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대나무숲에서 ‘당나귀 귀’는 자유로운가

2016.09.22
최근 학생들의 제보를 익명으로 게시해주는 페이스북 페이지 ‘경희대학교 대나무숲’에서 한 학생이 관리자에 의해 차단되었다. 해당 학생이 교내 폭행 사건을 제보한 대나무숲의 게시글에 “성별이 어떻게 됩니까?”라고 댓글로 질문했고, 그의 프로필에 ‘페미니스트’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본 다른 사람들이 이 댓글을 문제로 받아들여 댓글을 달면서 분쟁이 일어났다는 이유였다. 경희대학교 대나무숲은 이후 공지를 통해 “사회적으로 예민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될 가능성이 극도로 높고, 의도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를 만드는 내용의 댓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했다며 차단 이유를 밝혔다.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대학 대나무숲을 이용하던 학생이 차단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고, 이는 경희대학교뿐만 아니라 지금 대나무숲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

하루에 10~20개에서 많게는 100개의 제보가 들어오는 만큼 현실적으로 모든 제보를 게시하기는 어렵고, 대나무숲에는 ‘대숲지기’라는 관리자가 존재한다. 관리자들은 단순히 익명 제보를 페이지에 전달해 게시하는 전달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제보와 댓글을 관리하는 기준을 만들어 공개하는 역할까지 함께 수행한다.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의 관리자는 “필터링 기준은 익명성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고, 덕성여자대학교 대나무숲의 관리자는 “대나무숲은 중립을 지향하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경우 어느 한쪽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도록 양쪽의 의견을 모두 게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부의 논의를 통해 결정되는 필터링의 기준은 종종 관리자들의 판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최근 경희대학교 대나무숲은 공지를 통해 “경희대숲에 올라온 제보와 그 댓글들은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십만 명에게까지 노출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분쟁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제보를 업로드하지 않는 것은 쾌적한 대나무숲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필터링 기준을 밝혔다. 비슷하게 분쟁의 소지가 있는 경우 제보를 필터링한다는 기준을 가진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역시 “대나무숲이 이용자들의 쉼터가 되길 바라는데, 심한 분쟁성이나 다툼은 그러한 효과로부터 대나무숲을 과도하게 유리시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분쟁 없는 중립이라는 기준 안에서 필터링의 목표는 대나무숲의 이용자들이 불편해하지 않는 것이 되고, 관리자의 기준에 의해 무해하다고 판단된 제보들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대나무숲 페이지의 관리자들은 대부분 대나무숲이 “익명의 힘으로 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이 되는 것”과 “학내 구성원들이 이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이야기했다. 대나무숲은 학내 구성원 중 일부의 자발적인 지원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대나무숲의 관리자들은 대부분 페이지에서의 공개 모집과 내부 기준에 따라 선발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운영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나무숲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이제 다양한 학내 구성원을 대변하게 된 위치에 있을 때, 다른 구성원들과의 별다른 합의 없이 선발되는 관리자의 권한과 역할이 어디까지인가는 논의의 대상이 된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의 관리자는 “필터링에 대한 피드백이 들어오기도 한다. 관리자들은 그러한 피드백을 자기반영하거나, 월 1회 있는 회의에서 같이 논의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용자들이 익명으로 선발된 관리자들에게 페이지의 규칙이나 방향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창구는 많지 않다. 대나무숲을 종종 이용한다는 대학생 A씨는 “공정성이 거의 관리자 개인의 양심에 맡겨진 것인데, 그 점에서 관리자들의 조치나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가능하고, 이것이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대나무숲이 갖는 의미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각자가 가진 의미에 따라 대나무숲은 쉼터이거나 혹은 공론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작년 서울여자대학교 대나무숲에서는 학내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한 글에 대해 “논란이 될 만한 글”이라는 이유로 필터링하기도 했다. 대나무숲에서 필터링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이것을 공정한 토론의 장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학내 구성원의 힘으로 만들어진 대나무숲이라는 공간에서,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 자체가 소외될 수 있는 것일까.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흔치 않게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대나무숲의 의미란 무엇일지, 구성원들 스스로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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