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만의 와일드월드

‘생식의 날’이라니

2016.09.19
“아름다움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식 능력에는 있죠”, “생식 능력은 공공재입니다”, “남자의 생식 능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약합니다”, “헌법은 양심과 책임감 있는 출산을 보장합니다”, “서두르세요. 황새만 기다리고 있지 마세요”, “젊은 부모들에게. 창조적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아십니까”. 문장만 놓고 봐도 끔찍한 이 문구들은, 최근 이탈리아 보건부의 출산 장려 캠페인에 사용된 것들이다. 이 문구들을 배경 이미지와 함께 보면 한층 더 끔찍하다. 예를 들면, 생식 능력엔 나이가 있다는 문구의 배경 이미지엔 모래시계를 들고, 자신의 아랫배를 한 손으로 감싸 쥔 여자가 서 있고, “생식 능력은 공공재입니다”라는 문구의 배경에는 수돗물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9월 22일을 “생식의 날(Fertility Day)”로 정하고, 시민들에게 가족 계획과 출산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로마와 볼로냐, 카타니아, 파도바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문구들은 생식의 날 이벤트의 일부로 기획된 12개의 프로모션 이미지에 나오는 것들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상할 수 있다시피, 이 프로모션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 정부가 프로모션을 위해 만든 #FertilityDay 해시태그는 이 이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점령했고, [가디언]에는 “이탈리아 생식의 날 포스터는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과거 파시스트들이 했던 일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라는 논평이 올라왔다. 비슷하게, [엑스트라뉴스피드]는 이런 문구들이 마가렛 애트우드의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 [시녀 이야기]에서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은 원래의 이름을 빼앗기고, 계급화되어 출산의 역할을 담당한다. “생식 능력은 공공재”라는 문구는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당연하게도, 생식 능력은 공공재가 아니다. 여성의 몸은 온전히 여성의 것이고, 국가를 비롯해 그 누구도 여성의 몸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생식 능력이 공공재라는 말에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반인권적인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또한, 국민 모두를 아이를 낳는 도구로 본다는 점에서, 이 광고는 여성만이 아니라 모두에 대한 모욕이다. 노령화나 경제 성장 문제 때문에 국가적으로 출산을 장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쿼츠]가 지적하듯, 지난해 이탈리아의 25세 이하 실업률은 42%에 달한다. 당장 먹고살기가 힘든 상황에서 광고를 보고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극적으로 저출산 대책은 경제 안정을 통해 육아가 어렵지 않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엑스트라뉴스피드]는 이탈리아에서 이런 공익 광고가 나온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선 여성의 재생산권이 온전히 인정되지 않고, 아이를 갖고자 하는 커플은 반드시 이성애자 커플이어야 한다. 또한, 아이를 가진 여성은 사회적으로 직장 내에서 경력을 이어가기 힘들다. 이 모든 성차별적 관행들이 결국 이 광고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어떨까? 과연 한국은 이런 성차별적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60년간 결혼한 여직원에게 퇴사를 강요한 주류업체 금복주의 이야기가 알려진 게 겨우 올해 초다. 한국의 작년 출산율은 1.25명보다 낮다. 이탈리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낮은 출산율의 원인에는 경제적 불안정 외에 성차별적인 문화도 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세우고자 한다면, 여성의 몸을 공공재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전략이 있다. 그 전략의 시작은 경제 문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성평등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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