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내리막 사회의 복음

2016.10.13
최근 혼자 살 집을 구하는 친구와 함께 부동산 매물을 보다가 절망에 빠졌다. 월세 7만 엔이라는 집의 문을 열자 그럭저럭 넉넉한 부엌과… 부엌만이 있었다. 싱크대 바로 앞에 이불을 깔아야 할 듯한 원룸을 나오며 부동산 아저씨는 “싸죠?”라며 싱글거렸다. 15제곱미터 크기에 화장실과 침대와 책상을 바투 몰아넣은 지금 기숙사 방은 ‘겨우’ 6만 엔인 셈이었다. 이런 비싼 동네에서 집다운 집을 찾느니 외곽에 있는 저렴한 O기숙사에 지원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린 뒤 다음 입거 안내를 찾아보니, 지금 기숙사에서 나가야 하는 날로부터 그쪽 입거일까지 최소 사흘 정도가 뜬다. 유학 오며 그나마 줄였던 책이며 옷이며 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짐으로 보이고, 무슨 큰 세계를 찾겠답시고 여기까지 왔나 나조차 짐처럼 느껴진 건 그때부터다.

실제 인물의 블로그와 에세이집으로 인기를 끌고 NHK 드라마로까지 제작된 [우리 집엔 아무 것도 없어]의 주인공 유루리 마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트렁크 하나로 가뿐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손님이 차를 마시는 도중에 테이블을 버리려 한다거나 결혼반지를 받자 연애 시절 커플반지도(그 작은 걸!) 처분하는 등 그저 “필요 없는 물건이 거기에 있으므로” 그녀는 족족 버린다. ‘버리기 변태’라 자칭할 정도로 괴팍하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물건이 딱히 줄어든 티도 안 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이렇게 물건을 최소한만 갖추도록 극단적으로 정리하는 이들이 미니멀리스트란 이름으로 지금 일본에서 큰 공감과 환호를 얻고 있다. 말리는 가족에 맞서 전투를 치르거나 망상 쇼핑(자신의 옷장을 옷가게라 상상하고 쇼핑을 해 나가는데, 마지막까지 선택되지 않는 옷이 있으면 버린다.)을 취미로 삼는 모습은 일견 안쓰러워 보이지만, 사실 모델 룸 같은 그녀의 방에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은 선망과 존경에 가깝다. ‘갖지 않는 생활’을 ‘동경하는가?’라고 묻는 신문 여론조사에 응답자 1,910명 중 7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무 것도 없는 방에서 살고 싶다], [트렁크 한 개 분 물건으로 산다], [물건이 없어도 괜찮아!], [최소한주의], [물건은 최소한, 행복은 최대한], [아무 것도 없는 풍요로운 삶의 방식] 등등. 2015년에 이어 올해까지 일본에서 출간된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은 수십 종에 이른다. 세부는 조금씩 달라도 결국 선망의 시선을 동력 삼아, 일상의 작은 실천과 삶의 근본적 변화가 이어질 수 있다고 유혹하는 자기계발서의 변주이다. 많은 책들은 단순한 생활 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삶과 행복의 문제를 건드리며, 버리기와 비우기를 쉬운 첫걸음으로 제시한다. 예컨대 한국에도 번역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원제 [우리에게 더 이상 물건은 필요 없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버림을 통해 단순히 방이 깔끔해져서 청소가 편해졌다든가 하는 표면적인 메리트만 얻은 게 아니라 고층 맨션에 아름다운 가족까지 이룬 고소득자 친구와 저금 하나 없는 나를 비교하는 데서 오는 절망감 등 본질적인 삶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버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 새로운 멘토 군은 물건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가치 구조의 변화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물자가 부족하던 전후 복구기부터 특정 가전제품 소유가 곧 ‘중류(=보통 사람)’에 진입했다는 감각을 안겨주었던 고도경제성장기, 누구나 브랜드 제품 하나쯤 살 수 있었고 이 어렵지 않은 차이의 획득이 곧 자기실현이었던 버블경제기까지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물건의 소유나 소비는 행복, 풍요와 직결되었다. 물건은 제1기에서 근면하게 일한 결실로서, 2기와 3기에선 소비의 평등주의, 탈계급화 실현 매체로 각각 윤리적 안전망을 획득했지만, 버블 붕괴 이후 장기침체 및 근본적인 구조 변화에 직면한 하강의 시대엔 거기서 굴러 떨어져 심판대에 놓이고 만다. 여기에 동일본 대지진이 사람들의 의식에도 일격을 가했다. 갖지 말자, 버리자, 정리하자라는 반대방향의 명쾌한 해법이 예전의 의미가 퇴색된 ‘물건’ 주위에 몰려들었다. 반성과 자책을 자극한 뒤 간단한 사고의 전환으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복음의 구조로 지지되는 자기계발서의 힘이 작동하는 건 이 자리에서다.

교외로 빠져 나갔던 인구의 도시 회귀 현상이 시작된 것은 버블 붕괴 이후인 1995년부터로, 경제 활력 감소와 도시에 살되 작고 좁게 살겠다는 각오는 연동되어 있다. 노동과 주거의 불안정화는 사람들에게 기동성을 높이도록 강제한다.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는 개인들에게 의미의 문제는 절실하고 살림의 미니멀리즘은 은둔의 미학, ‘사토리 세대’의 행복론, 최소한의 연부터 돌보자는 새로운 가족주의와 함께 타당한 데다 ‘어쩔 수 없는’ 저성장시대 축소의 이념이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불안과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생활로의 이행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요구라면, 자족이나 감산이 아닌 다른 상상력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걸 생각해 보기 전에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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