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 끊는 남자들│① [시사IN]을 절독하는 정의의 파수꾼들

2016.09.19
어떤 가설은 그에 대한 반박을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된다. 지난 8월 말, 시사주간지 [시사IN] 467호의 커버스토리 ‘분노한 남자들’의 메인 기사였던 ‘정의의 파수꾼들?’은 김자연 성우의 메갈리아4 티셔츠 구매 인증으로부터 촉발됐던 메갈리아 논쟁에서 왜 분노가 끓어올랐는지 분석했다. 기사는 “자신들이 상식적이고, 진보적이고, 정의롭고, 사실에 충실하다는 자의식이 있”는 ‘선량한 남자들’이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무차별로 노출”된 뒤, “자신들이 노출된 ‘이유 없음’이 여성들이 노출된 (그동안의) ‘이유 없음’과 구조적으로 같다는 인식”에 이르는 대신 “나의 정의로움”을 지키기 위해 “여성의 현실을 기각”하고 “‘여성혐오’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사유의 지형도를 빅데이터와 함께 그려냈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해당 잡지가 매대에 풀리기도 전에 해당 커버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으며, 실질적인 구독 해지 사태로 이어졌다. “나의 정의로움”을 부정당한 것에 대한 ‘선량한 남자들’의 반격이었다.

[시사IN]은 지난해에도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이라는 기사에서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한 미러링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현실 속 여성혐오의 맥락 안에서 분석한 바 있다. 고제규 [시사IN] 편집국장은 당시엔 “전혀 지금 같은 반응은 없었으며, 오히려 잘 읽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 같은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이번 기사는 메갈리아4 티셔츠 사태로 폭발한 남자들의 분노에 대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메갈리아에 동조하는 진영이 구축되어, (중략) 선량한 남자들을 포위하고 있다. 이 부당한 탄압의 서사는 분노한 남자들의 전투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노의 방식은 [시사IN] 절독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단지 김자연 성우의 부당한 계약 해지에 반발하고 양심의 자유를 옹호했다는 것만으로 다수의 웹툰 작가들이 ‘메밍아웃’을 했다고 낙인찍은 것처럼, 상당수 독자들은 이 기사를 ‘친 메갈리아’로 규정하고 절독으로 보복했다. 기사 자체가 기사의 반응에 대한 예지적인 분석이 된 셈이다.

절독은 소비자로서의 반품과 언론에 대한 시민의 피드백, 두 가지로 기능할 수 있다. 둘 다 독자의 권리다. [시사IN] 절독이 분열적인 건, 스스로는 언론에 대한 정의로운 피드백이라 정당화하지만 정작 그 방식은 소비자의 그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사IN] 468호에선 이 사태를 ‘혐오 대 반혐오’의 시각에서도 다뤄줘야 하지 않느냐는 독자 의견이 있었다. 이해되지만 적절한 피드백은 아니다. 해당 기사는 이미 그런 반혐오의 도덕적 직관이 어떤 구조적 맹점을 지닐 수 있는지 짚어냈다. 기사는 무차별적인 여성혐오가 실재하고 미러링이 그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도와준다는 논의의 지평을 열었고, 그 위에서 기사에 대한 세부적인 동의 혹은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런 논의야말로 언론이 열어젖히는 공론장의 중요한 기능이다. 논쟁적인 지평을 만드는 대신, 어느 집단의 직관에 맞춰 현상을 해석해 제공하는 건 어느 정도 도덕적 목적에 기댄다 해도 세일즈에 가깝다. 고제규 편집국장은 “오래된 독자층이 이탈하는 건 안타깝지만, 독자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 안에 성역이 생기는 거고, 자연스럽게 콘텐츠는 망가질 거”라 예상한다. 입맛이 충족되지 않아 실망했다면, 그래서 절독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그것은 담론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입맛에 맞지 않는 상품에 대한 반품이다. 변한 건 매체가 아니라, 고객으로 돌변한 독자들이다.

절독 사태에 이어 벌어진 욱일기 논란이 앞서 벌어진 웹툰 작가들에 대한 보이콧 운동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기자협회보]에 실린 [시사IN] 사무실 사진에 태극기와 합성한 욱일기가 걸렸다는 것이 문제 되자 편집국장은 355호 표지를 위한 소품을 보관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초 커뮤니티에선 2년 동안 걸어놓는 것엔 속셈이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대세다. [시사IN]이 친일 매체라는 가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에 비판적인 기사를 낸 이유에 대한 수많은 가정을 도입하는 것보다는 예전 소품을 그냥 두고 있었다는 설명이 훨씬 깔끔하다. 하지만 이러한 음모론을 통해 그들은 ‘갑질’하는 고객이 아닌, 부당한 언론과 싸우는 약자의 포지션을 상상적으로나마 획득할 수 있다. 메갈리아4 티셔츠 논란 당시, ‘메밍아웃’으로 찍힌 작가 중 다수가 무수한 비난에 시달리고 그 반작용으로 몇몇 작가가 감정적인 반응을 한 것만으로 ‘독자를 개돼지 취급했다’는 허수아비를 만들고 억울해한 것과 거의 동일한 패턴이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시사IN] 커버 제목을 진지하게 ‘분노, 한남, 자들’로 믿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언론이 자신들을 은밀한 방식으로 특정해 공격한다고 믿는 과잉 자의식을 통해 선량하지만 배척받는 자신에 대한 자기연민의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매체와 독자 둘 중 하나가 진보냐 아니냐, 페미니즘이냐 아니냐, 메갈리아냐 아니냐, 라는 기준으로 나뉘는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상식적이고, 진보적이고, 정의롭고, 사실에 충실”하다고 믿는 작지 않은 집단이 반성적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것이 사태의 진실에 가깝다. 상대가 어떤 근거를 들고 오든 자신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 ‘친 메갈리아’라 규정하고 배제하는 메커니즘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모두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방식과 흡사하다. 절대 틀리거나 가해자가 되지 않는 자신을 기준으로 현실의 여성혐오를 외면하고, 한 노동자의 부당한 계약해지를 옹호하고, 그 부당함을 성토한 이들이 자신들을 모욕했다 여기며, 그 과정에 대한 합리적 문제제기를 한 언론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물론 모두 상대방의 문제다. 자신들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이 순환논법의 무한동력은 과연 그들을 어디까지 데려갈까. 그 끝은 상식도, 진보도, 정의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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