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늦은’ 수상

2016.10.20
스웨덴 한림원이 밥 딜런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지명한 직후, 수상국인 미국은 유독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인 딜런의 수상이 합당하다며 재빨리 트윗을 올렸고, 미국의 대표적인 인기 소설가인 스티븐 킹 역시 그의 수상에 “열광적”인 지지를 표한다며 환영의 제스쳐를 담았다. 딜런의 수상 소식을 들은 이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바였지만, 딜런의 수상에는 즉각적인 반발과 비아냥도 뒤따랐다. 가령 영화 [트레인스포팅]을 쓴 어빈 웰시는 “노망난 늙은 히피들의 그릇된 노스탤지어”라는 격한 표현으로 못마땅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뉴욕 타임스]와 [가디언] 등에서 문학상을 수상해 ‘소설계의 우디 앨런’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게리 슈테인가르트는 “위원회를 이해한다. 소설은 읽기 힘드니까”라는 트윗을 남겨 논란을 낳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상 기준에 대한 이성적 반박이라기보다는 이번 수상을 통해 문인들이 느꼈을 일종의 ‘박탈감’을 대변한 것일 수 있다.

딜런의 수상에 갖는 즉각적인 거부감 혹은 어리둥절함의 이면에는 노래의 ‘가사’가 그 자체로 순수한 문학인가 혹은 노벨상을 받을 만큼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소설가이자 [뉴욕 타임스] 편집위원인 애나 노스가 기고한 글은 이 지점을 친절히 짚고 있다. 딜런의 가사는 분명 위대하지만 그것은 ‘음악’과 분리해서 생각하거나 평가할 수 없으며, 그는 이미 음악계로부터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고 주장한 그는 마침내 “딜런은 노벨 문학상이 필요치 않지만 문학은 노벨상이 필요하다. 올해 문학은 그것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본심을 내비친다. 흥미로운 것은, 딜런에게 상을 안긴 한림원의 성명에서는 최소한 이러한 공공연한 구분, 즉 ‘가사와 시’, ‘작사가와 문학가’, ‘음악인과 문인’의 이분법에 대해 비교적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딜런을 가리켜 ‘위대한 미국 노래 전통 속에서 “새로운” 표현양식을 만들어 온 인물’이라 평가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노래 전통은 이미 어떠한 의미에서 문학의 양식임이 인정되며, 그 안에서 혁신적인 역할과 높은 수준을 담보한 딜런의 공을 각별히 기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사포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랑시 및 서사시의 전통마저 환기시킨다.

애초에 노래와 시는 다른 것이 아니었으며 불리기 위한 시가 결국 읽혔듯, 노래를 위해 쓴 딜런의 가사 역시 당연히 읽는 글로써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딜런의 옹호자들이 굳이 그를 ‘음유시인’으로서 불러 다른 뮤지션들과 구분 짓고 싶어 하는 부분이라든지, 혹은 시라는 문학의 양식이 글로 쓰여지기 훨씬 이전부터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던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딜런을 가리켜 가장 탁월한 목소리이자 ‘본래적 형태’의 시인이라 극찬한 동료 뮤지션 톰 웨이츠의 평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런 의견에 수긍한다면 밥 딜런의 수상은 충분히 납득가능할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는 오히려 ‘늦은’ 결정으로도 여겨질 법하다.

나는 여전히 딜런을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추켜세운 위원회의 논리에는 문학인 밥 딜런에 대한 평가 이외에도 노벨 문학상이 그간의 엄숙주의를 내던지고 유연함을 입기 위한 의도가 중요했을 것이라 의심한다.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을 대표하는 유대계 미국인 뮤지션, 더구나 뉴욕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트(beat) 등 반문화와 히피운동, 반전과 평화의 노래를 통해 대중음악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른 딜런의 독특한 정체성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노벨문학상이 금기를 깨야 하는 순간에 가장 ‘안전한’ 선택의 근거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간 문학은 물론이요 고전음악에 비해서도 늘 세속적이며 얕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대중음악의 운명을 떠올려 볼 때 딜런의 수상은 배경을 떠나 감격스러운 사건이다. 사실 그보다 궁금한 것은 그의 수상이 바꾸어놓을 인식의 변화와 그 이후의 풍경이다.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본다. 현대적 포크 음악이 유의미한 ‘문학’의 한가지로 여겨지기까지 80여 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70년대에 등장해 이제 50년에 가까워진, 현재 가장 대중적인 문학적 실천의 형태 중 하나로 인정받기 시작한 힙합이 같은 자리에서 거론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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