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바른 마음], 역겨움 테스트

2016.09.09
줄리와 마크는 친남매다. 대학생인 둘은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에 섹스를 했다. 어떤 강제도 없는 합의였다. 목격자는 없고, 피임은 완벽했고, 둘 다 성인이며, 불쾌함 없이 즐겼다. 둘은 남에게 말하거나 다시 섹스를 시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후에 둘은 어색해지지 않고 더 친밀한 남매가 되었다. 자 그러니까, 피해자가 아무도 없다. 이 섹스는 잘못일까?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악취미로 단연 첫손에 꼽을 만한 과학자다. 그는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지만 금기를 위반하는 이야기’를 잔뜩 만들어서, 세계를 돌며 여러 문화권 사람들을 조사했다. 사람들은 기겁하며 잘못이라고 외치지만 따져볼수록 난감해한다. 완전히 잘못이다. 그러나 완전히 무해하다. 이 때 사람들은 이야기의 설정을 벗어나서라도 어떻게든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알아채지는 못해도 영혼 깊은 곳에서 죄책감으로 상처받을 것이다!” 여기서 하이트의 유명한 통찰이 나온다. 잘잘못은 판단하는 것은 본능적 도덕 직관이다. 성은 직관이 내린 결론에 이유를 덧붙일 뿐이다.

인간의 본능적 도덕 직관은 “피해자가 있는가?”만을 묻지 않는다. 성스러움과 역겨움, 충성과 배반, 권위와 전복도 중요한 기준이다. 줄리와 마크는 특히 역겨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인간은 잡식동물이고, 새로운 먹이에 도전하는 전략과 피하는 전략 사이를 진자운동하며 진화했다. 역겨움은 위험할지 모를 먹이를 피하는 보수적인 방어체계다. 지나치게 도전정신이 강하면 독성 먹이를 먹고 탈락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보수적이면 더 좋은 먹이를 발굴한 이들에 밀려 탈락한다. 현대에 살아남은 우리에게도 이 진자운동은 남아있다. 보수주의자는 역겨움 테스트에 더 가혹하고 진보주의자들은 더 관대하다.

피해자를 따져보고 의견을 바꾸는 집단이 있기는 있었다. 서구의, 교육받고, 산업화되고, 부유하며, 민주주의적인, 머릿글자를 따서 ‘WEIRD’가 그들이다. 여러 심리학 연구가 대상으로 삼는 ‘표준 인간’이다(연구자의 캠퍼스에서 특히 싸고 빠르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예외 중의 예외, 그야말로 weird(기묘한)하다. 하이트는 역겨움 테스트와 같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파생한 본능적 도덕 기반을 6개 발견했다. 피해자가 있는지만 따지는 WEIRD식 합리주의 도덕관념은 끽해야 이 중 두어 개만 설명한다. 도덕의 세계에서 합리주의자는 소수파다.

주로 WEIRD인 미국의 리버럴에게는 거의 합의에 가까운 통념이 있다. 보수주의자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약한, 한마디로 도덕적이지 않다는 통념이다. 하이트의 책 [바른 마음]은 결정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하이트가 보기에 미국 리버럴이 실패하는 이유는, 보통사람의 계급적 대변자는 될지 몰라도 도덕적 대변자가 되지 못해서다. 리버럴의 합리주의 도덕관은 인간의 본능적 도덕 직관보다 대역폭이 좁아서 보통사람 눈에 weird해 보인다. 줄리와 마크가 잘못이 없다는 합리주의자란 얼마나 미친놈처럼 보이겠어. 유권자의 이성이 아니라 도덕 직관을 공략하라는 하이트의 진단은 정치 전략가들을 열광시켰다.

한국도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도덕과 정의를 독점했다고 믿는 확신은 한국의 진보파 사이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경향이 특히 강한 이들은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어째서 독재세력의 후예이자 부자를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지”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며, 자신의 정의로움을 더 널리 알리기만 하면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이트식 도덕 이론이 한국 정치에도 유효한 설명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옳을 것이다. 선거는 ‘정의가 승리하는 게임’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더 정의롭다고 더 많은 사람이 믿게 만드는 게임’에 가깝다. 때로 둘은 정반대의 목표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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