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알렉시스 부흐 “자본주의라는 이념 아래 길 잃은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2016.10.26
“제 작품이 처음 공연됐을 때 관객들의 얼굴을 보셨어야 했는데, 완전히 딴 사람이 됐어요. 자본주의에 기초한 이 끔찍한 고통, 공포, 격렬함을 눈앞에 들이밀었거든요.” 막이 오르기 전 자신을 ‘작가’라 지칭하는 한 남자는 관객을 향해 경고한다. 독일의 작가 니스 몸 스토크만(Nis-Momme Stockmann)과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Alexis Bug)가 한국에서 만든 연극 [더 파워]는 ‘작가’의 경고처럼 불쾌하고, 어렵고, 극단적이다. 다양한 욕설이 무대 위에 난무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언행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며, 기어이 세상의 종말까지 그려낸다. 하지만 돈과 권력을 향한 그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씁쓸해서 눈물이 난다. 그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자 했던 질문은 무엇일까. 연출가 알렉시스 부흐를 만나 물었다.

작년에 본 [더 파워]는 철학적인 주제에 뚜렷한 서사도 없어 따라가기 힘든 극이었다. 올해는 어떤 점이 달라지나?
알렉시스 부흐
: 단순화. 작년 무대에는 여신동 디자이너가 작업한 큐브가 있었다. 굉장히 아름다웠고, 투영되는 영상이나 LED도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워서 내가 작업한 포스터들을 집에 붙여두지 않는데 그 사진만큼은 걸어둘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큐브 안이 무대가 된다. 막이 열리면 엄청나게 빈 공간에 홀로 서 있는 남자를 보게 될 거다. 의상과 메이크업도 단순해진다.

왜 단순화에 집중했나?
알렉시스 부흐
: 환상적인 무대나 의상 같은 건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더 파워]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단지 현실을 자유롭게 갖고 놀 뿐이다. 나는 어떤 완벽한 현실의 환상을 재현하고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 자신이 갖고 있는 환상을 이용해 극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싶다. 그냥 이 연극은 생각이고, 에너지고, 이미지다.

이런 연출 기법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알렉시스 부흐
: 서사적이지 않은 연극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안도했다. 연극은 이야기를 전달해야 된다고 누가 얘기했는가. 왕의 초상은 추상적으로 그려도 되고 알몸으로 물감을 묻혀 벽에 부딪히는 방법으로 해도 된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연극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하는, 아무것이나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장르라는 것을 한국 관객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연극은 이래야 한다고 누가 말했나’ 같은 질문은 배우로 일한 경험 때문에 생긴 건가?
알렉시스 부흐
: 배우로 일했을 때는 그게 문제였던 게 맞다. 레모네이드 광고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밝고 반짝거리고 신선한 느낌으로 하고 싶었는데, 연출가는 대부분의 광고에서 들을 수 있는 정확한 발음과 표준화된 목소리, 일정한 톤을 요구했다. 그게 레모네이드나 나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그냥 그건 라디오 광고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영화 예고편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것들이 창의력을 죽인다고 생각한다. 이건 우리 연극의 주제이기도 하다. 극에 이런 대사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 세상을 통째로 쳐 먹고 태블릿 PC와 스마트폰만 보는 좀비를 쏟아내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 좀비들은 얼마나 저열하고 변태적인지 정확히 깨닫게 될 거다. 그렇다면 연극에서의 좀비는 어디에 있는가, 이 자본주의라는 바이러스가 배우들의 제스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전 세계적으로 심리적 사실주의라는 연극 기법을 사용한다. 너 자신처럼, 자연스럽고, 진짜처럼 하라. 그런데 나는 오히려 그것이 한 가지 모션뿐이라 배우들을 똑같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그것들이 더 상업적이고 포르노처럼 느껴진다.

자본주의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렉시스 부흐
: 이 행성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항상 이념과 관련이 있다. 옛날에는 공산주의나 종교 같은 것이었고 현재는 자본주의다. 지금 내가 마흔넷인데 10년,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좋아졌지만, 자본의 매커니즘 역시 인간의 번영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다. 그것이 무섭다. 이웃보다 훨씬 잘나가라고, 살아남으라고, 상대를 이기라고 한다. 사람들은 정말 강해져야만 하고, 시스템을 넘어 스스로를 억압하는 상황까지 왔다. 비르크는 ‘비상시에만 열어볼 것’이라 적힌 편지를 받지만 끝까지 열지 않는다. 모든 답은 이 편지에 있다. 편지를 열면 세계 종말은 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는 열지 않는다. 우리 역시 어떻게 하면 아프리카를 잘살게 할지 알고 있지만, 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롯데, 네슬레, 페라리, 마스터카드, 오토바이, 탐욕, 이윤의 극대화, 우리에게 감사한다고 한다. 세계 종말에 도움을 줘서. 자본주의가 모든 걸 망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야기를 하는 곳이 한국이었나?
알렉시스 부흐
: 한국은 이러한 무브먼트를 가진 나라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처음 온 게 2007년이니까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한국이 점점 세계를 향해 열리고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지만, 쇼핑 문화는 점점 미쳐간다. 명동 한가운데에서 공연을 하는데, 명동의 쇼핑 거리를 봐라. 그리고 최근에는 연극하는 한국 친구들에게서 예술가들이 정부를 비판해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져 있다. 독일과 한국은 20세기에 어마어마한 전쟁과 폭동을 이겨내고 경제적 성장을 위해 달려왔다는 게 같다. 그래서 한국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뚜렷한 플롯이 없는 연극에서도 상대적으로 2장 타워와 3장 구름은 보편적인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관객이 직관적으로 상황에 몰입하게 한다. 비르크와 ‘나’를 통해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알렉시스 부흐
: 앞서 말했듯 사람들은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지만 그 시스템은 사람들을 억압한다. 니스 작가는 개인의 삶으로 들어가 그들을 보여주고, 그들이 갖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열등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일하고, 돈 벌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개인에게 공허함을 가져온다. 사랑이 부족한 거지. 이 연극의 기본 모티브는 ‘인간은 우주 안에 혼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공허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무대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는 것인가?
알렉시스 부흐
: 맞다. ‘나’는 지하철에서 만난 노숙자가 “시스템은 저 밖에 있는 어떤 게 아니라 바로 너”라는 말에 어리둥절해하고, 무대에서는 지하철 안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만을 보여준다. 배우와 관객 모두 현실적인 세팅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작년보다 훨씬 더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이 연극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길을 잃고 어리둥절해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이건 작년보다 발전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우주에서 삶이 가능한 곳은 현재로서는 지구뿐이다. 그런데 우린 굉장히 잘 못 살고 있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이 슬픔을 보여주기 위해 더 덜어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알렉시스 부흐
: 아이들은 감정적인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모두 일을 해야 하니까. 이건 야만적이다. 나는 아홉 살, 일곱 살 된 아이들이 있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강인하고 생동감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다. 100퍼센트. 이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지만, 모든 사람이 기본적이고 자연적으로 필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다. 노숙자 대사 중 “인도게르만어에는 자유와 친구라는 말의 뿌리가 같다”는 게 있다. 누구나 친구를 만나면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을 미룬다. 경쟁 없이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다른 아이를 만나서 노는 것처럼. 그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상업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해야 하는 건가? 회사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필요한가? 내가 하고 싶어 하는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 모두 자신이 무엇인가를 놓치고 산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다 그냥 산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더 이야기하고 토론해야 한다.

극에서도 나오듯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건 ‘탐욕과 두려움’ 때문에 쉽지 않다.
알렉시스 부흐
: ‘작가’도 극에서 “자본주의 비판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의 문제지만,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레모네이드 광고 이후 상업 광고를 안 찍는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좀 더 흥미롭고 지적인 광고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이 논의가 세상의 수많은 물건을, 광고를, 연극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통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게 내 연극의 첫 번째 목표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나 [햄릿]을 유명한 배우와 한다면 관객은 더 많을 거다. 하지만 니스를 한국에 데려온 것도, 이 작품을 하기로 한 것도 모두 내가 결정한 것이다. 이게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좀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것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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