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길

2016.10.26
배우 유아인의 가장 최근 작품은 지난 3월 종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다. 하지만 최근에도 여전히 그의 이름을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느 배우와 SNS 인증샷을 찍었다거나, 청소년이 뽑은 인기 영화배우에 이름을 올렸다는 식의, 배우로서 그의 여전한 인기에서 파생된 뉴스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지난 6일 유아인 팬클럽은 유아인의 생일 선물로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에 600만 원을 기부했다. 19일엔 유아인이 설립한 아티스트 그룹인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새 아트 프로젝트 에어로스페이스가 공개됐다. 프롤로그 에피소드에는 유아인이 직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다. 물론 팬클럽이 기부를 통한 선행으로 이름을 알리거나, 연예인이 자신이 참여한 어떤 브랜드를 런칭하는 건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게 있다면, 유아인 팬클럽의 기부금은 유아인이 지난해 1월 청소년 복지를 위해 만든 ‘뉴키즈유아인기금’에 더해지며 목적이 뚜렷해졌으며, 콘크리트 스튜디오는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더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자며 설립한 창작 공간 겸 크루다. 배우로서 휴업 중인 중에도 공적 활동을 하는 유아인은 여전히 활발하다.

유아인이 연기 외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또한 유아인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기부를 하고 사회적 환원을 말하는 선한 연예인들은 많다. 다른 건 공적 책임감과 자의식이다. 연예인의 기부는 그 자체로 이미 공적인 활동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개인의 선행이라는 말과 함께 축소되고 사회적 이슈로부터 탈맥락화된다. 지난 2013년 아이들의 급식비 문제를 거론하며 “이웃 아이들을 돕고도 나는 기름진 삼겹살로 외식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행운아”라 말하고 “선의를 갖게 되건 기부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음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길 바란다고 했던 것처럼, 유아인은 사회적 환원에 있어 사회의 어떤 결핍에 환원하는지를 꼭 밝히려 한다. 더 흥미로운 건 그것을 개인의 정의감 차원에서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뉴키즈유아인기금’을 만들며 그는 자신이 돕고자 하는 아이들을 “미래세대”라 칭하며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아이들은 의식주와 같은 기초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자본 논리가 주도하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마저 불평등한 현실”을 비판하고 “소외계층의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의 음지나 변두리로 내몰리지 않고, 진취적이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 미래의 당당한 주역”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두 사례는 단순히 유아인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식으로 묶일 일이 아니다. 급식비 문제는 학교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며 이 불평등은 궁극적으로 미래를 책임질 세대에 악영향을 끼치기에 문제라는, 보편적인 기반을 가진 일관된 도덕적 담론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발화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즉 유아인 개인의 정의감으로 못 참을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문제로 설명해낸다. 그래서 공적이다.

흔히 유아인을 정의하는,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미지를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는 건 그래서다. 그와 함께 JTBC [밀회]를 찍었던 안판석 감독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입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 평한 바 있다. 이것은 기분의 영역으로서의 자유가 아닌 자기 안의 격률인 자율성에 가깝다. 자유롭게 행동하되, 역시 다른 자율적인 개인도 합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그런 격률로서의 자율성. 정치적으로 누구를 지지한다거나 어떤 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는 연예인으로서의 ‘소셜테이너’와 유아인이 구분되는 건 이 지점이다. 앞의 것이 모두에게 허용된 발언의 자유 위에서 가능하다면, 유아인은 그 자유의 원칙을 자신의 발언 안에서도 지키려 한다. 지난 대선 이후 유아인은 “절망은 독재자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웃에서 온다”는 소설가 공지영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을 선택적으로 가질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공지영의 발언은 독재자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통해, 독재를 막는 가장 큰 장치인 투표에서 각 자율적 개인이 행사한 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수행적 모순에 빠진다. 유아인의 지적은 온당했다. 타인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자유란 개인의 기분 문제가 될 뿐이다. 흔히 유아인과 여타 ‘소셜테이너’에게 따라 붙는 소신 발언, 솔직 발언이라는 건 그래서 사실 별 의미가 없는 호칭이다. 자신의 도덕률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소신 발언은 소신 있는 아무 말, 솔직 발언은 솔직한 아무 말이 될 뿐이다. 유아인이 한국에서 흔치 않은 청춘이라면 솔직하게 말하는 보헤미안이라서가 아니라 솔직하되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아인은 그동안 연예인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 이용되던 ‘연예인도 공인’이라는 개념을 오히려 다른 의미로 확장시키는 듯하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공인으로서의 연예인이라는 개념은 연예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위해, 더 엄혹한 윤리적 잣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즉 그들의 자유를 억누르기 위한 장치였다. 그에 반해 유아인은 스스로를 공인이라 말한 적은 없지만, 셀러브리티로서 얻은 사회적 자산 위에서 공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며 공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투표를 독려할 때도 “우리가 사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을 뽑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공적인 맥락을 꼭 덧붙인다. 그가 내뱉는 자율성의 언어는 자신이 선 자리를 공적인 영역으로 만들며 이를 통해 더 많은 말과 더 많은 행동을 한다. 공인이기에 무엇을 하면 안 되느냐가 아니라 공인이기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듯한 그의 연기 외적인 활동은 활동 자체가 유의미하다는 점에서, 또한 연예인에게 윤리적으로 엄혹하면서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소셜테이너’라는 유별난 호칭으로 범주화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 태도에 균열을 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래서 유아인은 롤 모델이다. 아직 남이 안 가본 길을 넓힌다는 점에서 그렇고, 남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을 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더 부딪히고 더 자주 크게 말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넓어진 길은 모두를 위한 것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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