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작가 “이번 작품으로 작가라는 존재에 대한 답을 내리고 싶었어요”

2016.09.28
종종 자신의 작품에 글 쓰는 남자를 등장시키곤 했던 김은성 작가가 이번에는 아예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은 3년 전 빌딩 붕괴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다시 글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김은성 작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3년간 느낀 감정의 골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았다. 전작들에 비하면 좀 더 직접적이고, 그가 다루는 한국 근현대사의 폭도 넓다. 이것은 허구 속 한 작가의 이야기지만, 국가적 재난을 목도한 모두의 이야기임은 당연한 결과다.


포스터도 그렇고 작품 앞에 ‘김은성 신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번 [썬샤인의 전사들]은 저도 좀 낯선 것 같습니다. (웃음)
김은성
: 친한 작가 중에 한 명이 저처럼 됐다면 엄청 놀릴 것 같아요. “너 큰일 났다”고도 할 것 같고. 두산아트센터가 나를 한 방에 보내려고 하는 건가도 싶어요. (웃음) 기분 좋고 자랑스럽다기보다는요, 밤에 잠이 잘 안 와요. 공연이 잘 안 나오면 극장 못 올 것 같고. 하지만 제 삶에 있어서도, 작가 인생에서도 분명히 어떤 지점인 것 같긴 해요. 이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5년? 10년 정도 지나야 알 것 같아요. 잠깐 이러다가도 나는 다시 혼자 책상 앞에 앉아야 되니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자꾸 다독이고 있어요.

이번 작품은 [뽄드]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소개된 적이 있죠?
김은성
: [썬샤인의 전사들]의 시작은 2013년 초였어요. 이 작품은 제가 쓴 것이기도 하지만 두산아트센터, 특히 김요안 PD의 집념의 결과이기도 해요. 당시 PD가 영국의 트래버스 시어터와 협업을 하고 싶어 했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5개국 이상의 병사들이 아직도 한반도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이야기로 넓힐 수 있을 것 같아서 한국전쟁에 참여한 영국군 병사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어요. 영국 연출가들이랑 2년여에 걸친 워크숍을 가진 후 [뽄드]라는 이름으로 비공개 리딩도 했구요. 우리가 비극을 다루지만, 슬픔 이상의 화해의 가능성이나 어떤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흑인, 백인, 황인 병사들이 묻혀 있는 비무장지대에서 구멍 난 철모라든가 고장 난 박격포 같은 것들로 오케스트라처럼 음악 연주하면서 마무리하는 엔딩을 얘기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사이 그런 화해와 아름다움이 배부른 소리가 돼버린 거죠.

가장 큰 변화의 지점은 세월호 참사겠죠?
김은성
: 당장 우리나라가 이 지경인데 뭔 영국군 병사 이야기인가 싶었어요. 그래서 약속했던 집필 시간을 계속 못 지켰고, 결국 [뽄드]는 조금만 살아남고 모든 게 다 바뀌었어요. 세월호 참사 있던 날이 [뺑뺑뺑]이라는 작품 첫 리딩 날이었어요.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보고 나갔는데, 연습이 끝나고 나서는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모든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이 바다에 잠기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트라우마가 크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특히 저는 미약한 힘임을 알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세상, 내가 꿈꾸는 세계를 이야기하고 싶은 바람에서 대본을 쓰고 연극을 하는데, 당시에는 글 써서 작품을 만든다는 일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이를테면 팟캐스트를 하거나 주류 언론사에서 나와 현장에서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인들처럼 발로 뛰면서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

언제쯤 무력감을 딛고 행동을 시작하셨나요?
김은성
: 작년 연극계에 검열 같은 여러 일들이 있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내가 사는 연극 동네에서 벌어지니까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요. 작가들 모임에 나가서 성명서도 만들고, 피켓 들고 국회에도 갔고, 시위도 하고요. 그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무엇인가에 탄압받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경찰에 끌려가고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도 두렵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작업을 통해서 적을 향해 싸우는 일에 내가 능숙하지 않고, 능력도 없고, 되게 간이 작다는 걸 알게 됐죠.

늘 작품에서 사회의 그늘을 가감 없이 다루는 편이라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에 대해 투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요.
김은성
: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적이랑 싸우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적인 결단을 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면서까지 더 큰 그림을 봐야 하는데 저는 그 하나하나가 힘들었어요. 이를테면 존경하는 선생님들께 왜 발언 안 하시는지, 어디 좀 나오시라고 메일을 보내야 하는데 그 보내기 버튼 누르는 거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혼자 피켓 들고 가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꾸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물어야 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더라고요. 그 일을 겪으면서 몸도 아파버렸어요. 그래서 행동하는 이양구 작가나 임인자 예술감독, 김소연 평론가 같은 분들이 정말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더 존경하게 됐어요. 그 과정 끝에 제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다시 책상에 앉아서 이 악물고 글 쓰는 것 밖에 없었어요. 그 진심을 아무도 못 알아줘도 내가 부끄럽지 않으면 되니까. [썬샤인의 전사들]은 그렇게 이 악물고 쓴 작품이에요.

그래서인지 희곡 전반에 굉장한 부채의식이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은성
: 그냥, 작품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것에 대한 애착이 더 생겼어요. 어떻게든 내가 겪었던 세월호, 그걸 겪으면서 내가 내린 작가라는 존재에 대한 답을 내리고 싶었어요. [뽄드]에서는 영국군 병사랑 중공군 병사가 한반도에서 만나는 걸로 시작됐었는데, 그걸 제주도 소년병과 만주에 있는 조선인 출신의 중공군 병사의 만남으로 바꾸면서 [썬샤인의 전사들]은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소년소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된 거죠.

극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반영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부터 세월호 참사까지 근 80년간의 한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왜 이 시기인가요?
김은성
: 우리 현대사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분단이지만, 분단 이전에 우리 자체가 이 역사의 주인이 되질 못하고 있어요.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비극적으로 흘러간 역사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결과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더라도 세월호의 아이들은 사실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 어딘가에 갇혀서 죽어야 했던 아이들이 갖는 역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휴전국인데 전쟁이 나도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게 되게 큰 비극이에요.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요?
김은성
: 본능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위인전 읽기 좋아하고 사극 드라마 보는 거 좋아하고. 중·고등학생 때는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 조금씩 풀리던 박정희 공작정치에 대한 뒷얘기들, 공산주의자들의 삶을 다룬 책들을 읽고 재밌어했어요. 일제강점때 만주 같은 곳에서 중절모 쓰고 멋있는 옷 입고 아나키스트 운동하는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환상을 가졌어요. 무용가 최승희와 사회주의자 안막의 러브스토리도 재밌고. 아마도 역사는 이야기라서 좋아했던 것 같은데, ‘역사는 나선을 그리면서 전진한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한 보를 가려면 꼭 반 보 뒤로 갔다 가는데 우리 역사가 꼭 그런 것 같아요.

독자에서 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쯤부터 하게 되었나요?
김은성
: 중학교 1학년 때 국어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예쁨받고 싶었거든요. 나이 차 많이 나는 큰누나가 당시 문예창작과 학생이었는데 여고문집에 실었던 [데미안] 독후감을 필사해서 낸 적이 있어요. 이런 악랄함이, 표절이 글쓰기의 시작이었어요. (웃음) 그 이후로 백일장 대회도 나가게 되고, 다니다 보니 대략적인 시제를 알게 돼서 누나 문집에서 몇 문장을 컨닝페이퍼처럼 적어서 갔는데 한 번은 그게 딱 맞아서 큰 상을 받아버리기도 했어요. 시골에서 먹고살 만한 집의 부유한 막내아들로 태어났는데 집안이 갑자기 몰락하면서 결핍감 같은 게 있었나 봐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내가 그래도 좀 잘할 수 있는 게 책 읽는 거니까 내가 필자가 되고 친구들이 독자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던 것 같아요.

당시 쓴 건 어떤 것들이었나요?
김은성
: 중학생 때는 공책에 쓴 소설을 애들이 돌려 보곤 했는데, 첫 번째는 저를 모델로 한 사춘기 소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었어요. (웃음) 그 노트 지금도 있어요. 작가의 글까지 있었다니까요. ‘지난겨울은 혹독했다.’ 제목도 거창합니다. [겨울을 지고]. 그다음에는 야설 몇 편 써서 대흥행하고. (웃음)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맘에 드는 문예반 누나한테 시 잘 쓰는 거 보여주고 싶어서 시 공부 열심히 하고 그랬어요.

소설, 시, 희곡 중 무엇이 가장 작가님께 잘 맞다고 생각하세요?
김은성: 아직도 즐겨 읽는 건 한국 현대소설이지만, 산문 쓰는 건 왠지 두려운 게 있어요. 시는 긴 독백 같은 거 쓸 때 충족이 되는 느낌이 있고. 쓰다 보니까 희곡으로 시작이 됐는데 중·고등학교 때 피천득의 [인연]이랑 황순원의 [소나기]를 드라마화해본 적이 있어서 역사는 생각보다 길더라고요. 희곡은 낭독자를 통해 발표가 되잖아요. 내가 쓴 게 나도 모르는 독자에게 가닿는 것보다는 바로 눈앞에서 같이 읽고 반응을 보고 그 현장에 내가 함께 있다는 게 강렬한 흥미를 주지 않았나. 그래서 희곡에 대한 걸 못 버린 것 같아요. 북한학과를 다니다 몰래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에 합격했는데 집에서 반대하셔서 못 갈 뻔했었어요. 큰누나가 지금은 그때 공무원 시험 보라고 했던 거 미안해하죠. 그래도 연극 하는 건 가엽게 생각해요. 연극은 아직 메이저리그에는 진입 못 하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마이너리그 같은 존재인 거예요. 가족들에게마저도.

몇 년 전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극을 하는 이유에 대해 “팔리지 않는 이야기라서”라고 하신 말이 내내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떤 의미였나요?
김은성
: 물론 영화에도 김기덕이나 홍상수, 더 독립적인 작가들이 있죠. 그런데 대부분은 문제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기본적으로 여럿이 함께 봤을 때 불편해하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야 하는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을 보고 ‘저런 것까지 보여주나? 맞아, 진짜 저게 우리가 사는 모습이지’라고 깨달았던 적이 있어요. 불편할 수 있고 지독할 수 있는 지점까지도 얘기되어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연극을 하게 됐고, 연극을 좋아하게 됐어요.

연극은 관객과 배우 사이가 가까워서 오히려 그 불편함을 견디기가 더 어려울 수 있는데요.
김은성
: 진실하게 보여주려는 노력은 중요한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으로 치면 화술인 거고. 연극 막 시작했을 때 어떤 선배가 술자리에서 “연극은 꼬시는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사람이 누군가를 꼬시려면 윽박질러서는 안 되고 상대방이 내 이야기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래서 다소 너무 인간적이다, 신파적이다, 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할 수 없어요. [썬샤인의 전사들]도 관객들이 분노의 화살을 누군가에게 돌리는 게 아니라, 비극적 결말을 맺는 이들의 너무나 아름다운 어떤 한 시절의 생동감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썼어요. 그 생동감을 통해 관객이 분노나 그 너머의 다른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해야 됩니다’라고는 하고 싶지 않아요.

[썬샤인의 전사들]의 영문 제목이 [authors]라고 알고 있습니다. 점점 답답해지는 현실 속에서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김은성
: 지난번 두산아트센터 ‘한여름 밤의 낭독회’ 때문에 [목란언니]를 3년 만에 다시 봤는데 되게 참담하더라고요. 그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나아지질 않았어요. 휴전선 앞에 있던 철마가 점점 뒤로 가는 것 같아요. 2011년에 했던 [연변엄마]에 나오는 연변엄마도 되게 순수했는데, 요즘은 연변인들도 주변인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하층민들이랑 이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 시작됐더라고요. 올 연말에 재공연을 하는데 시의성이 없어서 대본을 크게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지옥 같은 나라가 없어요. 위쪽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제가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대의를 위해서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사라져버리고 있는데, 진실에 가까운 역사에 대해 계속 증언해야 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는 게 제 몫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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