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와 [문학과 사회], 우리 세대의 잡지를 갖는 기쁨

2016.09.28
드디어 이런 날이 왔다. 문학잡지에서 보이 그룹 샤이니의 종현과 웹툰 [미지의 세계]의 작가 이자혜의 육성을 블링블링한 컬러화보와 함께 만나는 날이. 그뿐인가. 불과 2,900원짜리 문예지가 등장한 것도 뜻밖이려니와 현학적 다변을 즐기는 초엘리트 진보남성들의 마지막 보루 같던 한 인문잡지는 돌연 지식인잡지의 몰성성(沒性性)을 “탈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쇄신’이니 ‘혁신’이니 하는 말들은 고사위기에 놓인 잡지들이 철마다 부르는 노래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 ‘몸 바꾸기’가 꽤 진지해 보인다. ‘좀비’에 비유될 정도로 생기를 잃어버린 한국문학장에 도착한 이 작고, 얇고, 알록달록한 문예지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무엇이 문예지들로 하여금 이 생경한 도전을 감행케 했나.

잘 알려졌듯, ‘문예지의 개변’은 작년 여름의 신경숙 표절논란 이후로 한국문학계에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일이었다. 문예지가 특정 출판사의 상품 카탈로그와 다를 바 없어졌다는 비판이 거셌던 것이다. 그 때문에 출판사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편집위원의 교체, 재미도 의미도 없는 비평의 청산, 독자와 소통하지 않는 진부한 특집‧기획의 쇄신, 따분한 편집 및 디자인 갱신의 필요성 등이 검토됐다.

한편, 더 직접적으로 문예지들의 경직된 몸을 자극한 것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젊은 여성들이 유도한 ‘감수성의 혁명’ 및 ‘인식의 갱신’이다. 기존 한국사회의 성 각본을 뒤집는 패러디적 실천이었던 메갈리안의 ‘미러링’을 그 시작으로 봐도 좋겠다.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탁월한 반격이면서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된 여성들의 자기계몽 방식이기도 했던 ‘미러링’의 언어적 쾌미와 서사적 수행성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주체화 과정을 통해 젊은 여성들은 ‘소라넷 폐지’, ‘몰카 근절운동’, ‘넥슨 부당해고 반대시위’,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시위’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면서 한국 지식문화장에서 가장 역동적인 주체로 부각됐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태가 명백하게 암시한 것은, 이제 기존 한국문화의 구조 및 내용 전반은 젊은 세대가 습득한 진화된 사회민주적 감수성에 따라 본격적인 심문의 대상이 되리라는 점이다. 문학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혁신’을 표방한 문예지들이 ‘세대’와 ‘젠더’를 핵심화두로 내세운 것은 자연스럽다. ‘편집자들이 만드는, 독자 위주의 잡지’를 표방한 [릿터] 창간호는 ‘저성장‧저소득‧저수익’이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운위되는 세계에 놓인 새 세대 ‘읽고 쓰는 존재’들의 정동과 그 대응책을 탐색했다. 그런가 하면, 편집위원의 평균연령을 30대로 대폭 낮춘 [문학과 사회]는 지금의 젊은 세대를 “가장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타주의와 지성적 연대를 희망하는 세대”로 규정하며 ‘하이픈’이라는 별권의 형식으로 ‘세대론’을 다뤘다. 통권 74호의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21세기 문학]과, 여성 편집위원을 새로 대거 영입한 인문비평지 [말과 활]도 세대‧젠더‧계급의 3중 구속을 가장 집약적으로 문제화한 여성혐오 정국의 함의와 페미니즘적 비전을 섬세하게 논했다.

이 ‘혁신호’들이 ‘세대’나 ‘젠더’ 혹은 ‘새로운 문학’에 대한 합의된 전망을 내놓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예컨대 [문학과 사회]의 필자 중에는 “세대는 세대 문학은 문학 나는 나”(김엄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세대 내부의 적대와 불일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세대론에 참여하는 방식’(박인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동성애의 서정과 소수의 서정”을 시로 쓰는 나의 이야기(김현)가 다음 세대의 “견본”이 될지 모른다고 고백하는 시인도 나타났다. 아무튼 이제 새 세대 문학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글읽기에 도전하거나, 한국문학을 외국문학 및 타 예술장르 옆에 놓아봄으로써 좀 더 유연하게 한국문학(장)의 미학과 감수성을 점검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이 야심차게 시도된 문예지들의 변신은 무엇을 뜻할까. 여기서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동시대 독자의 급진적 주체화야말로 문예지들의 자기혁신을 이끈 직접적인 동력이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문예지들은 여전히 ‘대중성/전문성, 상업성/예술성’과 같은 가짜 대립항을 헤어 나올 수 없는 덫처럼 여기며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을 거다. ‘페미니즘’이니 ‘N포세대’니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비문학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문학’이라는 이름의 낡은 신화에 홀로 자족했을 거다.

그러므로 이번에 문예지들이 분연히 감행한 ‘혁신’의 성공 여부를 점치는 일보다 더 깊이 음미돼야 할 지점이 있다. 그건 바로, 이제야 비로소 한국문학도 “자신의 삶을 객관화할 용기를 가지게”(이자혜) 됐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문예지들의 도전을 반길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문학의 ‘문학성’을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우리’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잡지를 갖는다는 것’의 진정한 기쁨이다. 그런 의미에서, 샤이니의 종현 님 인터뷰 한 번 더 하는 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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