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인이다]│① 아버지들의 로망, 자연인이란 무엇인가

2016.10.11
자연인(Homo Natura)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시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겠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대개 2012년 8월 22일, 즉 종합편성채널 MBN [나는 자연인이다]의 첫 방송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인적 드문 산속, 전라의 모습으로 나타나 충격을 안긴 77세 남성 김용호 씨가 바로 그 ‘최초의 자연인’이다. ‘사람은 코로만 산소를 마시는 게 아니라 피부로도 마신다 / 여름에는 벗고 있는 게 이롭다 / 남자끼리만 있으니 괜찮다’는 그의 과감함은 도시인들의 질서를 훌쩍 넘어서며 이후 자연인 정신의 모태가 됐다.

연구된 바에 따르면, 자연인의 주 서식지는 산이다. 2016년 10월 5일 기준, 212회까지의 방송 부제에 ‘산사나이’가 무려 30번 등장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산’과 ‘산골’이 따로 쓰인 경우는 제외했다.) 그래서 자연인과의 만남은 대개 해발 수백 미터 산속에서 이루어진다. 높은 나무에 오른 채 손님을 맞이하는 자연인도 있다. 생활환경의 특성상 자연인 중 여성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으며, 처자식이나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남성도 있지만 평균적인 자연인이라 함은 ‘사람의 발길이 흔히 닿지 않는 자연 속에 홀로 사는 50대 이상의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자연인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로는 ‘도사’, ‘괴짜’, ‘할배’, ‘(노)총각’, 상남자, 파수꾼 등이 있다.

자연인과 가까워지려면 노동력과 친화력이 필요하다. 격주로 자연인을 만나는 MC 윤택과 이승윤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첫날 텃밭을 돌보거나 약초 채집, 땔감 수집 등에 따라다니고 나면 이튿날에는 자연인이 평소 혼자 하기 힘들었던 김장, 화장실 만들기, 지붕 고치기 등을 수행한다. 함께 목욕을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등목을 시켜주던 자연인이 갑자기 샤워기를 내던지고 말벌을 잡으러 뛰쳐나가더라도 기다리고, 한겨울 얼음장 같은 계곡 입수도 마다하지 못한다.

자연인과의 대화는 종종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주말 드라마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기법은 상대의 대사를 받아 반복함으로써 자신이 경청하고 있음을 어필하고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으면서도 대화 사이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예) 자연인: 이건 약초에 대한 책이야.
MC: 아, 약초에 대해서 나온 책이군요?

자연인: 자연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지.
MC: 역시 자연에서 먹으니까 다 맛있네요.

자연인의 주거 형태는 다양하다. 동굴, 컨테이너, 폐천막과 나무를 이용한 움막, 직접 지은 황토집 등. 자연인이 선호하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는 돌탑, 괴석, 고사목 등이 있다. 자연인의 소박한 식생활은 도시인에게는 크나큰 도전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고 말하기 이전부터 냉장고 대신 소금 항아리나 계곡물, 앞마당 구덩이 등에 식재료를 보관해온 자연인들은 텃밭의 푸성귀나 산에서 캔 약초 등 채식 위주의 식생활에 익숙하다. 물론 멧돼지 바비큐, 더덕 삼겹살구이, 닭 스테이크 등 뜻밖의 별미가 등장할 때도 있지만 생쌀, 민물고기 회, 고라니 간, 애벌레 앞에서 이승윤의 동공은 흔들리고 윤택은 영혼 없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두려움을 지우려 노력한다. 그러나 ‘민물고기의 흔적이 묻은 돌’을 넣은 찌개나, 시장에서 얻어온 생선 대가리를 카레와 함께 끓인 음식 앞에서도 자연인의 순수한 선의를 해치지 않기 위해 “안 먹어본 음식이라 기대가 되는데요”라고 말하는 이들의 자본주의 미소야말로 가격을 매기기 어려운 수준이다.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도시인들과 달리 자연인들은 칼로리를 적게 섭취하고 많이 소모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한다. 그중 일부는 대체의학으로 중병을 고쳤다고 주장한다. 자연인의 대표적인 건강 비법은 약초 복용과 자신이 만든 체조다. 팬티 바람으로 모닥불에 엉덩이를 데우고 열기를 머금은 채 맨발로 산을 타거나, 오장이 편안해지도록 몸통을 흔드는 등 체조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아침에 태양을 향해 입을 뻐끔거리며 태양 에너지를 머금고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는 체조의 경우 오랫동안 연마하면 돌멩이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인의 주장이다. 물론 윤택과 이승윤은 이 체조들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수제자다. 방에 앉은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것은 한 자연인이 만든 ‘금법체조’로, 백봉기 PD는 “근거가 있는 운동법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거기까지 확인은 못 했다”고 말했다.

자연인이 도시를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허드렛일 중 쉬는 시간이나 저녁 식사 중 진행되는 ‘인간극장’ 타임에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자연인 대부분은 시골에서 보낸 자신의 유소년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으며 사업 실패, 이혼, 질병은 자연인의 인생에서 대표적 고난이다. 한때 큰돈을 벌었다는 자연인도 빚보증을 잘못 섰거나 가족, 친지로부터 배신당한 사연을 가졌다. 아내의 출산 장면을 우연히 본 충격으로 성관계를 할 수 없게 되어 이혼했거나, 가난 때문에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져 세상을 멀리하게 되었다는 자연인도 있다. 아직 연이 닿아 있는 아내가 김치를 담가 갖다 주거나 가끔 찾아와 돌봐주는 자연인도 있으며, 산에 들어온 지 5년째라는 한 자연인은 2014년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주부 9단 청소홀릭’으로 출연해 가족의 생활을 깔끔히 돌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연인들은 추악하고 오염된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부터 치유받는 생활이 좋다고 말한다. 타인의 눈이나 생활 습관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자연인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지퍼가 망가진 바지를 그대로 입고 다니거나 “영의 세계를 느끼는 데 최적”인 관에서 잠을 자는 호연지기 말이다. 자연인의 삶을 묘사하는 중심 키워드로는 ‘행복, 낭만, 희망, 청춘, 낙원, 보약, 인생2막, 부정(父情)’ 등이 있다.

자연인들의 생태를 꾸준히 다뤄온 [나는 자연인이다]는 2016년 9월 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 8위를 차지했다. 특히 50대 남성들 사이에서 선호도 11%로 압도적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자연인 워너비’ 세대의 탄생을 보여준다. (참고로 동년배 여성의 선호도는 1%다.) 여러 케이블 채널을 통해 줄곧 재방송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또 보는 중장년 남성들이 마치 ‘뽀로로’를 보는 어린이들처럼 매료된다는 관찰 결과도 종종 보고된다. 방송의 때가 묻은 예능을 멀리하고 오로지 [나는 자연인이다]만을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인정해, 이를 보고 또 보며 자신도 자연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 고정 수입을 얻겠다는 목표가 없고, 주거 공간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으며, 가족이 원치 않더라도 무작정 자연의 품에 안기고자 한다는 면에서 기존의 ‘귀농’이나 ‘귀촌’과는 다른 이 방식이 어느 세대 남성 상당수의 꿈이 되었다. [나는 자연인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자연인 생활을 간절히 갈망하니 자연인과 연락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글이 줄지어 올라온다. 사업 실패 후 집에만 있는 아버지가 자연인을 동경하니 함께 생활할 사람을 찾고 싶다는 자녀의 글도 있다. 자연인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제작진에게, 퇴직을 앞두었다는 한 남성은 “그분들의 선량하고 참다운 자연의 삶을 배우고 상부상조하고 싶습니다”라는 장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백봉기 PD는 지난해 MBN과의 인터뷰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고 희망을 얻어 산으로 돌아간 사람들도 꽤 있다”며 자연인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 같다고 예측한 바 있다. 자연인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선’과 ‘참’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된 바 없으나, 전국의 산이 지금보다 붐비게 될 ‘자연인 시대’는 머지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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