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의 패배│① 꿈에서 깨다

2016.10.04
지난해 2월, 한화 이글스(이하 한화)에 부임해 첫 해외 훈련을 이끌던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훈련 강도를 높이면 선수들이 다칠지 모른다. 하지만, 다치지 않으려 훈련 페이스를 떨어트리면 한화는 또 만년 꼴찌다. 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훈련이 아니면 팀을 강화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네이버스포츠 박동희 칼럼]) 어쩌면,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의 바람대로 한화는 지난 시즌 전반기 매 경기 전력을 쏟으며 84경기 승패 마진 +4를 기록해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지만, 후반기에는 선수들의 부상 및 혹사 논란과 함께 결국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 들어 혹사나 불필요한 타격 훈련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졌으며, 역시 가을야구에 합류하지 못했다. 팀의 주축인 투수 송창식과 권혁이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어 내년 구상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김성근 감독은 “팀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고민”했고 리스크와 보상도 제법 정확히 고려했지만, 결과적으로 한화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것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다. 김성근이, 틀렸다.

물론 이제 김성근이 틀렸다고 말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한화가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하며 ‘마리한화’로 각광받던 시기까지만 해도 권혁의 혹사에 대해 팬과 언론의 반응은 조심스레 양분됐지만, 권혁이 시즌아웃 된 지금엔 언론도 팬도 그 어느 때보다 안심하고 김성근을 비판한다. 신화는 깨졌다. 결과론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신화적 존재가 된 과정 역시 결과론이다. 김성근 신화는 기본적으로 그가 이룬 업적을 역산해 본인과 지지자들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구성된 서사다. SK 와이번스(이하 SK)에서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고도 쫓기듯 나오고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 부임한 그는 박해받는 메시아가 되었고, 동시대 리더의 이상향이 되었다. SK 왕조를 이끌 때조차 논란의 인물이었던 ‘야구의 신’은 진짜 종교의 대상이 되었다. 김성근이 부임해 꼴찌인 팀을 바꿔주리라 기대한 한화 팬들의 소망적 사고 역시 신화에 대한 믿음에 가깝다. 김성근을 팀을 말아먹은 원흉이자 구태의 상징으로 모는 작금의 상황은 그래서 부당한 면이 있다. 앞의 인용이 보여주듯, 그는 훈련을 통한 전력 강화라는 보상과 선수 부상이라는 리스크 사이에서 고민했고,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와 경험을 토대로 리스크를 감수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선택했다. 어차피 ‘인천 예수’의 대전 재림을 바란 이들이 염원한 것도 리빌딩이 아니었다. ‘꼴어놀’(꼴찌가 어디서 놀아, 라는 김성근 감독의 일갈을 줄인 말)에 열광한 건 누구였나. 투수 혹사 논란은 2002년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이상훈 때부터 SK 시절까지 김성근을 쭉 따라다녔지만 결과론적인 김성근 신화에서 혹사의 리스크는 축소되거나 미화되었다. 틀린 건 김성근만이 아니다. 신화를 진심으로 믿고 많은 경우 전파하거나 재생산했던 팬과 구단과 언론도 틀렸다.

김성근이라는 지도자의 실책과 독선을 이해하자는 건 물론 아니다. SK 시절의 성공 경험을 고려하더라도 한화에서의 그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고집스런 모습을 보였다. 젊은 투수에게 경험을 쌓게 하기보다는 검증된 불펜 투수를 휴식 없이 내보냈고, 국가대표 테이블세터인 이용규와 정근우, 최고의 출루율을 자랑하는 김태균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고행에 가까운 타격 훈련을 시켰다. 한화의 성적 부진과 유망주 실종은 김성근의 잘못이 맞다. 그럼에도 김성근 한 명을 비판하고 그의 야구를 배제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면,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김성근 신화에서 ‘김성근’보다 중요한 건 ‘신화’이기 때문이다. 신화를 만들어내는 건 신화의 주인공이 아닌,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신화적 사고다. 미신적 사고라고 해도 좋다. 김성근의 야구가 비과학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통계에 기반하고 다양한 정보를 조합하는 과학적 야구라 해도, 신화적으로 소비될 땐 미신이 된다는 뜻이다. 그 대상은 김성근이 될 수도,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이 될 수도, 분야를 바꿔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김성근 개인의 신화가 깨졌다는 것이 우리를 신화적 사고로부터 바로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화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래서 김성근의 몰락은 야구계의 실질적인 진보를 위해 필요했던 사건인지도 모른다. 그가 기적적으로 복귀해 실패하지 않았다면, 그의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게 신도들에게 회자되고, 많은 이들이 강연에서 그의 목소리를 무비판적으로 경청했을 것이다. 김성근이 프로야구 역사에 손꼽힐 지도자 중 한 명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은 전근대적인 상황인 게 맞다. 근대화된 사회에서 담론은 비슷한 목적을 지닌 다른 담론들과 평등하게 경쟁하고 그 안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80~90년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1이닝 마무리와 원 포인트 좌완 불펜을 도입한 토니 라 루사 감독의 ‘라 루사이즘’으로 시대를 풍미한 뒤, 모두가 ‘라 루사이즘’을 따를 때 빌리 빈 단장의 ‘머니볼’ 이론으로 또 한 번 앞서 나갔던 것처럼, 게임의 양상을 흔드는 묘수는 이러한 경쟁을 통해 제시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몰락하는 김성근의 모습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근대를 위한 메시아적인 순교처럼 보인다. 스스로의 신화를 무너뜨리며 미신적 사고로부터 야구계와 팬을 구원해준다는 면에서 그렇다. 물론 거인의 침몰로 확인하는 이런 식의 계몽(啓蒙)은 씁쓸하다. 깨어야 할 꿈이 꽤나 달콤했던 것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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