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예습이 필요하다

2016.10.13
* [죽여주는 여자]와 [할머니의 먼 집]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윤여정)은 자살을 도와주는 여자다. 그의 원래 직업은 섹스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6.25 직전에 태어나 월남해 공장과 식모살이, 기지촌을 거쳐 탑골공원 인근에서 성매매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다 나이를 먹었다. 예순다섯이라는 나이는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는 있지만 한국인의 평균 수명까지는 까마득히 먼 나이고, 밥과 방은 공짜가 아니다.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오며 소영이 체득한 철칙은 “노 워크, 노 머니”, 그러나 부지런히 일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 병이 들어도 모멸감이 들어도 쉴 수는 없다. 꾸역꾸역 생계를 유지하는 삶 자체로 한없이 지쳐 있던 그는 중풍, 치매, 고독에 몸부림치며 이제 그만 살고 싶다고 매달리는 남자들의 등을 기꺼이 떠밀어준다.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의 주인공은 소영과 사뭇 다른 삶을 살았다. 전남 화순에 사는 아흔셋 박삼순 여사에게는 고향에 번듯한 집도 있고, 심각한 질병이나 큰 경제적 어려움도 없다. 자녀들은 비교적 안정된 삶을 꾸리고 있고, 암 수술을 받긴 했지만 회복 중인 장남이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병원에서 받은 수면제를 모아 자살을 시도한다. 장례비로 쓸 30만 원을 곱게 챙겨놓은 채. 취업 준비로 바쁘던 서른셋 손녀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다. 할머니가 이 세상으로부터 영영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한 손녀는 할머니의 곁에 머무르며 카메라에 할머니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나서야 조심스레 묻는다. “왜 죽을라 그랬어?”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툭, 대답을 던진다. “성가신께.”

늙는 것은 성가신 일이다. 근력은 줄고 허리는 굽어 두 손, 두 발을 다 써야 간신히 계단 하나를 오를 수 있고, 툭 하면 넘어져 상처투성이가 되거나 뼈가 부러져 거동이 힘들어진다. 멀리 사는 자녀의 전화가 반가워도 난청과 이명에 시달리는 귀는 대화를 자꾸 가로막는다. 신진대사능력 저하로 발생하는 ‘늙은 냄새’는 노인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다. 심지어 피부가 약해지고 동작도 둔해지니 씻는 것은 젊었을 때보다 몇 배 어려운 과제가 된다. 무엇보다 큰 상처는 상실감이다. 손녀가 태어날 무렵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던 박삼순 여사는 장남마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전에 없이 술에 의지하며 괴로워한다. 더 이상 보듬어 키워줄 손자들도 없고, 동네 친구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그는 그러한 나날을 지속해 나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죽여주는 여자]의 재우(전무송)가 일찍 떠난 아들에 이어 아내까지 잃자 죽기로 결심한 것처럼.

‘나이 들면 일찍 죽어야지’라는 말은 말만 그렇게 할 뿐 사실은 오래 살고 싶어 하는 노인들의 거짓말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불과 수십 년 사이 엄청나게 늘어난 기대수명은 정말로 인간에게 축복이 아니라 형벌인지도 모른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이미 노인이 된 자녀가 자신보다 훨씬 연로한 부모의 생활과 거취를 걱정하고, 때로는 부담스러워하는 모습까지 보게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할머니의 먼 집]의 감독인 손녀는 할머니에게 영양제 주사 맞히는 것을 반대하는 어머니, 즉 할머니의 딸과 갈등을 빚는다. 어떻게든 죽음을 유예하고 싶은 30대와, 스스로 노화를 체감하고 죽음을 가까이서 겪어온 60대의 입장은 서로의 경험만큼이나 다르다. 혼자 생활하기에는 위험하고, 집을 떠나 지내기를 원치 않는, 그리고 “오늘 저녁에라도 (저 세상으로) 나를 데리고 가면 좋겠네”라며 영원한 안식을 바라는 노인에게 최선의 보살핌은 무엇일까. 사랑도 효심도 선뜻 답을 찾아주지는 못한다.   

[죽여주는 여자]의 이재용 감독은 “노화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었고, 감히 내가 다룰 주제인지도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벌써 늦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출간된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원제: Being Mortal)는 한국에서 5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의사로서 자신이 만난 노인 환자들과 여러 영역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역시 의사였던 아버지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관찰한 이 책에서 그가 만난 한 노인병 전문의는 말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저 허물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 자연스러운 비극 앞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독립이라면, 그걸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어떻게 나이 들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늙어가며 자신은 물론 다른 노인들의 문제와도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나, 혹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준비와 성찰은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덜 고통스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벌써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아직 살아 있으니 너무 늦지는 않았을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목록

SPECIAL

image 여성 살해 스트리밍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