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남초 시대│① 한없이 지루해진 지옥도

2016.09.29
한국 영화의 남초 현상이나 장르의 쏠림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요즘 대세는 [부당거래](2010)의 출현 이후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신세계](2013), [베테랑](2015), [내부자들](2015) 등 마치 바통 터치라도 하듯 이어지는 다수의 남성이 등장하는 ‘남자영화’다. 장르로 짚으면 범죄 액션 스릴러, 이것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면 권력의 암투와 폭력으로 얼룩진, 흔히 ‘지옥도’로 불리는 남성적 세계를 동경하거나 관음하는 영화다. 관객은 포스터만 봐도 쉽게 예상한다. 또 피 보는 영화인가? 황정민, 이병헌, 곽도원 중 하나는 어쩐지 꼭 나올 것 같고, 하나는 조폭, 하나는 검사나 형사, 다른 하나는 기업이나 언론에 종사하는 권력자일 것이다. 벌써부터 올 하반기 화제작인 [아수라], [마스터], [더 킹] 등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푸념도 나온다. 어느 영화 관계자는 “이러다 액션 누아르를 자기 복제하던 홍콩 영화 시장처럼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이 말이 호들갑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장은 왜 이런 것일까. 의외로 (혹은 당연하게도) 업계의 입장은 간명하다.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으니까.” 즉, 흥행에 안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상업영화의 경우 총 제작비는 과거에 비해 상승하고 있고 자연히 손익분기점(BEP)도 높아졌다. 한 영화 관계자는 “요즘 관객 반응은 모 아니면 도”라는 표현을 썼다. 한 영화에 관객이 100만 명도 채 안 들거나, 아니면 300만 명을 훌쩍 넘기지 그 중간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통상 순제작비 30억 원대에 BEP 150만 명 정도인 로맨스, 코미디, 휴먼드라마 등의 장르영화를 최근 몇 년 새 부쩍 만나기 힘들어진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즈를 키울 수 없는 장르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은 장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얼마 전 개봉한 [굿바이 싱글]의 관객 수(약 211만 명)가 예외적으로 특별해 보인다.)

최근 5년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만 훑어봐도 대작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배우들의 지명도는 여전히 영화를 선택하는 주요한 잣대이나, 실상 위력적인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남자배우에 대한 관객 선호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안전한 영화의 기준은 유명 남자배우들이 ‘떼로’ 등장하는 블록버스터라는 계산이 선다. 이러한 앙상블 캐스팅에도 장점이 있긴 있다. 검증받은 배우들을 중심축에 세운 만큼 그 주변부에 새로운 얼굴을 기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달수, 김성균, 조진웅, 마동석, 곽도원 등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수혜는 어디까지나 남자배우에 집중되어 있다.

남성 중심 영화의 흐름이 낳은 부작용은 또 있다. 폭력성과 선정성 문제다. 마약 등의 소재나 잦은 폭력 장면 때문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예고된 영화는 애초에 관객 파이를 키울 수 없으니 ‘세게’ 간다. 이런 영화들의 BEP는 보통 300만 명 내외. ‘19금’에 걸맞은 재미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을 만족시키는 차원에서 폭력성이든 선정성이든 한쪽이라도 수위의 볼륨을 키워야 안전해진다. 그래야 극장 매출에서 삐끗하더라도 입소문으로 부가판권 시장의 성과를 노릴 수 있다. [내부자들]을 떠올려보자. 영화의 내적 논리로 보면 다분히 소모적이고 비윤리적인 여성의 신체 노출 장면이 들어가 있지만, 영화의 외적 논리로 보면 필요악처럼 보인다. 최근 개봉한 [아수라]는 대신 폭력의 길을 택했다. 그 강도 면에서 일련의 남자영화의 정점을 찍어 고어에 가깝다는 평이 나돌 정도다. 

한국 영화 업계에서 거의 신격화되고 있는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듯, 그렇다면 데이터의 주체인 관객은 왜 이러한 영화들에 열광하는가. 나는 이런 흐름이 199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수혈되기 시작한 한국형 갱 영화인 ‘조폭영화’ 코드와 2000년대 중후반을 뜨겁게 달군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 2010년을 기점으로 촉발된 ‘사회고발’ 코드가 절묘하게 뒤엉킨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은 이 영화들의 오락적 측면 외에도 한국형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라는 거대담론에 동참하고 있다는 무게감, 거기서 오는 공분과 카타르시스에 전율한다. 조폭만큼, 혹은 조폭보다도 악랄하고 비열한 권력자들의 악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리얼리티에 기반하고 있다는 착시 아닌 착시를 느끼는 것이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와 현격한 만듦새의 차이를 보이던 한국 영화가 90년대 이후 ‘방화’라는 오욕을 벗을 수 있었던 결정타가 뭐였나. 다름 아닌 할리우드 영화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한국적 현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는 승부수였다. 이를테면 [살인의 추억](2003)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한국 영화 풍토에서 스릴러는 낯선 장르였다. 당시로서는 거의 실험적이라고까지 불렸던 [살인의 추억]의 열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추격자](2008)가 다시 한 번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증명해내면서 리얼리티에 기반을 둔 스릴러라는 모험이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흥행이 보증된 한국형 장르가 하나 발명된 것이다. 이는 투자의 안정성으로, 쏠림 현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쏟아진 범죄 스릴러 영화들이 자기 복제나 도식성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중 최근 개봉한 [아수라]를 끌어들여 보자. 이 영화에서 새로운 점을 굳이 꼽자면 황정민과 정우성의 투 숏을 스크린에서 처음 보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앞으로 스타 남자배우들을 얼마나 더 기발하게 조합해내고, 신스틸러를 누가 더 잘 발굴하는지가 이런 류의 영화들이 내거는 모험의 전부가 아니길 바란다. 더구나 이대로라면 한국 영화는 폭력성의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영화를 통해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생태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사회는 그만큼 남성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고,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 역시 뿌리 깊다. 하지만 현실이 폭력적이라고 해서 영화가 반드시 폭력적일 이유는 없다. 현실의 폭력성이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합리적인 변명은 될 수 없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현실을 반영하되 넘어서는 법이다.

만약 관객이 한국 영화의 이러한 추세에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언젠가 그 무시무시한 ‘데이터’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검증된 데이터를 통해 운신하는 것이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의 매뉴얼이라면 우리는 아마 최소 내후년까지는 이 피로감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제작되고 있는 ‘남자영화’들이 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 불기 시작한 젠더스와프 바람처럼, 제작을 고려하고 있는 한국 영화 중에는 전형적 남성 주인공을 여성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분명 존재한다. 이것이 단지 영화의 신선도를 올리기 위한 손쉬운 모색에 불과할지, 그 세부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의주시할 필요는 있지만,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기획되고 있다는 소식만으로 환호하게 될 만큼 지금 한국 영화계는 갈증 상태이며,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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