 많은 언론이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그리고 [터널]로 이어진 한국영화 빅4의 흥행이 가능했던 이유로 꼽은 것은 폭염, 그리고 2030세대를 제외한 세대의 움직임이었다. 특히 [부산행]의 천만 기록에 대해서는 기존 천만 관객을 만든 원동력은 중장년층이었으나 [부산행]의 경우는 10대와 20대의 비중이 커진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에서 2030세대는 일종의 상수인 셈이다. [부산행]뿐 아니라 나머지 세 영화, 그리고 지금까지의 천만 영화들 대부분에서 여성 관객과 남성 관객의 비중이 6:4인 것을 감안하면 2030세대 중에서도 여성이 영화 관객의 기본값임을 알 수 있다. 특히 20대 여성은 1인 영화 관객 중 가장 높은 비중을 보인다. 홀로, 때로는 같이 영화관을 찾아 영화라는 문화를 누리고 산업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계층이 바로 2030 여성들인 것이다.

사실 2030세대의 여성들이 문화 소비를 주도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화는 일부다. 문화평론가 오혜진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에 기고한 글 ‘혐오의 시대, 한국문학의 행방’에서 교보문고 판매데이터를 기반으로 한국소설의 판매율이 끊임없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와중에도 “한국문학의 가장 충실한 독자로 남아 있는 것은 20~30대 여성들”임을 언급했다. 8월 넷째 주 예매율 1위 연극인 [카포네 트릴로지]의 경우 예매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며, 뮤지컬 예매율 1위인 [스위니 토드] 역시 여성 예매자가 78%가 넘는 비율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연극·뮤지컬에서 2030의 비율이 70~80% 사이인 것을 감안하면, 연극·뮤지컬이야 말로 2030 여성의 힘으로 지탱되는 문화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과 무용 공연, 콘서트도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언론은 상수가 아닌 변수에 주목한다. ‘4050 관객이 천만을 만든다’는 영화계의 정설은 교묘하게 2030세대의 영향력을 지운다. ‘남자 관객도 볼 만한 뮤지컬’이라는 말이 칭찬으로 앞에 내세울 때, 그 반대편에는 여성들만 보는 뮤지컬이 있다. 2030세대 여성들보다 그 외 계층의 소비가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소위 ‘된장녀’ 서사에서 드러나듯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소비는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이들의 구매력은 과소평가된다. 젊은 여성들이 소비하는 문화에는 보통은 여성적이라고 에둘러 표현하지만, 실은 부정적인 무엇인가가 자리하고 있으리라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있다. ‘20~30대 젊은 여성들’을 비하한 대표의 발언으로 대대적인 보이콧 사태를 불러왔던 연극 [보도지침]의 경우를 보면, 그건 “가벼운” 것이다. “캡사이신 떡볶이를 즐겨 먹으며 화끈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20대 여성 관객”이 [킹스맨]의 흥행을 불러왔다는 분석에서 20대 여성 관객은 한 번 더 대상화된다.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를 수 있는’ 작품에 대한 환상은 여성들이 가득한 극장이나 공연장을 미완성의 것으로 여기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가장 손쉽게 2030세대의 여성을 묶는 방식은, 이들을 관객이나 소비자가 아닌 남자 배우나 가수, 유명인의 팬으로 호명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팬이기 때문에 문화 상품을 제값 내고 소비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여성의 선택과 소비에 필시 비이성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러한 믿음은 당연히 여성혐오다. 여성들의 구매력이 보호자-남성에게서 왔을 것이라는 환상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문화 산업 관련 통계와 젊은 여성이 자리를 채운 극장과 공연장, 책을 읽는 여성들이 보여주는 현재는 명확하다. 젊은 여성들에게 문화 산업의 미래가 있다는 것.

이들의 구매력과 영향력을 굳이 축소하고 싶어 하는 시선들과는 상관없이, 2030세대의 여성은 이미 문화 산업의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이들은 명확한 취향과 안목으로 문화 상품을 기꺼이 고르고 능동적으로 소비, 때로 생산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더 나은 독자이자 관객이 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 이런 상황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저해하는 주범은 누구인가. 자신이 보고 싶은 문화 상품을 자신의 돈으로 소비하는 2030 여성들인가,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보지도 않는 그 외의 계층인가. 문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천만 영화만 보는 사람들인가, 천만 영화를 포함해 모든 문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인가. 문화 산업 종사자들이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2030세대 여성들의 욕망과 정서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하려 하지 않는다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영화관에서 종종 실소가 나오게 하는 광고를 조금만 비틀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문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고, 2030세대 여성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
오혜진, ‘혐오의 시대, 한국문학의 행방’ [릿터]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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