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장려 광고에 임산부는 없다

2016.09.21

핸드백을 든 여자아이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고, 마트 주차장에서 짐을 실으려는 여자아이 앞에 누군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에게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이제 그만 퇴근하라며 웃는다. 아이는 “오늘도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엄마가 되는 기쁨, 모두의 배려에서 시작됩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아이는 임신한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환하게 웃는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출산 장려 공익광고의 내용이다. 여성들이 편안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임신부를 배려하자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그런데 광고 속 주인공은 임신한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훗날 낳게 될 어린아이다. 결혼한 지 6년이 되어가지만 여러 이유로 임신·출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광고가 정작 나의 존재는 지운 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최근 저출산 극복을 위한 임신부 배려석을 만들면서 좌석 바닥에 “핑크카펫,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캠페인의 주체에게 제대로 말을 걸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대상 설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꾸만 ‘내일의 주인공’에게 말을 거는가. 임신부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몸이 약하고 불편한 노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임신부의 신체적 고통조차 공감시키기 어려워서 대신 배 속의 아이를 내세우는 것이라면, 차라리 임신에 따른 신체 변화와 심신 약화 증상을 홍보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출산의 주체는 간단히 지워버리고 임신의 고통은 가볍게 건너 뛰어버린 뒤 ‘모두의 배려’에서 ‘엄마가 되는 기쁨’이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것만큼 공허한 외침이 또 있을까.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의 선한 의지나 배려라는 덕목으로 적당히 덮어 희석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사회적 배려라는 것도 결국 출산과 양육을 지원할 탄탄한 제도와 강력한 법적 실행 기반이 갖추어진 뒤에야 완성될 수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혹은 더 낳을 여건이 되지 않는 부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기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이 아니었던가.

또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다. 70년대 산아 제한을 외치던 시절의 광고에는 늘 부부가 함께 등장했다. 둘만 낳아서 행복하게 잘 사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양육하고 가족계획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광고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최근 방영되는 관련 캠페인은 출산과 양육의 짐을 여성에게 지우거나 죄책감을 부추기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어린아이로 대체된 임신부를 등장시키는 것은 물론, 먹고사느라 바빠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의 반성, 동생 없는 외로움을 안겨버린 엄마의 죄책감을 부각시킨다. 출산과 양육, 그리고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도대체 아빠의 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 한국생산성본부가 진행한 출산 장려 포스터 공모전에서는 ‘외동아에게는 형제가 없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지고 발달이 늦으며 자기중심적이 되기 쉽다는 메시지를 담은 일명 ‘누런 떡잎 포스터’가 금상을 수상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소구 대상을 설득하고 유인해야 할 광고가 정확한 대상을 설정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죄책감을 부추기거나 어떤 상태를 비하하는 자극에만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란 과연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정부는 수년째 저출산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온 양육비 증가와 고용 불안정, 보육시설 미비, 주거 불안 등 핵심 문제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는 식의 미미한 비용 지원으로 국가적 문제를 봉합하려 하거나 어느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는 광고에 전파를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출산을 위해 섹스를 하자’는 덴마크의 한 여행사 광고라도 벤치마킹하라고 권하고 싶을 지경이다. 아, 그렇다고 그 핑계로 덴마크로 외유 떠날 생각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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