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광풍, 작은 영화 사이의 의자놀이

2016.10.27
과장이 아니다. 재개봉 광풍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면 작년에만 재개봉작이 100편이 넘었고, 올해도 그 바람은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재개봉해 49만 명을 모은 [이터널 선샤인] 신드롬이 불을 지폈다. 또한 [칠드런 오브 맨], [환상의 빛]처럼 유명 감독의 중요한 필모그래피 중 하나이지만 국내 개봉을 하지 않았던 영화의 개봉 넓게 보면 재개봉 붐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재개봉작들은 저마다 명분이 있다. 탄생 몇 주 년 기념, 디지털 리마스터링, 확장판, 감독판, 무삭제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 영화들은 어떤 기준으로 재개봉이 결정되었을까. 재개봉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앞서 말한 [이터널 선샤인]이나 [500일의 썸머], [비포 선라이즈], [러브레터], 최근 재개봉한 [노트북] 등 멜로 장르나 [인생은 아름다워], [포레스트 검프], [죽은 시인의 사회] 등 휴먼 드라마 장르가 주를 이룬다. 스타일적으로 시류를 타지 않고 세월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풍미가 더해지는, 유효기간이 긴 장르들이다.

하지만 한 발 더 들어가면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사이즈가 큰 장르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개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장르 영화들은 할리우드 직배사의 영화들이다. 그러나 직배사의 경우 본사를 통한 재개봉 절차가 신작 개봉 절차와 엇비슷할 정도로 복잡하다. 설령 재개봉을 한다고 해도 신작 개봉 때만큼 매머드 급 상영관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그들이 보기엔 작은 한국 시장의 더 작은 일부인 재개봉 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지금으로선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재개봉 매뉴얼이 시스템화되거나 극장과 안정적인 장기 플랜이 세워진다면 직배사 영화가 재개봉 시장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개봉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는 영화들이 재개봉작으로 극장에 걸릴 때 생긴다. 물론 해당 수입사가 재개봉에 대한 의지가 있고, 관객 니즈, 시장 상황 등 여러 요인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정이겠지만, ‘판권이 아직 유효한 시점’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요인일 것이다. 통상적으로 영화 판권의 기간은 7년이다. 그 기간 안에는 다시 영화를 상영해도 된다. 즉, 더 지불해야 할 판권비가 없다. 재개봉의 경우 판권비 포함 일반적으로 손익분기점을 1만 명으로 보는데, 이 경우 홍보마케팅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관객 숫자만 넘겨도 거뜬히 남는 장사다.

관객 입장이라면 이러한 붐이 반가울 수 있다. 극장에서 볼 영화가 다양해지고, 과거에 극장에서 놓쳤던 영화나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공유하는 경험도 큰 즐거움이다. 게다가 신작이 신뢰할 만한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이 아니거나, 입소문이 별로거나, 사전 정보가 제한적인 경우에는 신작을 보느니 차라리 재미와 작품성이 보장된 재개봉작을 보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대체로 유행처럼 번져버린 재개봉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재개봉작이 일반 상영관은 물론 다양성영화 상영관까지 호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든 해외영화든 예산과 규모가 작고 화제성이 부족한 영화들은 이런 재개봉작의 위치가 상당히 위협적이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심지어 “이 경향이 혐오스럽다”라고 말한다. 그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의 좋은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사명감으로 수입사를 운영하는 영화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문화가 아닌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부가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시장 상황상 재개봉에 대한 유혹도 있지만 시장 질서를 위해 의미 없는 재개봉은 지양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영화 홍보마케터는 “재개봉 상영 시 포스터조차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도 많다. 시장이 안이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영화 홍보마케터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흥행으로 아트버스터 시장이 열리면서 과거 인기가 많았던 재개봉작으로 그 시장 진입을 노리는 공급층이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재개봉 판권은 신작에 비해 구입가가 낮고 인지도와 호감도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홍보마케팅 비용 또한 절감할 수 있다. 또 극장 재개봉이라는 이슈를 통해 부가판권 시장에서도 추가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가성비’가 높은 구조다. 극장에서는 대작이나 화제작이 없는 비수기에 이미 시장에서 입증된 바 있는 재개봉작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내건다. 한 극장 관계자는 “물론 더 많은 신작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극장을 찾는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도 극장 입장에서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위 ‘중박 영화’가 사라지고 블록버스터와 몸집이 작은 다양성영화만 존재하는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그 기저에 있을 것이다. 검증된 콘텐츠에 어느 정도 부축받아야 할 만큼 분명 시장은 위축되어 있다. 한 영화제작자는 “극장이나 수입사는 눈앞의 수익만 보는 것일 뿐 사실상 제 살 깎아 먹기”라고 강조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일견 극장에서 더 다양한 영화를 만나고 있는 것처럼 체감하겠지만, 대신 그만큼의 신작을 덜 만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 영화감독은 “무분별한 재개봉은 결과적으로 영화계 전체의 자살행위”라고 호소했는데,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는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상영관 숫자와 좋은 시간표의 확보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등 다양성영화에는 절실한 생존의 문제다. 사실 성수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대형 투자배급사의 독과점 논란은 이젠 고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것은 세련되게 잘 빚어진 화술과 시장 논리라는 합리로 이미 견고한 성벽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재개봉 사안은 작은 영화 간의 의자놀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상영관은 한정돼 있고, 그마저 재개봉작에 신작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이 안전한 길을 추구하게 되면, 신작에 대한 니즈도, 더 나아가 낯선 콘텐츠에 대한 모험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길게 보면 시장은 제 스스로 관객층을 축소하는 중이다. 영화의 재개봉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몇몇 재개봉작의 성공으로 우후죽순 재개봉작을 내거는 지금의 행태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새로운 창작물이 움틀 자리를, 보호받을 그 가능성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큰 영화들의 압력으로 가뜩이나 소외된 작은 영화들이 한 뼘의 이득을 두고 서로 다퉈야 하는 상황 자체가 지금 우리가 보듬어야 할 한국영화계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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