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수고지방’은 새로운 다이어트가 아니다

2016.10.19
생각지 못했던 다큐 한 편의 파장이 꽤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저탄고지(LCHF)’라는 말을 유행시킨 [MBC 스페셜-지방의 누명]. 벌써 효과를 체감했다는 지지자들의 간증과 종래의 영양학적 상식에 위배된다는 반대론자들의 반발이 여전히 맞서고 있다. 사실 이 같은 ‘신상 다이어트 붐’은 결코 초유의 사태가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공중파 3사는 끊임없이 건강 다큐를 송출해왔으며 오히려 이번 일은 ‘붐’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반향 또한 잔잔한 편이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JTBC 손석희 사장이 아직 MBC [100분 토론]의 앵커였던 시절,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못할 토론 주제가 생방송을 탄 적도 있었다. 바로 ‘채식이냐, 육식이냐’를 두고 벌인 논쟁이다. SBS의 건강 다큐 [잘 먹고 잘 사는 법]에서 채식의 장점을 강력하게 설파하자 전국의 식품 매장 유기농 채소 코너는 동이 났고 육류와 유제품 매출은 급감했다. 그 정도가 오죽했으면 일종의 사회문제로까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렇게 공중파 3사의 건강 다큐는 소식, 채식, 유기농, 생식, 단식 등으로 주제만 바꿔가며 쉼없이 이어져왔고 또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번에 선택된 화두, 저탄수고지방을 두고 우리는 그저 효능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선에서 그쳐서는 안 될 이유다.

그렇다면 모두가 궁금해할 가장 큰 질문, 저탄수고지방 다이어트의 효능과 안전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보자. 그 효능에 대해선 이미 방송에서 여러 차례 제시됐다. 살이 빠진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저탄수 식단’은 이미 널리 알려진 다이어트 방법이다. 클린턴 부부가 백악관 재임 시절이던 2000년대 초, 저탄수고단백 식이요법의 일종인 ‘사우스비치(South Beach)’ 다이어트에 따라 살을 뺀 것을 계기로 국내엔 황제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3대 영양소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며 그 자체가 체지방으로 전환되기 쉬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 효과를 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단백질과 지방의 차이다. 왜 지금 유행하는 LCHF는 지난 십수 년간 널리 알려진 다른 ‘저탄수 다이어트’들과 달리 고단백이 아닌 고지방을 주장하는 걸까? 이는 LCHF 다이어트 식단의 상당수가 ‘뇌전증(간질) 환자 처방식’을 변형시킨 결과로 보인다. 뇌전증 환자들을 위한 처방식은 케톤체(포도당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방산이 연소될 때 생성되는 분해산물. 단식, 기아상태일 때 몸에서 영양분으로 활용된다) 생성을 촉진할 목적으로 ’저탄수, 저단백, 고지방’으로 조성된다.

이 식사법은 ‘뇌전증은 뇌의 에너지 부족으로 일어나는 발작일 것이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뇌는 탄수화물인 ‘포도당’을 주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뇌전증 환자는 모종의 이유로 이 영양공급 체계에 문제가 생겨 뇌가 당분을 받아들이질 못하고 에너지 결핍 상태를 일으킨다. 그래서 기아나 단식 같은 극한 상황에서 뇌가 2차 에너지원으로 삼는 물질, 케톤체를 생성시켜 평시에도 꾸준히 뇌에 공급시켜주면 간질발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케톤식이요법의 골자다. 케톤체를 생성시키려면 혈중 인슐린 농도를 낮게 유지해 몸이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굶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저탄수-고지방 식단으로 몸을 속여주는 것이다. 미국에선 1920년대부터 간질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어 왔으며 국내에선 현재 세브란스 병원 신경과에서 소아 뇌전증 환자 치료에 활용 중이다.

이 ‘케톤생성 처방식’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바로 체지방감소다. 애초에 감량 의도로 만들어진 다이어트는 아니지만 어찌 됐건 저탄수 식단인 만큼 살은 빠지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LCHF 식단은 이 같은 케톤생성 처방식의 저탄수-저단백-고지방 레시피에서 영향을 받은 걸로 보인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LCHF는 현재 환자처방식으로도 사용 중인 검증된 식이요법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LCHF의 가장 큰 문제는 마땅히 통일된 규격이 없는 미완의 다이어트라는 점이다. 고지방 식이에 흥미를 느끼고 정보를 얻으려 해도 출판물이나 영상물과 같은 다른 형태의 매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걸 이내 느끼게 될 것이다. 결국 정보의 창구로 인터넷 웹서핑을 선택하게 될 텐데 이내 ‘조각난 지식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는 LCHF의 독특한 태생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시중에 통용되는 대부분의 다이어트들은 명확한 ‘개발자’가 존재하는 일종의 상품이다. 앳킨스, 팔레오, 존, 뒤캉, 사우스비치처럼 개인이 레시피를 개발한 경우도 있고 기업이 특허권을 소유(웨이트 워처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일종의 ‘무브먼트’로 시작된 LCHF의 경우 창시자격인 안니카 돌크비스크 박사가 존재하긴 하지만 명확한 기준은 추종자들 내부에서도 서로 왔다 갔다 하는 상태다. 식사 시간을 특정하지 말고 배고플 때 짬짬이 먹어라, 칼로리를 계산하지 말고 좋은 지방과 나쁜 지방을 나누라는 등의 지침은 팔레오 다이어트의 영향으로 보이고, 일일 탄수화물 섭취량을 20g 미만으로 엄격하게 지키라는 의견은 앳킨스 다이어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은 사우스비치 다이어트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고, 과일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도 매끄러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한마디로 아직도 많은 사람이 만들어나가고 있는 단계로 봐야 한다. 굉장히 배부르고 편하게 할 수 있는 다이어트라고 시작하려 했다면 오산이다. 바로 그 순간부터 다시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같은 방송에서 7년 전에는 ‘채식’이 최고임을 강조했었다. 채식으로 고혈압 같은 생활습관병은 물론 암까지 완치했다는 출연자들의 간증이 이어졌고 이는 또 한 번의 채식 열풍으로 이어졌다. 같은 방송국, 같은 꼭지, 같은 시청자인데 연출자만 변해도 시청자들은 다시 바람 앞의 등불이 된다. 미디어는 특성상 늘 새로운 아이템에 목말라하고 시간에 맞춰 바람의 방향을 바꿔야만 한다. 경우에 따라선 그 주기가 짧아지기도 하며 과거의 방향과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시청자가 이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카더라’로 들어온 식이요법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따라 하는 식의 도전은 저탄수고지방 다이어트가 아닐지라도 작심삼일로 끝나기 마련이다. 분명 시간이 흐르면 방송에선 저탄수고지방이 아닌 또 다른 섭생법과 건강법을 대서특필해 나올 것이다. 다이어트(diet)의 어원은 보다 광범위한 뜻이었다. 그리스어 디아이타(diaita)는 본디 ‘라이프 스타일’ 전반을 총칭하는 광의의 단어였다.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지킬 결심이 섰다면 그때부터 새로운 다이어트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끝으로 이번 방송이 우리에게 남긴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을 곱씹어보자. 섭생을 다룬 건강 다큐들은 무의식 중에 ‘신토불이’와 같은 구호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통의 먹거리, 조상의 지혜, 신성화된 쌀과 김치의 효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저탄수고지방’은 이들과 양립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길이다. ‘쇼크밸류’는 크지만 그만큼 한국인의 일상 속에 침투하기 어렵다. 밥을 기준으로 주식과 부식을 나누는 문화에 익숙해진 한국인에게 밥을 포기하고 버터와 치즈 같은 이국적인 식재료에 집중하라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지방의 누명’ 이전에도 ‘저탄수식단’을 주제로 삼는 건강 기획들은 몇 차례 존재했으나 다들 흰 쌀밥으로 대표되는 진입장벽을 뚫지 못하고 이슈화에 실패했다. 그러나 과감하게 ‘쌀밥에 김치’로 대표되는 밥상 민족주의에 정면으로 맞서 균열을 일으킨 제작진의 용기는 몹시 고무적인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지방의 반란’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코치D(남세희)
[다이어어트 진화론] 저자, 現 피트니스 체인 ‘스포플렉스’ 개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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