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 이러기야?

2016.10.04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가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로 12년 만에 돌아왔다. 마흔셋이 된 지금도 생일을 자축하는 것을 쓸쓸해하지만, 뉴스쇼의 프로듀서로 경력을 쌓았고, 바라던 다이어트에도 성공해서 멋진 몸매를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가졌다. 게다가 아이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외모, 재력, 성품을 모두 갖춘 연애정보회사 CEO 잭 퀀트(패트릭 뎀시), 둘 중 하나다. 브리짓 존스는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과 연이어 잠자리를 가졌고, 두 남자는 자신이 아버지이길 바라며 임신 중인 그녀를 보살핀다.

자신이 아버지일지 모른다는 이유만으로도 두 남자가 브리짓 존스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 능력과 외모뿐만 아니라 아이의 양육에 대한 시간과 책임을 함께하는 남자에 대한 판타지는 누구에게도 무해하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브리짓 존스가 보호받는 이유를 브리짓 존스의 부족함에서 찾는다. 그는 뉴스쇼에 초대할 타국의 장관과 운전기사를 헷갈려 인터뷰를 망치고, 방송 중 다른 전화통화를 하다 아나운서에게 잘못된 디렉션을 내린다. 심지어 잭 퀀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뉴스 인터뷰를 이용한다. 결국 그는 해고되고, 은행에서 돈을 찾다 가방을 놓고 나오는 실수까지 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비를 맞는 임산부. 그리고 그를 구하러 오는 두 남자. 브리짓 존스는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남자의 보호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물론 브리짓 존스는 그런 캐릭터였다. 골초에 술 마시는 걸 좋아하고, 언제나 연설을 망쳐 파티에서 거의 항상 혼자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방 안에서 초콜릿을 퍼 먹거나 작은 컵케이크에 초를 켜며 “All By Myself”를 열창했다. 하지만 그것은 12년 전이다. 그때는 날씬하지 않아도, 실수투성이어도, 일과 연애 모두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사랑스럽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고스트 버스터즈]처럼 여성이 유령을 잡으며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코미디로 푼다. 한국에서도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아가씨]가 개봉했다. 심지어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원작인 [브리짓 존스는 연하를 좋아해]도 바뀌었다. 원작에서 브리짓 존스는 마크 다시와 결혼해 두 명의 아이를 낳지만 그의 죽음을 맞이하는 독신 여성이자 싱글맘이고, 30대 남성을 사귀는 50대 여성으로서의 다양한 고민을 보여준다. 브리짓 존스가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사는 것이 충분히 어렵고, 사랑을 해야 할 이유도 분명하다.

“아직도 여성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브리짓 존스의 어머니가 하는 말은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브리짓 존스는 무려 뉴스쇼의 PD지만 그는 놀라울 만큼 사회적 이슈에 대해 무관심하고, 영화는 여성인권 운동, LGBT 등에 대한 이야기를 가벼운 조크의 대상으로 넘긴다. 브리짓 존스의 모든 고난은 그의 개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의 행복한 삶이 결국 아이와 결혼으로 완성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모든 문제는 브리짓 존스가 문제가 많고 외로움을 싫어한다는 것에서 시작되기에, 좋은 가족을 만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여자의 문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가족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믿음. 브리짓 존스가 미혼모인 자신을 긍정하면서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 정도면 우쭐대도 되잖아”라고 말하는 이유다. 원작에서 페미니즘 희곡을 각색하는 각본가면서도 데이트 자기계발서의 규칙대로 연하의 남자에게 “꺄룩, 어머 재미있을 거 같아요”라고 답을 보내는 브리짓 존스의 모습이 여성의 이상과 현재의 고민 사이에 놓인 현대 여성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장치였다면,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는 모든 새로운 변화와 고민은 결국 좋은 남자와 가족을 이루는 것으로 해결된다고 말한다. 마치 영화 속 미디어의 변화를 가볍고 자극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브리짓 존스처럼, 영화는 시대적 흐름을 “아직도 여성인권 운동” 정도의 말로 애써 외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12년 전의 브리짓 존스는 그래서 사랑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가 애초에 신데렐라 판타지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것에 많은 여자들이 열광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마크 다시는 여성인권을 외치는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의 취향과 전혀 안 어울리는 음악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힘껏 변호한다. 브리짓 존스는 그 모습을 보고 섹시함을 느낀다. 그러나 마크 다시가 여성인권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변호하는 사이, 브리짓 존스는 무슨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12년의 경력이 쌓인 브리짓 존스가 마크 다시처럼 멋지게 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까. 세월은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여전히 ‘All By Myself’를 부르며. 그리고 그때는 나에게 전하는 응원이었던 그 노래가, 이제는 아직도 혼자냐는 잔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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