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을 위한 밥, 혼자를 돌보는 법

2016.10.14
내 이름으로 처음 계약한 집은 춥고 더럽고 아주 작은 원룸이었다. 그렇지만 독립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이사가 마무리되자마자 동네 서점으로 가서 제일 크고 두꺼운 요리책을 샀다. 놓을 자리가 없어 책상에 둔 올망졸망한 조미료들로 동파육부터 어복쟁반까지, 요리책을 완전 정복할 기세로 열을 올렸다. 스물다섯 살,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은 시절이었다.

내 부엌은 이제 훨씬 넓다. 하지만 프리랜서에게 시간이 많은 것은 돈이 없다는 것이고, 날마다 두 시간씩 차리고 치우느니 그 시간에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게 낫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요리를 한다. 스스로를 돌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거창한 요리는 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스팸을 굽더라도 야채를 곁들이고, 카레를 한 솥 끓이면 물리지 않도록 삶은 계란이나 모차렐라치즈나 귀갓길에 사온 돈가스를 곁들인다. 제일 자주 먹는 것은 고기나 유부를 제철 야채와 볶은 것이다. 소금이나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하고 생야채를 곁들인다. 넉넉히 만들어서 남은 것은 다음날 계란을 풀어 오믈렛을 만들거나, 아니면 토르티야에 얹고 치즈를 올려 오븐에 녹진하게 데운다. 갈비찜이나 불고기도 기왕이면 왕창 해서 남은 건 얼린다. 나중에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대신 버섯이나 양배추를 듬뿍 넣고 조리면 그게 또 별미다. 밑반찬은 잘 사지 않는다. 굳이 밥도둑까지 불러오지 않더라도 밥을 너무 적게 먹어서 문제가 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단백질은 자칫 부족하기 십상인데, 계란을 대여섯 개 삶아 냉장고에 두면 1주일 정도 요긴하게 쓰인다. 설거지가 귀찮은 것은 어쩔 수 없는데, 확실한 것은 15분 꼬박 하는 것보다 5분씩 세 번이 낫다는 것이다. 팬과 냄비에 곧장 물을 부어놓기, 기름기가 낀 그릇과 아닌 그릇을 섞지 않기 등 소소한 요령도 하다 보면 대충 깨닫는다. 

인간은 어떤 의미로는 기계다. 제대로 먹고 충분히 쉬지 못하면 가진 스펙만큼의 퍼포먼스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맛없는 걸 먹으면서 나는 행복할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깨끗한 집에서 일할 때 더 유능한 사람이 되며, 더 선량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많은 일이 생긴다. 힘든 때일수록 머리를 비우고 따라가는 데에만 집중한다. 파스타 한 그릇 정도는 머리 대신 손만 갖고도 만들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맛있는 한 끼 식사뿐 아니라 견고한 일상의 리듬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간은 기계이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은 강력한 무기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의 출발점은 자취는 이제 임시방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살림은 결혼 이후로 미루면서 대충 살아도 괜찮은 시대는 끝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1인 가구는 30대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되는 삶의 방식이며 평생 계속하는 사람들도 많다.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요리는 연습이 필요한 작업이다. 모처럼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는데, 맛이 나쁘다기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나면 때려치우고 싶은 게 당연하다. 일단 접시부터 사자. 지름 24센티미터 이상으로, 기왕이면 오븐 사용도 가능한 접시를 가격을 무시하고 고른다. 그릇도 비싸기로 따지면 끝이 없지만 딱 한 장이면 대충 5만 원으로 해결되는데, 매일 사용하는 걸 고려하면 못 쓸 돈은 아니다. 밑반찬은 밀폐용기째 먹는 대신 한 번에 먹을 만큼씩만 던다. 남은 치킨이나 피자를 데울 때도 예쁘게 담고 야채나 과일을 곁들인다. 그러다 보면 요리를 해보고 싶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볶음밥처럼 아예 실패하기 힘든 요리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에는 재능이 필요하지만 먹을 만 한 요리는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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