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버스터즈]│① [고스트버스터즈]가 재미없다고?

2016.09.06
믿을 수가 없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논란들 말이다. 약 5개월 전 유튜브에 올라온 2016년판 [고스트버스터즈]의 예고편에는 현재까지 ‘좋아요’가 29만 번, ‘싫어요’는 무려 그 세 배도 넘는 100만 번이나 눌러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던 [갓 오브 이집트] 예고편의 ‘싫어요’는 ‘좋아요’의 10,600번에 훨씬 못 미치는 1,300번에 그쳤으며, “2015년의 가장 큰 폭탄”으로 여겨졌던 [판타스틱 4]의 트레일러조차 ‘좋아요’가 ‘싫어요’보다는 많았다. 게다가 [고스트버스터즈]의 예고편 아래에는 “내 어린 시절을 망쳐줘서 고맙다”거나 “페미니스트가 세계를 망친다”, “저들 대신 ‘진짜’ 고스트버스터즈를 부르겠다”, “저들은 부엌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개봉 후에는 역시 재미가 부족하다는 리뷰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고 나오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다들 난리를 쳤던 거지? 이건 그냥 재미있는 영환데?

1984년 공개된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는 네 명의 남자 너드들이 유령을 소탕하고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멋지고 완벽한 영웅이 아닌, 조금씩 부족하고 특이해서 무시당했던 이들이 영웅의 자리에 오른다는 서사는 평범한 사람들마저 흥분시켰다. 2016년의 [고스트버스터즈]도 너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에린(크리스틴 위그)과 애비(멜리사 맥카시)는 어릴 적부터 유령의 존재를 주장하다 따돌림당한 경험이 있고, 고스트버스터즈의 무기를 책임지고 있는 홀츠먼(케이트 맥키넌)은 무기개발‘광’ 또는 ‘무기성애자’라 해도 좋을 정도다. 2016년 버전이 원작에서 단지 성만 반전시켰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스트버스터즈]는 주인공들이 너드일 뿐만 아니라 여성이기에 겪는 일들을 보여준다. 패티(레슬리 존스)는 유령을 잡으러 간 오지 오스본의 공연장에서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는 자신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자 이렇게 말한다. “이건 여성차별이야, 인종차별이야?” 여성이자 흑인인 패티의 상황을 단숨에 요약하는 이 대사를 빌리자면, [고스트버스터즈]는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건 너드차별일까요, 여성차별일까요?”

고스트버스터즈 멤버들이 ‘과학’의 철자도 모르는 학장에게 유치한 방식으로 조롱당하고, 유령의 존재를 당장 증명해보라며 불쑥 찾아온 마틴(빌 머레이)에게 무시당하는 장면들은 은근한 방식으로 사회의 성 차별적 시선을 반영한다. 고스트버스터즈가 올린 영상 아래 “아줌마들이 뭔 유령을 때려잡는다고”라는 댓글이 달리거나, 오지 오스본의 공연이 열리고 있는 극장의 주인이 처음 고스트버스터즈와 맞닥뜨린 후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모습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유령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뉴욕 시장의 비서 제니퍼 린치(세실리 스트롱)가 고스트버스터즈의 존재를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과 대중 앞에서 “외롭고 불쌍한 여자들”이라 설명하는 장면 역시 권력을 갖지 않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대상화될 때만 겨우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여성들의 현실을 풍자한다.

30여 년 전 [고스트버스터즈]는 너드의 영웅담을 코미디와 섞어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금의 [고스트버스터즈]는 너드이자 여성이 겪는 상황을 코미디로 만들며 더 새로운 영웅서사를 제시한다. 이를 ‘단순한 성 반전’이라고 말해도 될까? 고스트버스터즈 멤버들과 같은 ‘여자 너드’가 영화나 드라마에 얼마나 나왔었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지만 종종 실수도 하는,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의 인간처럼 그려지는 여성 캐릭터는 또 얼마나 되는가? 무엇보다, 어딘가 부족한 여성들이 극 중에서 일찍 퇴장하거나 비뚤어지지 않고 마무리되는 서사는 과연 얼마나 있었나? 고스트버스터즈가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것은 ‘너드차별’과 ‘여성차별’을 동시에 겪는 이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설득하는 과정이며, 덕분에 2016년의 [고스트버스터즈]는 원작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원작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갖게 되었다.

영화평론가 로비 콜린은 [텔레그래프]에 실린 ‘Message to the sexist Ghostbusters trolls’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악역 로완(닐 케이시)의 유령이 애비의 얼굴을 빌리는 시퀀스를 의미 있는 순간으로 꼽았다. 자신을 무시했던 세상에 복수하겠다고 밝힌 로완에게 애비가 이야기하듯, [고스트버스터즈]의 여성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로완만큼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로완처럼 ‘흑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지식과 노력을 통해 자신들이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할 뿐이다. 세 명의 과학자는 물론, 지하철 공사의 직원으로 일하며 사람들에게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던 패티도 독서를 통해 쌓은 지식을 기반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다. 특별하게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어딘가 모자란 사람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고스트버스터즈]는 원작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그대로 이식하는 데 멈추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선언한다. 그리고 당연히, 여성 역시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개봉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각각 레이(데이지 리들리)와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라는 여성 히어로의 상을 새롭게 제시한 바 있다. [고스트버스터즈] 역시 원작 주인공들의 성별을 바꿈으로써 현실의 불합리를 묘사하는 동시에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려 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야 하는지까지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재미는 단순히 ‘웃기는 장면이 얼마나 나오는가’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와 풍경을 제시해내는 데서 비롯되기도 하며, [고스트버스터즈]는 여전히 남성 위주의 히어로물이 대부분인 세상에 새로운 이정표를 꽂았다. 극 중에서 애비는 자신들의 성과를 빈정대며 부정하는 마틴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아무것도 안 하고 팔짱만 낀 채 남의 일에 초를 치기는 쉽죠.” 지금 [고스트버스터즈]가 갖는 의미를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조금도 고민하지 않은 채 재미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쉽다. 다만 이건 기억하자. 페미니즘이나 성 평등은 재미를 해치는 게 아니라 2016년, 바로 지금 재미의 새로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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