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남초 시대│② 남자끼리 다 하는 한국 영화 ‘브로 테스트’

2016.09.29
거친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나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배신하고 미워하며 파국을 향해 달려가거나, 가끔 정의를 구현한다. 2013년 468만 관객을 동원한 [신세계]의 흥행 성공은 [친구](2001)의 시대 이후 또다시 이른바 ‘한국형 느와르’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9월 28일 개봉하는 [아수라] 역시 끈끈한 브로맨스와 높은 폭력 수위, 여성 캐릭터의 도식적 활용 등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상업영화에서 점점 뚜렷해진 패턴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과연 이 남자들만의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신세계] 이후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 연간 박스오피스 15위 안에 든 작품들을 중심으로 ‘브로 테스트’를 만들었다. 아직도 ‘상남자 취향 저격’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제작자들은 참고하시라.

* [아수라]와 [밀정]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주요 인물 두 명 이상의 직업군이 형사, 검사, 조폭인가?
범죄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물리력이나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쉽게 갈등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면에서 형사, 검사, 조폭은 이 장르 3대 직업군이다. [신세계]의 경찰 이자성(이정재)은 상사 강 과장(최민식)의 명으로 범죄 조직에 들어가 잠입 수사를 펼치던 중 조직 2인자 정청(황정민)과 가까워지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아수라]의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조폭과 손잡은 시장 박성배(황정민)를 위해 일하던 중 그를 치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의 협박을 받고 딜레마에 빠진다. 어딘가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겠지만 두 작품은 모두 ‘사나이 픽처스’에서 제작했다. [내부자들]에서 조폭 안상구(이병헌)와 의기투합하는 우장훈(조승우)은 경찰 출신 검사로 혼자 1인 2직업을 섭렵했다. 그러나 물론 이 분야 최강자는 황정민으로 조폭, 형사([베테랑]), 검사([검사외전])를 두루 거치며 트리플 크라운을 획득했다.

2. 다들 호형호제하고 있나?
칼춤 판이 벌어지고 피바람이 부는 세계에서도 남자들은 모두 가족 같은 사이다. 단지 조폭만의 얘기는 아니다. [아수라], [베테랑], [하이힐]에서 형사들은 동료이기 전에 형, 동생이며 때로는 범죄자가 형사나 검사를 ‘형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사나이들의 의리와 친밀감이 생명인 이 장르의 유구한 전통으로, 192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밀정]에서도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과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은 처음 만난 날 함께 술을 마시고 형 동생 사이가 된다. 그리고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 역시 이정출과 술을 마시고 밤낚시에 데려간 뒤 “앞으로 내 시간을 이 형께 맡기려고 합니다”라며 협조를 부탁하는데, 단언컨대 이는 [내부자들]에서 자신을 감옥에 보내려는 이강희(백윤식)에게 “저는 형님만 보고 갑니다”라던 안상구 이후 가장 무방비하고 유혹적인 고백이 아닌가.

3. 죽여야 하는 그를 차마 죽이지 못하나?
어제의 형, 동생은 오늘의 원수가 된다. 그러나 그동안 쌓인 정을 쉽게 끊을 수는 없다. [강남 1970]의 종대(이민호)는 자신의 ‘형님’을 죽인 과거의 ‘형’ 용기(김래원)에게 총을 쏘다가도 살려 보내고, [아수라]의 문선모(주지훈) 역시 형사 시절 ‘형님’이었던 한도경과 새 보스 박성배를 향한 충성 경쟁을 벌이며 반목하지만 막상 한도경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선 망설이다 어이없이 목숨을 잃고 만다. 게다가 [신세계]에서 정청은 이자성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덮어주며, 자신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이자성을 걱정하고, 산소 호흡기를 대 주려는 그를 만류한 뒤 숨이 끊어진다. [황제를 위하여]의 상하(박성웅)는 자신이 키운 수하 이환(이민기)에게 뒤통수를 맞고서도 그가 야망을 이루도록 돕고, 결국엔 이환을 구하려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이 세계에선 역시 형님의 사랑이다. 

4. 한 남자가 다른 남자 앞에 무릎 꿇는가?
강하고 아름다운 남자가 더 강한 상대나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무릎 꿇는 모습은 어쩐지 묘한 배덕감을 느끼게 한다. [내부자들]의 우장훈은 사직 위기에 처하자 부장검사에게 살려달라며 무릎을 꿇고, [아수라]의 한도경은 박성배를 배신하도록 종용하는 김차인 앞에 그 늘씬한 팔다리를 구기며 무너지고 만다. 한편 [하이힐]에서 형사 윤지욱(차승원)을 ‘진짜 사내’라며 찬양하고 “나하고 연 한번 맺어봅시다”라는 프로포즈성 발언까지 했던 조폭 허곤(오정세)은 막상 윤지욱이 장미(이솜)를 살리기 위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자 히스테릭하게 분노를 폭발시킨다. 누구보다 윤지욱에 대한 팬심을 열렬히 드러냈지만, 막상 여자가 되고 싶다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흑화했던 허곤의 무덤 앞에 윤지욱의 브로마이드를 바친다.

5. 두 남자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는가?
정청과 강 과장이 죽고 이자성만 남겨진 [신세계]의 마지막 장면은 6년 전, 여수에서 깡패 노릇을 하던 정청과 이자성의 즐거운 한때다. 싸우다 찢긴 옷에 피가 튄 얼굴로 담배를 나눠 피우며 쓸데없이 싱그럽게 미소 짓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아련히 멈춘다. [강남 1970] 역시 종대와 용기가 모두 죽은 뒤, 넝마주이 시절 허름한 방 안에서 신나게 권투시합을 하던 둘의 모습에서 막을 내리고, [황제를 위하여]에서도 상하가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것은 오래전 우연히 마주쳤던 어린 이환과의 첫 만남이다. 다행히 두 사람 다 살아 있다면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행복 찾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내부자들]의 우장훈은 출소 후 찾아온 안상구에게 “날도 좋은데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까?”라는 농담을 던지고, [검사외전]의 한치원(강동원)은 출소하는 변재욱(황정민)을 찾아가 두부를 내밀며 애교를 부린다. 그들의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은 왜 이리도 화창한지.

6. 여성은 마담이나 아픈 아내, 희생양인가?
[황제를 위하여]의 연수(이태임), [강남 1970]의 민 마담(김지수)과 주소정(이연두)은 모두 룸살롱에서 일한다. [신세계]에서 이자성의 아내 주경(박로사)은 임신 중 극도의 스트레스로 유산하고, [아수라]에서 한도경이 비리를 저지르게 되는 주 원인은 말기 암 환자인 아내(오연아)다. 마담은 대개 주인공과의 수위 높은 섹스 신을 담당하는 반면, 아내는 스킨십과 거리가 먼 상태로 보호받는 대상이다. 또한, 주인공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이힐]의 장미(이솜)처럼 납치당하거나 [아수라]의 형사 차승미(윤지혜), [신세계]의 경찰 신우(송지효)처럼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밀정]의 의열단 멤버 연계순(한지민) 역시 일본 경찰의 감시망이 조여오자 시선을 끌기 위해 가슴골을 강조하는 식의 ‘기지’를 발휘하는 여성이며, 결국 붙잡혀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모습으로 소비될 뿐이다.

7. 대화는 ‘씨발’과 ‘좆’ 사이사이 이루어지는가?
이 세계의 사나이들은 화가 나도 욕을 하고 즐거워도 욕을 하고 외로워도 슬퍼도 욕을 한다. [신세계] 정청의 대사처럼 “씨빠 부라더”, “씨밸러마”, “씨바라탱아” 등 다양한 변주가 쏟아지기도 하고, [아수라]처럼 영화 시작 후 타이틀이 뜨기 전까지의 약 12분 동안 ‘씌발’만 약 30번 이상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씨발’과 ‘좆’에 갇혀 빈곤해진 어휘는 죽어가는 문선모와 그를 바라보는 한도경의 비통한 심경조차 “나 좆됐다, 그치?”와 “너 살릴 거야, 씨발. 야 이 씨발 새끼야!”처럼 납작하고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박성배에게 총구를 겨눈 한도경의 마지막 한마디도 “좆이나 뱅뱅이다. 이 씌발놈아”이니, 이쯤 되면 일관성이라 해야 할까 집착이라 해야 할까. 

8. “나 대한민국 검사야”가 등장하는가?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검사들은 굳이 국적을 밝히며 자기소개를 한다. [내부자들]에서 지방대 출신에 연줄도 족보도 없어 무시당하던 우장훈이 마침내 정재계 고위층의 성접대 동영상과 비자금 파일을 공개하며 “저는, 대한민국 검사 우장훈입니다”라는 ‘사이다’를 터뜨린 것처럼. 반면 [아수라]에서 지방대, 비영남권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출세하기 위해 박성배에게 달려들던 김차인은 궁지에 몰려서야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라며 허세를 부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심지어 [검사외전]에서 검사 행세를 하던 사기꾼 한치원은 자신을 납치했던 조폭들이 검거되자 달려가 발길질하며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 임마!”라고 외치기도 하는데, 참고로 공무원자격사칭죄는 경범죄처벌법 혹은 형법 118조에 의해 처벌된다.

9. 역사는 룸살롱에서 이루어지는가?
룸살롱이라는 공간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은밀한 대화, 패싸움 혹은 살인, 그리고 여성의 가슴을 노출하는 것. 조직의 형님과 동생들이 단합할 때도, 부패한 공무원을 구스를 때도, 부잣집 아들을 함정에 빠뜨릴 때도 룸살롱에서의 질펀한 성 접대 장면이 필수요소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했던 이유다. 그러나 속옷 하의만 입은 여성 십여 명을 벽에 일렬로 세워 전시하고,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성적 행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내부자들]의 별장 신은 포르노에 가깝다. 또한 [강남 1970], [내부자들], [아수라]에서는 성 접대 현장 사진과 동영상이 거래와 협박의 만능 키로 등장하니 과연 도촬의 왕국다운 상상력, 아니 현실 반영이다.

10. 원수와 형님은 사우나에서 만나는가?
사우나라는 공간의 목적 역시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주인공의 복근을 보여주거나, 문신을 과시하거나, 엉덩이를 노출하는 것이다. 2인 이상이 사우나에 함께 있는 경우, [하이힐]에서 윤지욱의 조각 같은 몸을 넋 놓고 바라보다 두들겨 맞는 허불(송영창)처럼 될 수도 있고 [내부자들]의 이강희와 안상구처럼 한층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특히 [내부자들]의 과거 회상 신에서 이강희는 안상구의 미래에 대해 다정하고 따스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안상구 역시 “끌어만 주시면 짖지 않고 예쁘게 따라갑니다”라며 충성을 다짐함으로써 사우나 안의 공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다. 단, [내부자들]의 하체 노출 폭탄주 제조 신에 이어 [아수라]의 박성배 역시 사우나에 가지 않고도 말 그대로 ‘빤스를 내린’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이러한 시도에서 점점 더 ‘날것’에 가까워지려는 사나이들의 장르적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아니, 매우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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