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① “[춘몽]의 세 남자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2016.10.27
이주영은 영화 [춘몽]에서 예리(한예리)를 좋아하는 주영 역으로 장편 영화에 데뷔했다. 무심하게 공을 차며 등장해 이따금 얼굴을 비추며 예리를 둘러싼 세 남자의 찌질한 일상에 균열을 내고 나직하게 “시예요. 언니가”라고 고백하는 그는 [춘몽]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인스타그램에서 ‘숏컷이 잘 어울리는 여자’로, 누군가에게는 트위터에서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며 맥 딜리버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배우일 수도 있는 그가 [춘몽]에 출연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춘몽]을 포함해서 [누에치던 방], [꿈의 제인]까지 세 편에 출연했다. 요즘 기분이 어떤가.
이주영
: 예전에는 부산에 오면 하루에 영화를 3~4편씩 보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녔는데, 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영화제를 왔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신나더라. 특히 관객들을 만나는 무대인사가 즐거웠다. 다음 일정이 기다려지고 빨리 하고 싶었을 정도다.

[춘몽]의 주영은 분량이 많지 않지만 등장하는 순간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연기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이주영
: 굉장히 명확했다. 예리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다른 세 남자(윤종빈, 박정범, 양익준)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영화 들어가기 전부터 세 남자들이 나의 적으로 느껴졌다. (웃음) 장률 감독님도 이렇게 주문했다. 세 남자들과 주영이 축구 시합 같은 것을 하는 신이 있을 건데, 주영이가 남자 셋을 이겨먹어야 한다고.

어떻게 이겨먹을 수 있었을까.
이주영
: 글쎄, 내가 지는 게 있을까. 연기하는 배우의 인지도 빼고. (웃음) 극 중에서 예리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주영은 그 사람들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그리고 주영과 있으면 위험하지도 않을 테고, 주영이 예리를 더 잘 지켜줄 수 있다.

웹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에서도 독특한 캐릭터였다. 원작에서는 남자였던 캐릭터였는데 어떻게 접근했나.
이주영
: 세 감독님들(윤성호, 박동훈, 이랑)이 푸딩이 꼭 남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나에게 연락을 주셨다. “남자 캐릭터인데 어떻게 연기하면 될까요?”라고 물어보니 “남자다, 여자다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난 그냥 푸딩으로서 여기 존재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남자처럼 연기해야겠다는 걸 아예 배제한 거지.

레드벨벳 ‘세 가지 소원’ 뮤직비디오 공모전에서 1위를 했던 장본인인 만큼 아이린과 함께 연기를 하게 된 것도 신기했을 것 같다.
이주영
: 첫 대본 리딩 날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이린 씨가 들어오더라. 출연하시는 줄 미처 몰랐기 때문에 “우와, 레드벨벳이다!” 하며 놀랐다. 아이린 씨가 먼저 “혹시…. 맞으시죠?” 하고 말을 걸어줬다. 웹드라마치고 촬영이 빡세게 굴러가서 사람들끼리 많이 친해졌고, 카카오톡 단체방도 지금까지 잘 굴러간다. 얼마 전에는 이랑 감독님이 다 같이 만화방 가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맹 팀장 역의 정승길 선배님의 연극을 따로 만나서 보러 간 친구들도 있다. 드라마처럼 다들 순둥순둥하고 귀여운 사람들이다.

[춘몽]의 주영도, [게임회사 여직원]의 푸딩도, 워낙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이라 그런지 배우도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지더라.
이주영
: 지금은 성격이 굉장히 차분해지고 나름의 여유도 생겼는데, 예전엔 놀기 좋아하는 활발한 학생이었다. 내가 다닌 창현고등학교는 수원에서 1·2등 하는, 규율이 엄격한 인문계 학교다. 7시 10분까지 등교하고 야자(야간자율학습)가 거의 매일 있으니까 학교에 거의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학교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만 하다 보면 난 시스템에 젖은 사람으로밖에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난 지금 공부를 하기 싫은데 왜 야자를 해야 하지?” 이유를 도저히 못 찾겠더라. 그래서 야자도 자주 빠지고, 혼나기도 엄청 혼났다. 학교 공부를 하는 것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더 좋았다. 도서관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관심도 없는 교과서를 봐야 하나.

어떤 책을 좋아했나.
이주영
: 소설. 일본소설, 프랑스소설, 한국소설 골고루 다 읽었는데, 특히 온다 리쿠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다. 야자 시간은 물론 수업시간에도 몰래 책을 읽다가 뺏긴 적도 있다. 그러면 “이거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반납해야 한다”고 말하고 교무실에서 받아오고. (웃음)

학교 도서관에서는 대출을 많이 한 사람에게 상도 주지 않나.
이주영
: 실제로 그런 상을 받았다. 대출 가능 권수를 늘려주더라. (웃음)

주변 친구들에게는 어떤 이미지였나.
이주영
: 웃기고 야자 안 하는 애? (웃음) 수업 시간이 굉장히 재미없게 흘러가는 순간에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 야자를 하기 싫어서 선생님이 퇴근하는 타이밍에 뒷길로 나간다거나, 입술을 하얗게 만들어서 아프다며 조퇴하고 그랬다. (웃음) 그때 한창 아이돌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EBS 강의를 받아두는 PMP에 무대 영상을 넣어서 친구들과 보기도 했다. 당시에 빅뱅을 좋아해서 점심시간에 노래 틀어놓고 춤추고, TV에 연결시켜서 반 아이들이랑 영상을 감상하기도 했다. 참 오랜만에 꺼내는 기억이다.

그러다 체대를 준비했던 걸로 안다.
이주영
: 학교 안에 체육 입시를 준비하는 반이 따로 있었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보니까 그들은 야자를 하지 않고 항상 밖에서 재밌게 운동을 하기에 “오, 저거 괜찮은데?” 싶어서 들어가게 됐다.

운동도 정해진 스케줄이 있고 규율이 엄격한데, 그때는 반항심이 안 생겼나.
이주영
: 운동할 때는 성취감이 있었다. 하다 보면 계속 느는 게 눈에도 보여서 생각보다 열심히 하게 되더라. 시작하고 반년 정도 아침·점심으로 두 타임, 방학 때는 하루 세 타임씩 힘들게 운동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그렇지 않은데 끌려가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스스로 끌리고 성취해가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드니 열심히 하게 됐다.

그래서 공부가 아닌 운동으로 대학에 가게 된 건가.
이주영
: 아니. 운동을 6개월 동안 했는데 운동 시험도, 수능도 안 보고 논술로만 대학을 갔다. 다들 수시를 몇 군데씩 넣기에 나도 넣긴 해야 하나 싶어서 딱 한 군데, 경희대 체육학과 시험을 봤는데, 그게 붙은 거다. 9월에 대학 입시가 끝나 버렸다.

그런데 2학년 때 연극영화과로 전과를 했다.
이주영
: 강의계획서를 보고 “이건 좀 재미있겠다”고 가볍게 생각하며 ‘연극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신청했다. 원래 대학 들어가기 전에는 연극을 접해본 적도 없었는데, 수업 때문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게 되면서 매력을 느끼게 됐다. 약간 새로운 세계랄까. 그러다가 “내가 저걸 해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거지.

연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였나.
이주영
: 나도 나를 되돌아보다가 생각난 기억인데, 중3 때 연기 오디션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인 게 “재미있겠다. 저런 것도 있네?” 싶으면 아무 생각 없이 해본다. 예전에는 갑자기 노래와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 학원을 등록하고 심지어 휴학까지 했다. 수원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에 나가 노래로 인기상을 받은 적도 있다. 처음부터 연기를 진지하게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막상 체대에 입학했는데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대학 생활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연기를 해볼 수도 있겠다, 한번 해볼까?” 하고 두루뭉술하게 시작한 거다. 전과가 안 되면 다시 다른 걸 생각해봐야지 하던 참이었는데 전과에 성공했다. 부모님께 얘기도 안 하고 혼자서 내린 결정이었다. 부모님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하기 원하셨는데, 논술로 대학에 붙고 나서는 그냥 믿어주시고 딱히 날 컨트롤하지 않으시거든. “엄마, 나 그냥 연기해볼까 해서 전과했어”라고 하니 “아, 그래? 해봐”라고 하시더라. (웃음)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
이주영
: 처음에는 약간 이방인 같은 존재라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3학년 때는 더 나아지고, 4학년 때는 졸업 준비를 하면서 또 나아졌다. 그렇게 적응하다 보니 이것저것 해본 것 중에 결국 연기가 나한테 가장 크게 다가오더라. 결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다. 난 연기를 잘할 거고, 잘될 거라는.

그 믿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주영
: 연기라는 것은 나를 돌아보게 해주고, 이면적인 부분도 발견하고, 나 자신을 정화하게 해준다. 연기를 통해서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나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다 보니 연기에 올인할 수 있게 되더라. 앞으로 내가 꽃길만 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 또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고,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그냥 지금 내가 느끼는 감사함과 작품으로 순수하게 행복할 수 있는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것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만족, 내 행복을 위해 작업을 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다.




관련포토

목록

SPECIAL

image [신혼일기]

MAGAZINE

  • imageVol.168
  • imageVol.167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