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기자가 밥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2016.10.05
“기자 데려간다”는 말이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예로 들면 기획사가 해외 공연 같은 행사에 미디어를 초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행사 기간 동안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하는 것을 시작으로 출국 전 공항에 모인 기자들에게 관광지부터 교통편 안내 등 현지 관광에 필요한 소책자 수준의 안내문까지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지에서는 홍보팀이 새벽이라도 기자들의 문의라면 무엇이든 응대했고, 밤에 출출한 기자들을 위해서는 컵라면을 비롯한 야식거리가 제공됐다. 출발부터 귀환까지, 주최 측은 기자들의 취재원이자 여행사이며 비서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이 초청한 미디어에 무조건 호의적인 기사를 요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해당 행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고 해서 항의를 받은 일은 없었다. 민감한 사안이 아니면 굳이 미디어와 갈등을 키우고 싶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없다. 다만 초청한 곳에서 준비한 일정을 모두 따랐던 기자라면, 호의든 비판이든 기사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행사 전날에는 현지 유명 식당에서 저녁 식사가 준비됐고, 당일에는 점심부터 미리 준비한 버스로 기자들을 함께 이동시키며 점심과 저녁을 제공했다. 행사가 끝난 다음 날은 ‘자유 일정’으로 잡아놓은 뒤 현지 관광지나 대형 아울렛 매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했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온 기자들에게 ‘가볍게 술 한 잔’ 할 자리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모두 공짜였고, 이 일정을 모두 따라가면 기사를 쓸 시간은, 당연히 거의 없다. 주최 측은 기자들을 정성껏 대접하면서, 기자가 기자로서 생각할 시간을 좀처럼 주지 않았다.

회사가 준비한 일정은 거절하면 그만이다. 보통 2박 3일 정도의 체류 기간 동안 현지 취재를 하거나 보다 심층적인 리뷰를 쓸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나 본인이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기자들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들이 소속된 미디어 중 굳이 그런 기사를 원치 않는 경우도 꽤 있었다. ‘강남 스타일’ 당시의 싸이처럼 해외에서의 반응이 큰 관심을 모으는 경우가 아니면, 해외 공연 같은 행사는 대부분의 미디어에게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초청한 측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조금 윤색한 기사를 포털사이트 연예뉴스 면에서 발견하는 경우도 많았다. 원한다면, 기자들은 이런 행사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않고도 왕처럼 대접받을 수 있었다. 단지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밥 한 끼 얻어먹는다고, 해외 행사 한 번 다녀왔다고 기자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던 듯 하다. 한 회사의 홍보 담당자는 해외 행사에 미디어를 초대하려다 포기했다고 밝혔다. 너무 많은 매체가 그것을 원해서라고 했다. 누군가는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할 경우 ‘조지는’ 기사를 각오하라는 말도 함께였다고 했다. 내용과 상관없이 높은 조회수로 광고 수익을 올리는 것이 중요해진 매체 환경에서, 기자가 직업적 성취감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정의를 담은 기사를 쓰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기자가 이른바 ‘기레기’로 손가락질 받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반면 단 하나의 기사라도 인터넷을 통해 끝없이 퍼져나갈 수 있는 만큼, 관계사는 과거보다 더 많은 매체를, 더 열심히 대접한다. 기자가 ‘갑’으로 대접받는 대신 원하면 기사를 어떻게 쓸 것인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행사들처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김영란 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의 시행으로 이런 풍경도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물론 과거의 부끄러움이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 취재원들이 있는 회사들의 해외 초청 행사를 다 거절하지도 않았고, 그런 대접을 받을 때 스스로 으쓱한 기분을 느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앞으로 이런 일은 개인의 양심이나 의지의 문제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 그저 위법일 뿐이다. 이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접받거나,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선택이 남았다. 기자를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독자에게 기자로 대접받을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가질 것인가. 어느 쪽이든 받아들이기도, 실행하기도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에 공짜 밥은 없었다. 그 당연한 것을, 오랫동안 착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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