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맛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요리사였다

2016.09.02
1930년 12월 28일, 미래주의를 창시한 작가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가 토리노의 한 일간지에 파스타를 몰아내자는 글을 기고했다. 승리하는 민족이 되려면 연약함과 무기력함을 가져오는 음식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중은 들끓었다. 하지만 그래놓고 레스토랑에서 산처럼 쌓인 스파게티에 달려드는 사진이 공개되며 분노는 조롱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은 그 배경인 파시즘과 더불어 저명한 작가에게 큰 오점이 되었고, 100년 후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에 번역된 책에 실리게 된다. 

음식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집착은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군이 세계를 정복하며 와인 항아리 대신 아예 묘목을 갖고 진군한 결과, 오늘날 프랑스, 스페인, 크로아티아 등에서 재배되는 포도 78종이 고대 로마 품종의 직계 후손이다. 로메인 상추, 즉 로마 상추라는 게 존재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어딜 가든 상추밭을 일구다 보니, 야생 상추를 연구하다 보면 로마군의 야영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스파게티 기계를 설계한 천재 다 빈치가 있다. 친구랑 식당까지 열었는데, 동업자의 이름은 다름 아닌 보티첼리다. 다행스럽게도 두 걸출한 화가의 요리 실력은 그림만 못해서 금세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후로도 이탈리아인들의 식탐은 계속되어 의사들은 맛있는 건 모두 금지한다는 자연법칙에 해당되지 않은 드문 경우인 프로슈토, 붉은 색을 즐겨 사용한 화가 비토레 카르파초의 이름을 단 카르파초, 세계에서 가장 품격 높은 쓰레기 음식으로 불리는 누텔라.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피자, 스파게티,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티라미수. 2009년 유럽 연합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탈리아어로 꼽힌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한날한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았다. 피자의 기원은 르네상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가 아는 음식이 된 것은 토마토가 보급된 17세기 말이다. 오가다 싼 맛으로 사먹는 길거리 음식으로, 피자 노점은 여름이 되면 주인은 그대로인 채 수박 노점으로 바뀌었다. 요새는 파스타를 알덴테로 먹어야지 푹 익히면 야만인 취급을 받지만 놀라지 마라, 미국에서 1792년 출간된 한 요리책에서는 세 시간동안 끓이라고 하며, 1932년에 나온 책에서도 30분을 권장한다. 1차 대전 이전에는 이탈리아인들에게 모닝커피라는 성스러운 습관이 없었고, 크레마라는 것이 등장하려면 1948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디저트로 한국의 편의점 도시락에까지 들어가는 티라미수의 탄생은 1969년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행복에 기여하는 요리들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이야기는 이탈리아 음식이라기보다는 이탈리아 자체의 역사다. 서로 배척하던 음식을 받아들이고 영향을 주는 과정에 오랫동안 외세와 싸우고 자기들끼리도 더 열심히 싸우던 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아가 이 책은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역사책이라면 모두 그렇고,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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