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재훈, ‘악마의 입담’이라는 착각

2016.10.25
“재기에 성공한, 제3의 전성기 바로 문턱에 와 있는.” 지난 9일, ‘tvN 10 Awards’에서 이상민은 시상자로 함께 선 탁재훈을 이렇게 소개했다. 2013년 불법도박 혐의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해야 했지만, Mnet [음악의 신 2]를 시작으로 3년 만에 복귀한 탁재훈은 무려 다섯 개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 중이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온갖 예능 프로그램과 예능인들은 입을 모아 그의 재능을 극찬했다. 악마의 입담, 레전드, 예능 천재, 프로예능러. 녹화시간에 자주 늦는다거나 녹화 들어가기 10분 전 꼭 도시락을 시키고, 녹화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는 탁재훈의 좋지 않은 습관 또한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됐으나,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는 “잦은 지각과 투덜거림에도 이분을 찾게 되는 건 아마 천재적인 악마의 입담 때문”일 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tvN [SNL 코리아 8]는 아예 “평소 대본이 있어도 잘 보지 않는 탁재훈 앵커의 성향을 고려, 철저히 그의 순발력과 애드리브에 의존하며 탁재훈 앵커의 당일 컨디션에 따라 코너의 퀄리티가 널뛸 수 있음”을 미리 공지할 정도다. 탁재훈을 섭외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는 비록 그의 태도가 불성실할지라도 그만큼 웃기니까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SNL 코리아 8]의 ‘위켄드 업데이트’에서 탁재훈은 시사 이슈에 대해 ‘아무 말’에 가까운 ‘드립’만 친다. 사드 배치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김준현 씨 집에다 배치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는 식이다. 맥락도 의미도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재미있을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탁재훈의 ‘드립’이 주로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함께 출연한 바로가 “워낙 느긋하시니까 (만약 듀오로 활동하게 되면) 안무 연습에도 잘 안 나오실 것 같다”고 말하자, 탁재훈은 “어린 친구가 참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요. 그냥 하라면 하면 되는 걸. 그냥 해 임마”라고 소리쳤다. 과거에도 그는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도박 전과가 있는 신정환을 ‘포카앤칩’이라는 표현으로 놀리는 등 타인의 약점을 농담거리 삼는 데 능숙했고, 이것은 탁재훈과 신정환처럼 아주 각별한 사이가 아닌 이상 듣는 이와 보는 이 모두를 불쾌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Mnet [비틀즈코드 2]에서는 “저는 나이를 쌍꺼풀 보고 맞히거든요”라고 백지영을 놀린 후 때리는 시늉을 하는 백지영에게 “저는 제일 무서운 게 여자 건달이에요”라거나, 슈퍼주니어의 은혁에게 “(눈을) 트는 게 낫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얌전하지 않은 여자와 외모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3년 만의 컴백 이후, 탁재훈의 ‘웃기면 됐지’ 식 공격은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된다.

특히 아이돌을 중심으로 하는 MBC 뮤직 [스타쇼360]에서 그가 보여주는 언행들은 어떤 제재나 안전장치도 없이 폭주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보조 MC인 I.O.I의 김소혜가 “영광입니다”라고 지정석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밝혔을 땐 “어린애가 싸가지 없네”라고, “I.O.I의 할리퀸 분장이 ‘역대급’이었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말했을 때는 “어린애가 구라를 그렇게… 이게 무슨 개구랍니까?”라고 면박을 주었다.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김소혜가 실수를 할 때마다 엎드려뻗치라거나 정신 차리라고 일갈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여기에 더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바로뿐만 아니라 녹화 중간 큐 사인을 주는 막내 PD를 향해 목소리가 갈라졌다며 “야, 다시 해라. 이건 좀 아닌 것 같아”라고 재치 있는 멘트인 양 꾸짖기도 했다. 엄연히 따지자면 바로와 김소혜, 막내 PD는 탁재훈과 예능에서 일로 만난 동료인 동시에, 예능 안에서나 현실에서 실제로 권력 차이가 존재하는 사이다. 하지만 탁재훈은 상황과 맥락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 없이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아무 말’을 던진다. 사회적 편견이 담긴 멘트를 하고, 자신보다 나이와 경력이 적은 이들을 공격하면서도 그것이 예능 안에서 합의된 농담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경력이 긴 예능인인 데다,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중년 남성이라는 탁재훈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권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을 쉰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여러 예능에서 앞다투어 섭외하고, 갖가지 편견에 바탕을 둔 발언을 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불법 도박과 이혼 경력이 있는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 삼는다고 해서 예능에서 그의 위치가 낮아지는 건 아니며, 오히려 이 역시 오래된 경력의 중년 남성 예능인이기에 허락되는 자학 개그 중 하나다. 물론 탁재훈이 고의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출연자들을 골라 공격적인 멘트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그의 ‘아무 말’ 개그가 도발적이거나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만큼의 강자는 거의 없으며, 시청자들은 그가 자리를 비운 3년 동안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장동민을 비롯한 옹달샘이 여성 혐오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것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편견이나 혐오가 담긴 발언들은 ‘웃기면 됐다’라는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탁재훈이 “너무 착한 진행을 한다”고 [냉장고를 부탁해]를 비판하거나, “아무리 음식이 앞에 있지만 야한 얘기도 좀 하고 짓궂은 장난도 좀 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라며 전한 조언은 그가 시대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금 ‘악마의 입담’이라는 수식어는 재미있다기보다 독하다는 의미에 가깝고, 그만큼 탁재훈의 개그를 보며 마냥 웃기 힘든 순간도 늘어간다. 그러니 탁재훈이 세 번째 전성기의 문턱을 넘느냐 못 넘느냐는, 그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느냐에 달렸다. 몇 개의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가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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