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천재 이제석에게 없는 파격의 품격

2016.10.19
지난 4월 총선에 1면 구성으로 재미를 본 [경향신문]이 창간 70주년을 맞아 또다시 욕심을 냈다. 먹다 남은 삼각김밥과 컵라면이 10월 6일자 신문 1면을 뒤덮었다. 요즘 몇 안 되는 종이신문 구독자로서 당일 오전 신문을 받아 든 순간의 당혹스러움을 기억한다. 한 눈으론 헤드라인 위에 얹힌 라면가닥을 흘깃거리며, 한 눈으론 특집 기사를 훑으며 맥락을 파악하려 애썼다. “1면을 가린 한 끼 먹거리는 청년 문제보다 더 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해몽에 가까운 설명을 읽고 나서도 고개는 갸웃거려졌다.

[경향신문]의 의뢰로 ‘뭣이 중헌디’를 작업한 이는 다름 아닌 광고천재 이제석,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오히려 왜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됐는지 이해가 됐다. [경향신문]은 파격을 원했고 그는 하던 대로 파격을 주었다. 나를 포함한 적잖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파격을 위해 미감은 어디까지 포기될 수 있는가? 파격을 위한 파격, ‘김치 싸대기’ 같은 파격은 과연 효과적인가?

“비주얼로 승부하라고. 대빵 강력한 이미지로!” 이제석이 집필한 [광고천재 이제석](2010년, 학고재)에서 밝힌 해외공모전 당선 비결이다. 그에게 해외 광고제 수상과 ‘광고천재’란 칭호를 안겨준 이 전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전국 미대생들의 바이블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제석 식의 공모전용 파격이 공모전에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공기관과도 잘 맞는다. 한국의 공무원들은 보수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깨기 위해 특히 ‘기발한 착상’, ‘신선한 발상’에 제1 가치를 둔다. 관 주도로 진행되는 거리/골목길 정비 사업을 보면 그들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는데, 파격을 위해서라면 이마저도 기꺼이 포기한다. 

접점은 파격 우선주의뿐만이 아니다. 이제석은 유명인이고 관공서는 유명인을 사랑한다. 퍽퍽한 보고체계에 윤활유 같은 존재, 게다가 그들의 일을 덜 수 있는 천재라니. 덕분에 우리는 출퇴근길 광화문에서, 버스정류장에서, 건물 외벽에서 이제석의 파격과 끊임없이 조우해왔다. 그중에는 튀는 것, 웃긴 것, 이상한 것이 다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경찰청 신고전화 캠페인 중 포스터①은 성 평등 면에서 실패했지만 포스터②는 직관적이고 명료하다. 아이디어엔 기복이 있을 수 있다. 4번 타자의 타율도 3할대고, 아이디어도 매 타석 홈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 번의 웃어넘김 뒤에 남는 것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곳곳에서 파격을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광고의 기본 목적은 행동 유발이다. 인지도/호감도를 높이고, 제품을 사게 만들고, 따라 하게 만들고. 광고를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이라고 하는 이유다. 공익광고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만으로 임무 완수가 아니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CD의 작업을 예로 들어보자. “왜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우십니까? 왜 날아가는 풍선은 잡아주십니까? 왜 흩어진 과일은 주워주십니까? 왜 가던 길은 되돌아가십니까? 사람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합니다.” 이 광고 안에는 어떤 파격도 없다. 하지만 당시 이 캠페인은 해당 브랜드의 프리미엄과 시장점유율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것이 광고가 오를 수 있는 어떤 경지다. 아쉽게도 더 이상 이런 식의 품격 있는 일상적 마스터피스를 만나보기 힘들다. 말초적 자극과 파격이 콘텐츠가 갖추어야 할 최우선 덕목이 된 지 오래다. 국내 1위 자동차 기업의 광고도 약을 빨고, 지상파도 아프리카 TV를 모방하는 시대에, 가난한 건 통장만이 아니다. 제작비와 함께 사람을 둘러싼 것들의 미감도, 사람의 미감도, 사람값처럼 싸지고 있다. 오죽하면 정상에 있던 CF 감독까지 이 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대통령 비선이라는 다른 산을 탔겠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이런 파격적인 시도를 한 것에 대한 평가를 내려줬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리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진 않다. ‘남자 여자를 떠나 혐오를 멈춰주세요’처럼 누구 좋으라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야 하나. 시도만으로 ‘우쭈쭈’ 해줄 순 없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파격은 파격이고 못생긴 건 못생긴 거다. 파격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는 가난한 청춘에게도 존엄이 있듯.

김진아
광고업자이자 자영업자




목록

SPECIAL

image 김생민의 영수증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