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한혜진, 인생의 밸런스

2016.10.17
라면은 반 개만 끓인다. 달걀 프라이는 기름 없이 뜨거운 물로 익힌다. 돼지고기는 삶아서 후추만 친다. 셀러리 한 줄기에 당근 한 움큼, 키위 하나와 레몬 반 개를 갈아 만든 주스가 한 끼의 전부인 날도 있다. 여름 시즌 화보를 위한 혹독한 관리에만 한 달이 필요하지만, 비시즌에도 일반식 한 끼에 다이어트식 두 끼를 유지한다. 열일곱에 데뷔해 17년째 톱 모델로 활동 중인 한혜진의 일상은 끝없는 절제 속에서 이루어진다. 스물여덟 살까지 단 500그램도 변하지 않던 체중은 나이가 들면서 늘기 시작했다. 몸이 중요한 재산이라는 면에서 모델은 운동선수와 비슷한 직업이라고 한혜진은 말한다. “육체적으로 가장 멋진 모습일 때 최고점에 오르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내려오는 것만 봐야 되잖아요. 빛나는 순간은 아주 짧고, 오랫동안 일할 수 없어요.”

노화와 싸운다. 식욕과도 싸우고, 게으름과도 싸운다. 마른 수건을 짜내는 듯한 체형 관리의 괴로움에 적응할 수는 있어도 무감해질 수는 없다. 하지만 한혜진은 즐거움을 몽땅 포기하는 대신 대안을 찾아낸다. 햄과 소시지는 저칼로리로, 초콜렛은 카카오 함량이 높은 제품으로.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은 역시 순댓국이지만 맛있게 먹고 나면 쉬지 않고 움직인다. 뒷정리를 하고, 다음 끼니를 준비하고, 운동이 힘들어 끙끙대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다음 동작을 시작한다. 지긋지긋한 운동을 하면서 EXO의 시우민 영상에 환호하는 한혜진은 자신에게 적절한 채찍과 당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시간과 공간을 관리하는 것은, 누구나 걸어 다니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게 걷는 건 진짜 힘든 일이라는 그의 지론처럼 테크닉이 필요한 일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독립적인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듯, “걸어야 할 때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꾸준히 다져온 바닥과 흔들리지 않는 중심, 계속 뻗어나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솔직하고 자신감 있고, 괜한 어리광이나 빈말이 없는 성격의 한혜진은 예능에서 종종 ‘기 센 언니’라 불린다. 그러나 이는 사실 자신의 영역에서 물러서지 않고 최고로 인정받으며 일해온 여성이 자연스럽게 체득한 위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크쇼나 패션 관련 프로그램에서 그가 보여준, 주관이 뚜렷하고 만만하지 않은 ‘어른’ 여성의 캐릭터는 한국 TV에 흔치 않다. 한혜진이 신인이었던 시절 여성 모델들은 삼십 대 초반이면 대부분 은퇴했던 반면,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한혜진은 “칠십 살까지 활동하겠다”고 농담처럼 다짐한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과 한 무대에 설 만큼 업계의 최고참이 된 그는 경험으로 쌓아올린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과 새로운 분야에의 공부를 함께 해나가는 중이다. 자신과의 싸움도 시간과의 싸움도 혼자 해낼 수밖에 없는 모델은 한혜진의 말대로 고독한 직업이다. 하지만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땀 흘린 뒤 즐기는 꼼장어와 와인 한 잔은 혼자여도 충분한 인생의 균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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