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② 이화신,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

2016.10.25
이화신(조정석)은 직장에서 꽤 괜찮은 기자다. 불법도박장의 실태나 고층건물 유리창 청소 노동자의 근무환경에 관해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취재한다. 가족들의 원망을 사야 했던 이유도 형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의 비리를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SBC 방송국 내에서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지분거리는 다른 남성들과 비교할 때, 이화신은 일만 할 뿐 지나치게 접근하거나 불쾌하게 굴지도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화신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진 남성이기도 하다. 방콕에서는 PD면서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최동기(정상훈)를 비난하며 “남자 새끼가 지는 쏙 빠지고 힘없는 기집애한테 맡겼다”고 말했고, 표나리(공효진)가 처음으로 항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마음대로 휴대폰을 빼앗아 대신 따지기도 했다. 얼핏 여성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는 여성에게도 능력과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화신의 이런 캐릭터는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계보 안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여성을 위한다는 핑계로 종종 무례하고 과격해지는 남자 주인공들은 이른바 ‘츤데레’ 캐릭터라 불리며 사랑받았다. [질투의 화신]은 화신을 통해 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미성숙한 인간일지 시뮬레이션한다. 화신의 친구 고정원(고경표)과 나리는 키스를 하고, 그 모습을 본 화신은 비를 맞으며 돌아서지만 이 장면은 결코 애틋하게 포장되지 않는다. 괴로움에 술을 마시고 방송사 내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들에게 일방적으로 사귀자고 술주정을 부려도 화신에게 쏟아지는 것은 여성들의 경멸하는 눈빛과 욕뿐이다. 나리가 정원과 화신을 동시에 좋아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지만, 화신은 존중하고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둘 중 누구의 지분이 더 크냐고 찌질해 보일 정도로 끈질기게 물어댄다. 나리에게 양다리를 걸쳐보고 결정하라고 제안하는 이유 또한 오로지 그렇게 해서라도 나리를 보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 때문이며, “표나리한테 된다 안 된다 허락받을 필요 없어. 오케이 하는 여자가 더 이상한 거야”라고 당사자 여성의 의향을 무시하기까지 한다. 화신의 사랑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잘난 친구 정원이 아니라, 자기밖에 모르는 화신 자신이다.

정원의 존재는 화신의 찌질함을 더욱 극대화한다. 그는 재벌에다 일도 잘하지만 여성을 충분히 배려할 줄도 안다. 두 남자와 동거하게 된 나리가 정원에게 늘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다만, 정원 역시 여성에 관해 화신과는 또 다른 종류의 편견을 내비친다. 자신과 정략결혼을 하려는 금수정(박환희) 아나운서와 나리를 비교하며 “(표나리는) 그렇게 여자 여자 하는 그런 여자 같지는 않았어”라고 말한다. 한 여성과 다른 유형의 여성을 비교하며 평가하려는 시도는 성차별적이며, 그는 모순적이게도 재벌인 자신의 배경을 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영향력 아래 고분고분 굴어줄 수 있는 여성을 원한다. 나리에게 신용카드를 억지로 쥐어주고, 나리 덕분에 승부욕과 반항심이 오랜만에 불타올랐다고 이야기하며, 나리의 동의 없이 부모 앞에 끌고 가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한다는 점에서 정원은 화신과 유사하게 자기중심적인 남자다. 그는 대체로 신사적이지만 본인의 선의와 멋짐에 취해 있고, 평범한 나리가 그것을 좀 더 돋보이게 해줄 여성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정원과 화신이 갯벌에서 나리를 두고 싸우는 장면은 [질투의 화신] 안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나름대로 비장하게 경쟁하지만 정작 나리의 존재는 뒷전이다. 정원과 화신이 절친한 친구라는 설정은 경쟁 구도나 브로맨스의 연출을 떠나, 남성들이 얼마나 비슷한 속성을 가졌는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질투의 화신]이 아주 새로운 드라마라고 할 수는 없다. 재벌 남성이 평범한 여성에게 첫눈에 반하고, 몰래 짝사랑했던 남성이 반대로 사랑을 고백해 온다. 나리가 나쁘지 않은 조건의 남성들과 함께 동거하거나, 상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다양한 스타일의 남성들로 판타지를 자극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 그대로다. 남성의 찌질함을 완전히 까발린다고 표현하기에 화신은 종종 지나치게 귀엽거나 짠하게 그려지며, 정원 또한 완벽한 재벌 남성 클리셰에 더 가까운 쪽으로 활용된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기보다 파격과 공식의 적절한 절충안에 지나지 않지만, 적어도 [질투의 화신]은 로맨스를 빌미 삼아 함부로 행동하던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들이 왜 시대착오적인지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에 서툴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위악적으로 굴고, 여성을 위하는 척하면서 주체성을 무시하는 남성의 자리는 이 드라마에 없다. 변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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