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Q]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에 대한 몇 가지 질문

2016.10.24
지난 10월 10일은 ‘임산부의 날’이었다. “임신과 출산의 중요성을 북돋우기 위하여” 모자보건법 제3조 제2항에 따라 제정된 날이다. 그러나 10월 15일 서울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열렸다. 500여 명이 참가한 시위 현장에서는 “덮어놓고 낳다 보면 나는 인생 개망해 / 덮어놓고 낳다 보면 나는 경력단절녀 / 몸 상하는 것도 비난받는 것도 모두 나”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10월 22일에는 부산에서도 ‘검은 시위’가 열렸다. 10월 29일에도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거리로 나온 여성들이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을 외치게 된 이유, 그리고 이에 따라오는 어떤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정리했다.
 

Q. 왜 낙태 얘기로 이렇게 난리인 건가?
9월 23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성폭력, 무허가 주사제 사용, 대리수술 등 8가지 유형의 ‘비도덕적 진료행위’가 명시된 이 안에 따르면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은 현행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상향 조정될 수 있다. 논란이 된 것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항목 안에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은 불법이며,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서 명시하는 예외(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근친상간, 임신 지속이 산모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에만 임신 24주 이내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된다. 물론 2011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간 인공임신중절수술 규모가 약 17만 건으로 추정되는 현실에서 그동안 낙태금지법은 거의 사문화된 조항에 가까웠지만, 집도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의 움직임이 일자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측이 “개정안 시행 시 낙태수술 전면중단”을 선언했고, 분노한 여성들이 즉각 행동에 나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전문가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 이후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대상 및 자격정지 기간 등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Q. 낙태는 불법이라던데 불법은 나쁜 거 아닌가? 
형법 제27장 제269, 270조에 따르면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 낙태를 도운 의사와 조산사 등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또한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본인과 배우자(사실혼 관계 포함)의 동의가 필요하며,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및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만 본인의 동의만으로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합법적 낙태’의 관문은 매우 좁다. 2013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발간한 [있잖아...나, 낙태했어]에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헤어진 남성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으나 임신 사실을 밝히면 상대가 헤어져주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는 여성, 사실혼 관계 파기로 소송에 이른 뒤 과거에 합의했던 인공임신중절수술 때문에 남성에게 고소당한 여성, 파혼 후 임신 사실을 안 남성의 집안에서 ‘아이를 낳아서 달라’고 요구하자 거절했다가 고소당한 여성 등. 이 책의 머리말 제목은 “25명의 낙태에는 25명의 사연이 있다”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연이 법의 테두리 밖에 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이 존재할 때 달라져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현재 한국여성민우회는 여성을 ‘낙태죄’로 처벌하는 형법 개정을 위한 1만 명 청원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Q. 낙태 합법화로 낙태를 너무 가볍게 하게 되면 나쁜 거 아닌가?
‘가벼운’ 낙태란 무엇일까?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모든 과정이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당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고민과 고통을 대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의 불안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 출산 여부를 결정하기까지의 스트레스, 임신중절수술을 위한 비용과 시간의 문제, 수술 이후의 육체적·정신적 회복 과정 가운데 임신을 가능케 한 정자 제공자인 남성이 온전히 대리할 수 있는 것은 수술비뿐이다. 그러나 ‘불법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에 관여한 의료인을 처벌하는 근거가 되는 형법에서도 남성에게는 사정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임신 관련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임신 초기에 수술이 이루어져 수술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당일 퇴원할 수 있다 해도, 타인이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 낙태는 없다. 결국 이 모든 경험과 기억은 당사자에게만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Q. 하지만 낙태를 할 만큼 방종·방탕하게 생활한 여성이 나쁜 거 아닌가?
2011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수술의 비율은 기혼 여성이 57.1%로 미혼보다 높았다. 중절 사유는 원치 않는 임신, 경제적 어려움, 태아의 건강문제, 미혼, 가족계획 순이었는데, 이 중 ‘미혼’을 제외한 모든 문제는 기혼 여성에게도 해당된다. 특히 90년대 중반 여아 100명당 남아 115명 출생에 이를 만큼 심각했던 성비 불균형은 남아 선호로 인한 여아 감별 낙태, 즉 가정 내 젠더사이드의 결과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미혼 여성의 자유로운 성생활 역시 타인에게 비난받거나 단죄당할 영역이 아니다. 2007년 영국의 페미니즘 매체 [The F-Word]에 ‘인공임신중절, 여전히 페미니스트의 문제’라는 글을 기고한 이리나 레스터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여성에게 어머니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은 은행 계좌 개설을 막거나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비록 2012년 8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제1항에 대해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지만. 

Q. 어쨌든 멀쩡한 태아를 조각내 살해하는 낙태 수술은 나쁜 거 아닌가? 
여성의 뱃속에 있는 태아를 무시무시한 수술 도구로 끄집어내려 한다. 초음파 영상 속 태아는 공포에 질려 몸을 피하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처참한 모습의 태아 사체와 조각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1984년 미국에서 발표된 이후 한국의 많은 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에 사용한 영상 [침묵의 절규]다. 그러나 많은 의학자들은 이 다큐멘터리가 수술 도구의 등장에 맞추어 초음파 영상을 빠르게 재생함으로써 태아의 공포를 연출하고, 12주 된 태아의 초음파 영상에 이어 10개월 된 태아의 사체 모델을 보여줌으로써 진실을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태아는 원래 뱃속에서 입을 벌린 채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참고로 자궁벽에 착상한 수정란은 임신 10주까지 ‘배아’라 불리고 크기는 약 3cm다. 포도알 크기였던 배아는 임신 10주부터 ‘태아’가 되며 12주 무렵 태아의 크기는 약 7cm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수술의 70% 이상은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지며, 이 시기의 수술 방법은 진공관이나 기구를 통해 자궁내막을 흡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신 중기 이후 태아가 자궁 안에서 ‘조각’나지 않게 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임신 가능성이 있는 성 관계를 하지 않거나, 피임을 철저하게 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이 초기에 중절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Q. 배아도 생명인데 태어날 기회도 안 주다니 나쁜 거 아닌가?
낙태근절운동을 이끄는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회원인 심상덕 산부인과 전문의는 저서 [낙태와 낙태]에서 “여성이 태아를 자궁에서 안전하게 키우고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은 생물학적, 윤리적으로 부여된 인간의 그리고 엄마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태아가 다른 여성의 자궁 또는 외부의 자궁으로 옮겨갈지 말지 선택할 수 있을 때나 여성도 태아의 유지 여부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최소 10개월에 걸친 임신-출산과 그 이후 양육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원치 않는 여성이 임신을 중지하고자 하는 것은 신체의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건강, 생명, 생존, 행복권을 상당 부분 침해하기도 하는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은 ‘엄마’ 되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태어난 자녀의 삶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20세기 초 미국 여성들에게 피임법을 적극 보급한 산아제한운동가 마거릿 생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임신중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어떤 여자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어떤 쟁점에도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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