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이 작곡하는 걸 그룹의 노래

2016.10.26
I.O.I의 신보 [miss me?]의 수록곡 ‘잠깐만’은 한 그룹의 퇴장을 알리는 고별 트랙이자 짧은 시간만을 함께한 팬들에게 보내는 각별한 헌정이다. 비록 최면적인 중독성의 옷을 입은 “너무너무너무”가 앞으로도 더 많이 울려퍼지겠지만, 음악이 주는 매력의 정도만을 말하자면 이 곡을 따로 언급하고 싶을 정도다. 크레딧에 적힌 ‘진영’이라는 이름을 주목한다. 그에 대한 기억은 B1A4의 [Sweet Girl](2015)에 수록된 ‘10년 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돌의 음악으로서는 다소 예외적으로 느껴졌던 자전적이며 성찰적인 가사와 어른스러운 정서의 선율을 담고 있던 이 곡은 이제는 어느덧 흔해진 ‘작곡돌’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의 존재감을 아로새기게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Mnet [프로듀서 101]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곡 쓰기 능력이 그의 팬덤을 넘어 보다 더 폭넓은 대중에게 검증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I.O.I를 대표하는 곡들로 종종 회자되는 ‘벚꽃이 지면’과 ‘같은 곳에서’ 이 두 곡은 단순히 작곡돌로서의 역량만이 아니라 특히 걸 그룹의 음악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성격을 제대로 간파한 센스를 가진 작곡가로서 진영의 존재감을 충실히 확인시켜준다.

진영의 곡들을 들여다보면 정서적으로는 차가움과 따뜻함, 사랑스러움과 처연함의 상반된 면모를 대비시켜 서정적 감정을 자연스럽게 상승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잠깐만’을 들어보면 바삐 달려 빠른 맥박을 만들어내는 신스 비트가 기계적인 차가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반면 코러스의 멜로디가 섬세하고 살짝 서글픔을 느끼게 하는 선율을 차분히 훑으면서 전체적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같은 하늘,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처럼 익숙한 팝 코드 전개의 구성 위에 아련한 멜로디를 더해 가사가 투영하는 아련한 이미지를 탁월하게 그려낸 ‘같은 곳에서’도 그의 ‘공식’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오마이걸의 ‘한발짝 두발짝’처럼 고음의 팔세토가 얇게 펼쳐진 점진적 선율, 달리 표현하면 여성적이면서 예쁜 멜로디를 단순한 단어들에 대응시키는 그의 작곡 스타일, 그에 더해 강렬한 일렉기타와 빠르게 긁는 스트링 섹션을 병치시킨 편곡의 방향성 등은 그러나 엄밀히 말해 새롭다곤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분히 J-POP의 요소에 빚지고 있는 이 구성은 러블리즈를 키워낸 작곡팀 OnePiece, 그리고 여자친구의 거의 모든 히트곡을 탄생시킨 이기용배 등과 같은 팀들의 음악을 두루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앞에 언급한 두 팀이 보다 팝적인 캐치함 혹은 뭉뚱그려 ‘뽕끼’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호소력에 집중하는 데 반해, 진영의 멜로디는 그처럼 노골적이진 않은, 보다 세련미가 담보된 R&B의 그것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만들어진다. ‘벚꽃이 지면’에서 들리는 것처럼 멜로디만 따로 떼어놓으면 언뜻 솔로 R&B 가수의 음악으로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선율의 곡선은 그가 블랙뮤직으로 훈련된 보컬리스트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수긍이 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아이돌 음악신에서는 상반된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나열한 백화점식 앨범 구성이 보편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고, 그 때문에 타이틀곡만이 아닌 개성 있는 ‘수록곡’을 만들어줄 스페셜리스트들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작곡가 진영의 보폭은 이 지점에서 더욱 넓어질 것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뮤지션들이 힙합이나 일렉트로니카의 강렬한 비트와 두터운 텍스처를 전면에 앞세운 리듬 본위의 음악을 추구하는 데 반해 최근 그가 선보인 일련의 걸 그룹 음악들은 그의 시그니처가 담긴 명징한 선율의 아름다움을 전면에 부각시켜 보편적이고 보수적인 취향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서정적인 이미지를 능숙하게 환기시키는 노랫말과 어울려 걸 그룹의 변함없는 필수덕목인 소녀적인 순수함의 이미지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재능 있는 ‘작곡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걸 그룹 ‘맞춤형’ 작곡가로서 진영의 이름이 꾸준히 불려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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