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우리 새끼], 아버지 없는 가부장 예능

2016.09.08

SBS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남성들은 어머니들에겐 여전히 미숙한 아들이다. 파일럿 방송 당시 생후 581개월로 소개됐던 김건모는 정규 편성 첫 화에선 생후 583개월로 더 성장했지만 여전히 어머니 이선미에게는 밤새 술 마시고 늦게 일어나 라면으로 해장하는 딱한 아들이다. 박수홍의 어머니 지인숙은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아들이 안쓰럽고 못마땅하다. 김제동은 어머니 박동연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혼자 부엌에 서서 밥을 먹는 모습에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힌다. 그나마 개인주의자에 가까운 허지웅의 어머니 김현주도 아들의 마른 몸은 걱정이다. 이 모든 것을 더한 것보다 더 크고 공통적인 걱정은 그들 모두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혼을 경험한 허지웅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자 어머니들의 대화는 MC 신동엽의 말처럼 ‘기-승-전-결혼’으로 이어진다.

성인들의 일상을 어머니가 감시하고 참견하는 것은 분명 과하다. 단지 아직 결혼을 못하거나 안 한 아들에 대한 어머니들의 선의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오히려 여기에 있다. 비혼을 삶의 한 방식이 아닌 결핍으로 이해한다는 것. 파일럿 에피소드의 제목은 ‘아들아, 장가 좀 가자’였다. 물론 결혼에 대한 압박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부모들의 흔한 레퍼토리지만 [미운 우리 새끼]가 더 문제적인 건, 아내가 챙겨주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암묵적 전제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의 걱정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대체해줄 며느리에 대한 요청으로 이어진다. 이선미는 며느리의 이상형으로 “결혼하면 일을 접고 애를 셋 낳을 것”이라 발언한 적 있는 성유리를 꼽고, 김건모의 소개팅 상대로 아나운서가 나오자 “(일을) 그만두면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들의 아내란, 자기 대신 아들의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이다. 단순히 아들의 짝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전통적인 가족 내 성역할을 지정한다는 면에서 이것은 다분히 가부장적인 태도다.


이 쇼를 단순히 모자 관계에 대한 관찰기나 극성 엄마의 오지랖으로만 볼 수 없는 건 이 지점이다. [미운 우리 새끼]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극성스런 어머니가 아니라 부재하는 아버지다. 가부장제의 상징적인 지배자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융통성 있게 “처가살이도 좋으니” 결혼만 하면 좋겠다는 박동연이나 아무라도 결혼만 하면 좋겠다는 지인숙조차 연상 며느리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미 나이 지긋한 아들을 둔 그들에게 아들보다 연상인 며느리는 “아이를 못 낳으니까”(이선미) 받아들일 수 없다. 그에 반박하는 신동엽조차 70세에도 아이를 낳은 사례가 있다고 말할 뿐이다. 아이를 낳는 건 선택의 문제이며, 특히 임신은 당사자인 여성의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건 고려되지 않는다. 이처럼 프로그램은 마치 모자지간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유대 관계와 모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가부장제를 재생산한다. 좀 더 정확히는, 가부장제의 낡고 불평등한 규칙이 마치 모자 간 인륜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박동연은 “네(김제동)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말하지만 뒤이어 “2세는 언제 볼지 암담”하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부재해 있지만, 그 부재를 통해 더 크고 은밀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단순히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어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나이 든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빈 칸에 (어머니 마음에 드는) 며느리의 자리를 놓고 판을 짠 [미운 우리 새끼]의 기획에 내재된 입장에 가깝다.

하여 [미운 우리 새끼]라는 기획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긍정하는 것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수직적이거나 수평한 관계가 아닌, 가부장제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과거 여자친구가 어머니에게 딸처럼 해주길 원해서 괜히 어머니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허지웅의 고백에 MC 한혜진은 “생각이 깊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여성을 자기 가족 안에 흡수시키고 싶다는 가부장적인 욕망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한 번 정당화되고 긍정된다. 어머니들이 영상을 보고 참견을 한다 해도 결국 VCR을 통해 비춰지는 철없는 남자의 서사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들의 한숨은 역설적으로 아직 가부장이 되지 못한 남자의 철없음을 아직 덜 자라 어쩔 수 없는 것 정도로 축소한다. 소개팅 분위기를 살리겠다며 “니쌩거똥꼬빵짱와” 같은 민망한 ‘아재 개그’를 던진 뒤 주선자에게 한 소리 듣자 삐쳐서 짜증을 내는 김건모나, 역시 소개팅 자리에서 비록 양해를 구했다지만 길을 지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말을 걸며 앞에 있는 상대를 무안하게 한 김제동의 경우 무례를 저지른 게 맞다. 촬영 과정에서 떨어진 여자 스태프의 머리카락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허지웅도 성숙하다고 보긴 어렵다. 남자가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드는 게 아니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제의 비호 아래, 무례하다는 술어가 들어갈 자리에 철없다는 술어가 들어가는 것뿐이다. 앞의 상황에서 김현주는 김건모에 대해 “소년 같다”고 평했다. 미운 오리 새끼는 수많은 괄시를 견뎌내고 백조가 됐지만, 정작 ‘미운 우리 새끼’는 너무 후한 평가를 받는다. 생후 수백 개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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