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강한 여자의 위엄

2016.09.26
잘할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 이시영은 MBC [일밤] ‘진짜 사나이 2’(이하 ‘진짜 사나이 2’)의 해군부사관 편에서 윗몸일으키기 58개로 출연자들 중 1위, 3km 달리기 2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체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양상국은 그를 두고 “괴물”이라고 표현했지만, 알다시피 이시영은 괴물이 아니라 꾸준히 운동을 해온 복싱선수 출신이다. 지난 2010년 단막극 촬영을 위해 복싱을 시작한 이후 작품이 무산된 상황에서도 연습을 이어갔으며,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하고 인천시청 복싱팀에 정식으로 입단하기도 했다. ‘진짜 사나이 2’의 체력검정에서 팔굽혀펴기를 포기하게 만든 어깨 탈골 역시 복싱으로 인한 부상 때문이었다. 이시영은 단순히 운동신경이 좋은 여성일 뿐 아니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으로 몸을 다진 운동선수다.

“우리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이시영 후보생만큼은 이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자 중에서 사기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양상국은 이시영을 선수로 존중하는 대신 ‘희한하게 센 여자’ 혹은 ‘남자니까 당연히 이겨야 할 여자’로 평가했다. 박찬호 또한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거 이시영보다 못하세요?’라고 말한다”며 그때마다 “이시영은 여자가 아닐 겁니다”라고 답한다는 글을 썼다. 양상국처럼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과 이시영처럼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온 사람의 체력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어떤 이들은 두 사람의 성별 차이에만 집중한다. 타고난 체력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다 해도 선수로 활동할 정도의 훈련을 해온 여성이라면 얼마든지 체력적으로 뛰어날 수 있다. 오랫동안 운동선수로 살아온 박찬호조차 운동하는 여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건, 흔히 남성이 더욱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영역에서 여성을 평가절하 하는 시선이 얼마나 공고한지 증명한다. 양상국의 멘트, 박찬호에게 던져진 질문, 박찬호의 대답 전부 여성은 남성보다 강할 수 없다거나 남성이 여성에게 신체적 역량으로 밀리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이시영을 향한 편견은 단지 ‘여성’이라는 특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성이자 늘 신비롭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여겨지는 ‘여배우’이기 때문에 운동선수와 배우라는 직업의 간극은 맥락 없는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KBS [우리동네 예체능] 양궁 편에 출연한 이시영이 복싱 시합 직전 체중 조절을 하느라 국물만 먹다가 설사를 했다고 고백하자, 이수근은 “설사도 하세요?”라며 여배우에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 듯 장난스러운 멘트를 던졌다. 이시영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힘든 훈련을 거쳐야 겨우 링 위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지, 그러니까 전문적인 선수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고되다는 사실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날 이시영은 남자 선수와 스파링을 하던 도중 코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지만, 강호동은 여배우가 성형을 했다는 데 포커스를 둔 농담으로 또 한 번 이시영을 당황시켰다.

신체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데도 전문성을 존중하는 대신 여성이 아닐 거라고 말한다. 선수로서 겪은 일들도 여배우이기 때문에 때로는 놀림감이 된다. 여성도 얼마든지 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시선 속에서도, 이시영은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진짜 사나이 2’에서 3km 달리기 도중 그는 박찬호에게 “조금만 빨리 뛰십쇼”라고 재촉했지만 그를 도발해서 경쟁하거나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집단 전체의 기록을 향상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운동은 물론이고 해군기본소양교육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에이스지만, 점호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 쩔쩔매는 솔비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양상국 또는 박재정을 얕잡아 보거나 자신과 비교하지 않는다. 팔굽혀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해군부사관 훈련에서 줄을 멀리 던져낸 박찬호를 부러워하며 그처럼 강한 어깨를 갖고 싶다고 해맑게 털어놓는 한편, 그저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어려운 비상이함훈련을 성실하게 해낼 뿐이다. 남녀를 함께 섭외한 프로그램의 의도가 빤하게 보임에도 극단적인 남녀 성대결 구도가 연출되지 않는 건,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이시영의 보기 드문 태도 덕분일 것이다.

똑똑한 데다 체력적으로도 뛰어나고, 굳이 직책을 맡지 않아도 좋은 리더이자 든든한 동료로 활약하는 이시영의 모습은 김연아나 김연경이 그렇듯 특히 여성들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박찬호가 3km 달리기에서 리더를 자처하거나 훈련 도중 파트너 솔비에게 자연스럽게 지시를 내린 것처럼, 그동안 미디어는 물론 현실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리더 혹은 영웅의 자리는 정해놓기라도 한 듯 남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시영은 지금, 복싱 선수로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 사나이 2’에서 자연스럽게 제일 돋보이는 출연자가 되었다. 부모의 반대에 부딪히고, 온갖 부상을 당하고, 링 위에 선 순간에도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을 정도로 혹독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닦아온 끝에 얻어낸 결과다. 이시영은 복싱을 꾸준히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언젠가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시작한 일을 한 번도 끝낸 적 없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난 뭘 해도 안 되는 인간이구나’ 좌절했을 때 복싱이 생각났어요. 복싱 경기는 이기든 지든 끝이 있잖아요.”([경향신문]) 모든 여성이 강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여성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누구보다 강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여성이라면,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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