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① 표나리, 중요한 걸 아는 여자

2016.10.25
SBS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공효진)는 하나만 고르지 못하는 여자다. 기상캐스터 자리를 포기하지 않은 채 빠듯한 스케줄의 아나운서 시험을 보기 위해 동동거리고, 사귀고 있던 고정원(고경표)과 짝사랑했던 이화신(조정석)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셋이 살아보자’고 제안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서 ‘양다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자 A의 마음은 남자 B만을 향하게 되어 있고, 나머지 남자 C는 그저 ‘친절하고 고마우신 분’에 그친다. 심지어 C가 객관적으로 더 괜찮은 연애 상대일 때조차 이 공식은, 여주인공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리는 잔뜩 곤란한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폭탄을 터뜨린다. “저, 마음이 두 개에요. 두 사람 다 사랑해요.”

미련 없이 하나를 내려놓고 깔끔하게 돌아설 수 있는 것은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의 얘기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잡는 것은 “가슴은 서울 쪽, 엉덩이는 동해 쪽으로”라는 PD의 요구만큼이나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긴 짝사랑에 지치고 위태로운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나리에게는 스페어가 필요하다. 학연과 공채 선후배로 엮여 조직 내에서 친분을 다지는 보도국과 아나운서국 구성원들과 달리 나리를 비롯한 기상캐스터들은 같은 스튜디오에서 일하더라도 소속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계약직 사원증 목걸이의 빨간 줄은 정직원용 파란 줄보다 약하고, 이들은 서로 경쟁하며 각자도생해야 한다. 온갖 허드렛일을 자처하고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자 하는 나리의 태도는 단순히 오지랖 넓은 성격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감정노동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나운서가 되었어도 출발선이 달랐던 그는 여전히 계약직이다.

서숙향 작가의 전작 MBC [파스타]의 서유경(공효진)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실력으로 깨뜨리고 최현욱(이선균)이 이끄는 주방에 설 수 있게 되었지만, 나리가 일하는 방송사는 정규직과 계약직,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남자 앵커와 여자 아나운서 등 훨씬 복잡한 계급과 권력의 문제가 얽혀 있는 곳이다. 수술 후 마취도 덜 깬 상태로 달려 나와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겠다”며 스튜디오에 서는 나리는 자신을 위한 자리가 세상에 많지 않음을 알고 있다. 대단한 야심가는 아니지만 일 욕심이 있고, 철저한 속물은 아니어도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고, 스스로 난관을 헤쳐 나가되 도움의 손길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여자. 탄탄한 학벌과 직업, 재산을 가진 정원과 화신은 나리와 서 있는 기반 자체가 다른 남자들이다. 아쉬울 게 없어 비굴해지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며 인정받는다. 그들은 나리를 사랑한다 말하고 아마도 사랑하겠지만,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두 남자의 구애 따위보다 동생에게 줄 낙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정원 때문에 상처받았을 때조차 화신을 병원에 데려가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무엇보다 두 남자 모두로부터 떠난 뒤 바쁘게 맞선을 보러 다니며 미안한 기색조차 없는 나리는 로맨스, 성 역할, 삼각관계를 둘러싼 거의 모든 클리셰를 비틀어 버린다. 그가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인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정원에게 향하는 머리와 화신에게 향한 본능 사이에서 고민 중인 나리는, 막상 그들 모두와 헤어지더라도 괜찮을 것처럼 보이는 여자다. 침대에서 밀어를 속삭이다가도 어느 순간 확신을 느끼지 못하자 단호하게 밀어내고, 신화니 철학이니 온갖 궤변을 들먹이며 엉겨 붙는 상대를 향해 “여자가 남자랑 한번 자면 게임 끝난다고 생각하는 발상부터 쌍놈 아니냐”며 쏘아붙이는 ‘어른 여자’의 연애는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잘나 보이지만 알고 보면 유치한 두 남자가 ‘평범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한다는 설정 안에, 사랑스럽고 적당히 순수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는 여자가 들어가면서 [질투의 화신]은 끊임없이 예상 경로에서 이탈하는 드라마가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흘러갈지 끝까지 지켜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목록

SPECIAL

image 넷플릭스

MAGAZINE

  • imageVol.169
  • imageVol.168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