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두 개의 한국], 순실 goes to Pyongyang

2016.10.28
1968년 미국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은 반공의 아이콘이었다. 닉슨이 얼마나 공산주의자를 싫어하는지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 닉슨이 1972년에 난데없이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해낸다. 중국이라니! 소련과 더불어 공산 진영의 양대 맹주이자, 문화대혁명이라는 (집단 정신착란으로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이념의 대부흥회 한가운데를 통과하던 나라다. 닉슨의 중국 방문은 냉전의 날이 무뎌지는 1970년대 데탕트(긴장 완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우리 편 대장’이 반대파의 아젠다를 과감히 들고나올 때, 그걸 지켜보는 기존 지지층은 좀 당황하지만 적어도 대장이 배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골수 반공주의자 닉슨은 공산주의에 투항한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 중국에 갈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노선을 의심받는 정치인이라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이후 미국 정치의 관용구로 “Nixon goes to China”(닉슨이 중국에 가다)라는 말이 생겼다. 신념이 확고하다고 지지층에 인정받는 지도자일수록 오히려 반대 노선을 택할 권한이 커진다. 역사는 이럴 때 움직인다.

남북관계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베테랑 저널리스트 돈 오버도퍼와 동아시아 전문가 로버트 칼린이 쓴 [두 개의 한국]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 정부의 속사정까지 보여주는 이 분야의 필독서다. 오버도퍼와 칼린이 묘사하는 남북 관계사를 읽다 보면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남한의 여론에서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은 인기가 좋았던 적이 사실상 없다. 역대 남한의 정치 지도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추구하는 담대한 구상과 여론에 인기가 좋은 대북 강경책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요구받아왔다.

노태우 정부는 남북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에 성공한 한국 외교의 대전환기였다. 쿠데타의 2인자로 이념적 의심에서 자유로웠던 노태우는 공산권을 향한 구애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반면 후임자인 김영삼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여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라 들쭉날쭉하고 혼란스러웠으며, 강경노선으로 대책 없이 치닫곤 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가 가장 전쟁에 가까이 다가갔던 시기가 이때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북한만큼이나 김영삼 정부를 골칫거리로 생각했다. [두 개의 한국]은 국제무대의 외교행위와 국내정치의 압력이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는 입체적 시야를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을 때 남북문제를 고민하던 이들의 기대는 이런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남북 화해를 시도할 때 여론의 저항이 가장 적을 정치인 한 명을 꼽는다면, 그게 박근혜다. 한국 보수의 뿌리를 만들다시피 한 박정희의 딸에 ‘종북’ 딱지를 붙일 보수파는 없다. 지지층으로부터 강한 신뢰를 받는 민주국가의 지도자는, 지지층의 반대편에 설 때 진정으로 역사를 움직일 드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보수파 중에서도 적통인 박근혜 정부라면, “근혜 goes to Pyongyang”은 담대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구상이다. 그런 기대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단히 헛다리를 짚은 셈이다. 정말로 필요했던 담대한 구상은 아무래도 “순실 goes to Pyongyang”이었던 모양이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14개월 동안 사회 기사를 썼다. 2016년 1월부터 경제와 국제를 취재한다. 쟤도 뭐 하나는 사람답게 하는 게 있겠거니 기대를 버리지 않는 조직에 점점 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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