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와 도쿄아트북페어

2016.09.23
도쿄아트북페어에 다녀왔다. 아트북페어는 언제나 굉장한 열기의 현장이 되는데, ‘공간이 비좁고 방문객이 많아서’라기보다 수많은 ‘나’가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독립출판 내지는 아트북은 책에서 결코 ‘나’를 더하면 더했지 덜어내지 않는다. 어떤 아트북은 쪽마다 쌓이는 나를 매번 조율해내는 대단한 기운을 뿜고, 어떤 아트북은 독자가 읽기도 전에 스스로 지쳐 버린다. 독립출판이 자아의 향연이라면 아트북페어는 작가가 직접 부스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 곱절이 된다. 그 곱절의 부스가 몇 백 팀 총집결하면 자연히 ‘지금 여기를 보라’는 외침의 현장이 되는 이치다.

그때 그 현장에서 책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표지로, 촉감으로, 입체로, 편집으로, 뚜렷한 레이아웃으로, 기획자의 힘으로, 제작자의 표정으로, 부연된 말들로, 가격으로, 부록으로, 연합으로, 그리고 이 모든 요소에 전혀 해당하지 않으면서 전부 꿰뚫는 에너지로 공간을 옮겨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광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점찍어둔 작가의 작업을 사는 일만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책을 맞닥뜨리는 것 역시 즐겁다. 현장을 멀리 혹은 높이 찍은 사진이 올해 아트북-신의 현재라면, 이것저것 사서 내 방에 펼쳐놓은 광경은 그 행사장에 ‘나’라는 키워드를 넣었을 때 나온 결과물이다. 어떤 방문객은 비슷한 감각의 책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세계 멸망을 꿈꾸는 책과 앙증맞은 캐릭터를 함께 사기도 한다.

판매 부스에 앉아 이런저런 장면을 바라보다가 맞은편 중국 출판사 Jiazazhi Press 부스 위에 가득 쌓인 담뱃갑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꾸 그 담뱃갑을 펼쳐보고 계속 웃기 시작했다.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확인한 후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스 앞으로 가, 담뱃갑을 펼쳐보고, 웃고, 몇 마디를 나누고, 그만 사 버렸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Until Death Do Us Part)]는 프랑스의 사진 수집가 토마스 소빈(Thomas Sauvin)이 8~90년대 중국 결혼식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수집한 책이다. 1쇄 1,000부, 2쇄 2,000부를 실제 담뱃갑에 넣기 위해 3,000갑의 담배를 사 케이스로 이용하고 안에 들어 있던 담배는 인쇄소에 주었다고 한다. 수집 과정 역시 범상치 않은데, 수소문하거나 공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재활용 시설에서 구한 50만 장의 네거티브 필름을 끊임없이 현상하고 스캔하고 재분류하여 얻었다. 이 과정은 [Beijing Silvermine - Thomas Sauvin]라는 짧은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리라’ 약속하면서 담배를 나누어 피는, 지금은 사라진 풍습을 한 권 내내 지켜보면 조금씩 이상한 감정이 일어난다. 작가가 결혼이라는 경사 장면 속에서 유독한 물질을 포함한 담배만을 솎아냈기 때문이다. 표지의 붉은 색은 행복한 빨강인가 위험한 빨강인가. 어째서 이 장면들을 조밀한 장정과 금장 제본으로 묶을 필요가 있는가. 의심과 질문 속에 낯선 장면들이 자리 잡는다. 토마스 소빈이 찍은 사진도, 찍힌 사진도 아니지만 되레 그래서 이 책은 내내 편집자의 이름을 보이지 않는 인장처럼 찍는다. 나를 완전히 배제한 척 나를 강조한다.

‘간지럽다’는 표현을 좋아한다. 이 간지러움이 불편하기도 하고 가렵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더 없었으면 싶고 종종 나를 놀라게 해주었으면 싶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간지러운 편집자가 고른 간지러운 사진들로 만든 간지러운 책이다. 아트북페어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훌륭한 것과 엉망진창인 것이 뒤섞여 있고 훌륭한 것이 꼭 좋지 않으며 엉망진창인 것이 꼭 싫지 않다. 극도로 쓸 데 있는 책과 쓸데없는 책이 함께 놓여 있고 쓸 데 있는 책을 읽지 않거나 쓸데없는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기도 한다. 이 책은 무엇이다 한 줄로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보거나 전혀 보지 않는다. 올해도 이상한 책들을 잔뜩 만났고 이들은 나 홀로 떠올리기 어려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들 덕에 얼마간 더 이상해도 괜찮을 것이다.

* 이로 님의 ‘그와 그녀의 책장’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새로운 필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이로

엉망진창입니다. 무명의 쓰는 사람. 책방 유어마인드와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운영합니다. [책등에 베이다](이봄)를 썼고 아직 이것이 그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새로운 책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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