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김유정, 경계의 얼굴

2016.09.19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남장을 한 여자 홍라온을 연기하는 김유정은 예쁘장한 소년 같은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먹는 모습으로 세자 이영(박보검)을 기겁하게 만들고, 도리어 이영에게 “여리여리 화초처럼 고운 사내도 있는 법”이라며 ‘화초서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홍라온과 이영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이성애적 로맨스가 배제된 것만은 아니다. 한참 키 차이가 나는 이영의 관을 씌워주며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로맨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어느 순간 무희로 변장해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젠더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소년처럼 보이며, 사실은 성숙한 여성의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기 때문에 로맨스를 가능하게 하는 캐릭터. 이런 홍라온의 캐릭터를 설득하는 것은, 자신이 성장하는 나이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10대와 성인 여성의 경계에 다다른 김유정의 힘이다.

네 살에 단발에 동그랗고 큰 눈을 빛내는 어린 아역으로 처음 등장했고, MBC [동이]와 [해를 품은 달]처럼 굵직한 드라마들에서는 귀여우면서 연기까지 잘하는 기특한 아역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1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는 착하고 선하기만 했던 아역 때의 역할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10대의 속내를 드러내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친구를 교묘하게 따돌리는 가해자 화연을 연기했던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친구들에게서 관심과 주목을 끌고 싶어 하지만, 끝내 자신이 다음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화연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냈다. MBC [앵그리맘]에서는 자해를 하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을 실감 나게 연기해내며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느끼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생생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김유정은 [우아한 거짓말]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마치 뱀이 허물 벗을 시기가 오면 옷을 벗듯이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 단계 올라가고, 성장한 느낌이었다”([MBN])라고 이야기했다. 자기 자신의 나이를 그대로 반영한 학생의 역할을 연기하면서도, 그 안에서도 자신이 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결의 모습들을 드러내며 성장한다. 자신의 나이대를 활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전에 기대되었던 모습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의 단계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김유정이 보여주는 홍라온은, 이제 열여덟이 된 김유정이 자신이 서 있는 경계의 영역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하나의 방식처럼 보인다. 이제 청소년을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아직 성인 여성은 아닌 그 사이의 어떤 경계. 그 속에서 김유정은 성공적으로 그 전에 보여주던 학생의 얼굴을 벗고, 동시에 사람들을 속이고 남자의 모습으로 궁에 들어가는 쾌활한 소년과 처연한 표정을 한 여성의 얼굴을 자유롭게 오가며 보여준다. 그러면서 지금 김유정은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가는 여주인공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아역에서 시작해 어느새 성인이 되어가는 배우가 보여주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며 성장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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