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박보검의 영리한 얼굴

2016.09.07
“선한 인상이 자칫 유약해 보이기 쉬우나 내면에 대담함과 승부사다운 면모를 갖추셨으며 과연 왕족의 기품이 느껴지는 그런 상.”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조선의 세자 이영(박보검)을 본 관상가의 말은 그대로 그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다. 평소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과녁에 꽂힌 화살을 다른 화살로 쏘아 반으로 쪼갤 만큼 무예에 능하다. 권력을 쥔 영의정 김헌(천호진)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굴욕을 줄 만큼의 배짱도 가졌으니 타고난 승부사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내시가 된 홍라온(김유정)의 말처럼 밥은 굶은 적 없어도 정은 고픈 적 있는 마음을 가졌다. 사람들에게 차갑지만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다. 트렌디 드라마에서 숱하게 본 듯한 캐릭터. 그러나 “선한 인상”에 “유약해 보이”는 박보검의 얼굴은 이영의 캐릭터를 시청자에게 납득시킨다.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박보검을 “시키면 다 하는 우리 막내”로 묘사하고, ‘1박 2일’에서 놀이기구라면 질색하던 김종민마저 거부할 도리 없이 놀이기구에 오르게 만든 그 독특한 캐릭터. tvN [응답하라 1988]에서 바둑 말고는 신발 끈 묶는 것마저 잘 하지 못하는 천재 기사 최택이었고, 실제로도 이른바 ‘대세’가 된 요즘도 가끔 지하철을 타며, ‘1박 2일’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후원하는 회사의 티셔츠를 입었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칭찬한다. 선하고 성실하며 대중과 공감하는 어떤 무결점의 스타에 대한 기대. 그러나 이영은 정약용(안내상)에게 몰래 찾아가 국사를 논할 만큼 정치에 대한 분명한 욕망을 가졌다. 김헌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전부터 그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궁인들에게 일부러 막무가내로 대해 ‘반인반수’라는 별명도 얻는다. 박보검이 그동안 대중에게 쌓은 이미지는 이영이 근본적으로 선하고 여린 구석도 있는 인물로 비쳐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영은 지금 박보검의 이미지와 달리 필요하다면 누군가와 싸울 수도 있고, 보호받기보다는 홍라온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입장이다. 모두가 “선한 인상”으로 알고 있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거나, 해맑게 웃는 대신 거짓으로 웃음을 지으며 감정을 숨긴다. 근본적으로 착한 얼굴을 가졌지만 사람에 따라 가면을 쓴 것처럼 표현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여린 감정을 보여주는 것 역시 이영이 가진 여러 모습 중 하나가 된다.

박보검, 또는 박보검이 연기하는 이영은 이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까칠한 듯하지만 사실은 따뜻하고, 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게으른 듯하지만 사실은 무엇에든 만능인 남자 주인공은 한국 드라마에서 그 예를 일일이 들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그러나 박보검이 가지고 온 이미지는 이영이 이런 캐릭터들과 달리 선천적으로 여리고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만든다. 반면 이유가 무엇이든 권력에 대한 야심을 갖고, 많은 계산을 통해 타인 앞에서 자신을 포장하는 박보검의 얼굴은 대중이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이다. 이영이 청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 그는 홍라온의 춤을 보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걸린 순간, 어린 시절의 한때로 돌아가 아련한 표정을 짓는다. 그 간극이 박보검의 얼굴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그저 드라마 속 설정에나 있었을 것 같은 이영의 캐릭터는 현실적인 깊이를 갖는다. 동시에 박보검은 이영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대중이 알고 있던 자신과는 다른 얼굴들을 보여준다. 최택이 바둑을 둘 때 조금씩 보여줬던 승부욕과 진지함은 이영을 통해 확장됐고, 박보검의 이미지는 선함을 바탕으로 하되 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선함보다 영리함의 영역이다. 그는 전작들을 통해,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맑고 선한 이미지로 다가섰다. 그만큼 그는 이전의 어떤 남자배우들과도 다른 캐릭터로 대중의 관심을 받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계속 오르는 순간, 그동안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전의 얼굴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는다. 대중의 기대와 자신이 변화해야 할 것 사이를 조율하며 선한 인상을 가졌지만 내면에 대담함이 있는 관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우로서 많은 생각과 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마치 자신의 영토를 지키면서도 공세적으로 나아가는 바둑 기사처럼, 박보검은 화제작을 통해 대중에게 강렬하게 박힌 이미지를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다음 작품의 폭을 넓힐 방법을 찾았다. 이렇게 계속 수를 두다 보면, 언젠가는 그가 얼굴에서 선한 인상을 완전히 지워도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박보검은 아이러니하게도 착하다, 착해 보인다는 반응이 칭찬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착한 사람이기 이전에, 똑똑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이니 말이다. “시키면 다 하는 우리 막내”만으로는, 이영처럼 연기할 수 없다.



목록

SPECIAL

image [유미의 세포들]

MAGAZINE

  • imageVol.168
  • imageVol.167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