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가 슬픈 다른 이유

2016.10.12
*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하 [설리])은 양쪽 엔진이 모두 망가진 US 에어웨이 1549편을 조종한 체슬리 설렌버거(이하 설리)가 비행기를 허드슨 강에 불시착시키고, 빠른 구조지원으로 155명의 탑승자 전원을 살려낸 2009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공항으로 신속히 회항하라는 관제탑의 말에도 불구하고 설리는 40년 넘은 조종 경험에서 온 직감을 바탕으로 회항 대신 강에 비행기를 비상착수 시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강 한가운데 떨어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인근에서 1,200여 명의 구조대원이 출동했다. 이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4분이다.

당연하게도 한국의 많은 관객과 언론은 이 기적 같은 사건을 보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떠올릴 수밖에 없다”([시사IN]), “영화 [설리] 속 그가 부러웠다... 시스템 부재한 대한민국이여”([오마이뉴스]). 제때 탈출하라는 방송만 해줬어도 304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한국에서는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설리]는 사회 시스템의 우수함을 강조하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설리의 정신적 트라우마에 주목하고, 강 위에 비상착수를 하지 않고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했다면 비행기가 망가지지 않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항공조사위의 추궁이 이어진다. 결국 설리는 회항 가능 여부를 검토하던 공청회 날 “인적 요소가 빠져 있는” 시뮬레이션의 허점을 지적해냈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모두 앞에서 증명해 보인다. 여기에 관제사, 구조대원, 출근보트선장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한다는 것은 새삼스런 존경의 대상이 아닌, 당연한 전제로 깔려 있다.

[설리]가 묘사하는 미국은 구조에 필요한 시스템이 이미 잘 확립돼 있고, 영화는 오히려 정부 관료나 항공 공식 매뉴얼보다 경험 많은 노인의 직감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설리는 비행기가 추락해 뉴욕 빌딩과 충돌하는 악몽을 자꾸 꾸곤 한다. 이것은 모든 미국인에게 트라우마가 된 9․11 테러와 무관하지 않다. 그 점에서 [설리]는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인들의 트라우마는 어떤 노장의 노련함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설리]에 대한 논의는 미국을 강인케 만든 원동력이 경험 많은 노인의 결단에서 시작됐다는 스토리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사기업인 US 에어웨이가 설렌버거 기장의 연금을 없애고 연봉까지 깎았다는 사실은 은폐하고,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항공조사위와의 갈등을 넣었다. 관료, 전문가 그리고 팩트를 적으로 돌림으로써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도전하는 해에 걸맞은 영화를 만든 것이다.”([슬레이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미군 저격수의 삶을 다루면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이상하리만큼 없앴고, [그랜 토리노]에서는 이른바 ‘꼰대’였던 보수주의자가 그답게 삶을 정리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때문에 [설리] 역시 개인의 정치 성향과 무관할 수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설리]는 어떤 현명한 노인의 노련함에 찬사를 보내는 작품인 동시에, 기성세대의 저력을 옹호하는 감독의 편향된 시각이 담겨져 있다는 의구심을 받는 논쟁적인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설리]에서 회항 가능성을 검토했던 위원회는 이미 미디어에서 영웅으로 대접하는 인물에 대한 사후 검토를 게을리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이런 대립각을 세운 감독의 의도를 의심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힘인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반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의 논의는 시스템의 부재에 정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후 대책 대신 ‘해경 해체’를 발표했고, 청문회를 통해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제대로 밝혀내는 것마저 쉽지 않다. 그사이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그럴싸한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등장한 [터널], [부산행] 등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터널]의 피해자는 무능한 실무자들 때문에 고통받고, [부산행]은 결국 스테레오 타입의 악역 캐릭터와 이에 맞서 싸우는 부성애로 후반부를 끌고 간다. 시스템의 부재는 개선되지 않고, 갈 곳 없는 분노는 관료들이나 세월호의 선장처럼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들에게 향한다. 이것이야말로 [설리]가 부럽다면 부러운 이유였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 이후 유능한 리더와 시스템의 부재를 도돌이표처럼 한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때, 미국에서는 9․11 테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미국은 전보다 강인해졌다고 말하고, 그 힘의 원동력에 대해 서로 다른 정치관을 가진 이들이 논쟁을 펼친다. 그리고 정부는 지금도 잇따르는 재해에 미지근하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대응하고 있다. 해외의 영화에서, 한국의 지금, 여기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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