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의 패배│② 김성근의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들

2016.10.04
SK 와이번스(이하 SK) 왕조를 이끌던 시절, 김성근은 팬에게든 안티에게든 승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사회 곳곳에서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리더십에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가르침을 청한 건 당연한 일이다. [리더 김성근의 9회말 리더십] 같은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그는 동시대의 손자이며, 클라우제비츠였다. 하지만 정작 뜨거운 열광과 관심 속에 한화 이글스(이하 한화) 감독으로 프로야구에 복귀한 그는 자신의 감독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실패를 겪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길 줄 아는 지도자였던 그는 지금 왜 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현명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의 목록이 있지 않을까. 그의 성공에서 가르침을 원했던 것처럼, 그의 실패에서도 가르침을 청하려는 건 그 때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 전 경기를 다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없다
단순히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 혹사하면 탈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것은 좀 더 복잡한 문제다(물론 앞의 것도 포함되는 문제다). 이번 시즌 한화의 투수들은 선수 각각이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도 했지만, 선발과 불펜의 역할 분담 없이 언제 어느 때고 필요할 때면 출격해야 했다. 12실점을 하는 동안 교체를 해주지 않아 ‘벌투’ 논란이 벌어졌던 4월 14일 경기에서의 한화 송창식은 전날 구원투수로 나왔고, 당일에는 선발투수가 1이닝도 채우지 못해 실질적인 선발투수로 올라가야 했다. 이런 시스템에서 투수 각각은 항상 준비된 상태에서 공을 던질 수 있는 투구 기계가 되어야 한다. 혹사 논란과는 별개로 가능만 하다면 경기에 따라 마음대로 불펜을 조합하는 새로운 경지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물론 팀 평균자책점 9위라는 성적표와 시즌아웃 된 권혁과 송창식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 실험은 실패했다. 현대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는 저서 [매니지먼트]에서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속도, 리듬, 지속력은 사람에 따라 다르”며, “일에 꼭 들어맞는 뛰어난 산업 공학이 사람에게는 최악의 인간 공학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항상 준비된 자세로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투수 군단이라는 것이 하나의 이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선수들의 심리적·생리적 피로를 누적시키고 성적 부진으로 이어진다면, 선수의 마음가짐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 매니지먼트의 문제다.

알아서 잘하리라는 믿음은 안일한 것이다 - 모든 포수가 박경완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김성근 감독이 실제로 선수들이 기계처럼 입력된 대로 움직이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선수 각각이 생각하는 야구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는 지난 9월 20일 포수 차일목을 공부 좀 하라는 의미로 2군으로 보냈다. 전날 벤치에서 상대팀 KIA 타이거즈 타자의 문제점을 제대로 봐두지 않고 있다가 교체되어 들어가 맥락 없는 볼 배합을 해 승부를 가를 안타를 맞아서였다. 선수 각각이 시합의 흐름을 포착하고 생각하는 야구를 해야 한다는 김성근 감독의 이상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선수는 김성근 스스로 “SK 전력의 반”이라 말했던 포수 박경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박경완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포수다. 김성근의 아들이자 SK 전력분석코치였던 김정준은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평범한 선수들을 박경완, 이대호와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 선수의 약점을 벤치가 보완해 전력의 부족분을 메우는 것”이라고 했다. 고참 포수가 볼 배합을 잘못한 걸 두둔할 수는 없지만, 감독 눈에 보이는 게 있었다면 교체 전 귀띔을 해주는 게 나았을 것이다. 정작 김성근은 2002년 LG 트윈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6차전을 치르던 당시 9회 말에 포수 조인성에게 초구는 무조건 변화구라는 지시를 하려다 말았기 때문에 역전당했다고 후회한 바 있다. 그렇다면 패배의 책임을 안일했던 차일목에게서만 찾는 게 옳은 일일까. 해당 경기가 감독 스스로 가을야구 진출을 가를 가장 중요한 경기였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면 더더욱.

항상 승리할 수는 없다 - 정규시즌은 마라톤이라고 말한 건 누구?
차일목의 실수를 지적한 것처럼, 김성근은 미세한 승부의 흐름까지 읽어낼 줄 아는 감독이다. 그에게 단순히 힘이 부족해지는 경기란 있을 수 없으며, 감독은 “힘이 부족하면 거기에 맞춰서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133게임 다 이기려고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역시 김성근뿐이다. 하지만 항상 승리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오히려 총 경기 수가 144경기로 늘어난 지난해와 올해 한화의 장기 레이스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됐다. 지난해 전반기 84경기에서 권혁을 비롯한 불펜진을 총동원하고, 타자들도 마지막까지 전력으로 싸워 ‘마리한화’라는 호평을 받았을 때 그들의 승패 마진은 +4였다. 하지만 전반기에 기력을 소진하며 후반기 60경기의 승패 마진은 -12였다. 승기가 확실한 시합에서도 피로가 누적된 필승조를 투입하며 시즌 전체적으로 배분해야 할 동력을 고갈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반대로 개막과 함께 2승 11패를 기록한 것도 이러한 여파 위에 있다. 전투에서 이기려다 전쟁에서 패배한 셈이다. 재밌는 건, 현재 한화의 무엇이 문제인지 김정준이 참여한 책 [김성근 그리고 SK 와이번스]에서 이미 보여준다는 것이다. “포스트시즌은 단거리 경주지만 정규시즌은 마라톤이다. 무작정 앞만 보고 뛰기만 해서는 42.195㎞를 완주할 수 없다. (중략) 감독이 1, 2군 수십 명의 선수를 133경기 동안 조화롭게 골라 쓰는 일, 선수들이 체력과 페이스를 유지하는 일엔 보통 이상의 수고와 노력이 요구된다.” 맞다. 지금 그게 안 되고 있다.

어제의 최신 전략도 오늘의 구습이 될 수 있다 - SK 왕조도 오래전 일이 됐다
과거에 통했던 김성근 매직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 외부적 이유가 경기 수의 증가만은 아니다. 김성근을 비판하는 이들도 인정할 정도로 그의 데이터 야구와 지키는 야구는 동시대 한국에서 가장 앞선 것이었지만, SK 이후 새 왕조를 열었던 삼성 라이온즈(이하 삼성)는 두터운 팜과 선수 관리, 구단의 지원으로 리더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는 탄탄한 시스템의 힘을 보여주었고, 넥센 히어로즈는 [머니볼]의 주인공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처럼 가격 왜곡이 벌어진 장타력에 ‘올인’해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확보하거나, 강타자들이 이적하자 빠른 발을 이용한 ‘발야구’로 변환하는 합리적 운영으로 몇 년째 리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단순히 김성근이 뒤처졌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김성근은 한국 프로야구 시스템에 높은 경쟁 압력을 준 장본인이다. SK의 수준 높은 ‘발야구’와 수비 야구는 빠르게 라이벌 두산 베어스에 이식되었고, 여기에 자신의 선수 육성 방식을 더한 김경문 감독의 스타일은 현재 리그 선두권인 NC 다이노스에서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삼성의 시스템 야구는 김성근식 1인 리더십 야구에 대한 가장 성실한 반명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김성근이 리딩 그룹으로서의 SK가 한국 프로야구에 공헌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김성근이 실수한 게 있다면, 자신이 프로야구의 수준을 얼마나 높였는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아닐까.

미래의 가치에 제대로 된 값을 매겨라 - 신인은 좀 더 아껴야 한다
지금까지 한화와 김성근이 실패한 원인을 지적했지만, 지금 한화 팬들이 분노하는 건 2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해서만은 아니다. 올해의 한화보다 더 걱정되는 팀이 있다면 내년의 한화다. 지난 2년 동안 한화는 권혁, 배영수, 정우람, 심수창 등을 FA로 영입하며 엄청난 돈을 쓰고도 5강 안에 들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미래의 주축이 될 90년대생 선수 다수를 보상선수로 내보냈다. 물론 이를 김성근만의 잘못처럼 말하는 건 반칙이다. 팬도 구단도 리빌딩을 위해 김성근을 부른 건 아니었다. 3년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2년을 리빌딩에 투자하고 마지막 3년째 가능성을 폭발시키는 건 쉽지도 않거니와 당장 승리 청부사로 불려온 이에겐 리스크가 큰 선택이다. 경제학에서의 ‘할인된 효용 모형’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사람은 미래의 소비보다 지금의 소비에 가치를 둔다. 미래의 소비가 주는 효용은 시간에 비례해 ‘할인’된다. 행동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에 따르면, 미래의 소비가 할인율을 적용해도 지금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다 해도(미래의 리그 선두권이 되는 것이 당장 5강에 드는 것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다 해도) 일반적인 사람들은 훨씬 현재 편향적인 태도를 보인다. 구단이 그렇고 팬이 그러하며 그 자장 안에 있는 감독 역시 그러하다. 자신의 신념에 반하면 구단과의 불화도 불사하던 김성근도 이 요구에는 대항하지 않았다. 위에서 말했듯 그는 약해도 이길 수 있는 비법이 있다는 것으로서 시장에서 자신의 비교우위를 만들어온 지도자다. 그리고 위의 복합적인 이유가 더해져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전망 둘 다 놓쳤다. 김성근의 실패이자 그의 신화에 기댄 한화의 실패다.




목록

SPECIAL

image 프로듀스 101

MAGAZINE

  • imageVol.169
  • imageVol.168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