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_내_성폭력│② ‘미술계’에서 여성작가로 살아가기

2016.11.01
지난 10월 21일, SNS에서는 일민미술관 함영준 큐레이터가 여성 작가들 및 다수의 여성들에 대해 성희롱과 성추행을 해 왔다는 폭로가 줄을 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일민미술관 측은 함 큐레이터를 사직 처리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큐레이터, 작가, 기획자 등 여러 미술계 남성 인사들의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문화예술계 내에서의 성폭력은 문단, 영화계, 클래식계 등 분야를 막론하고 발생하지만, 작가와 대중 사이에서 큐레이터, 평론가가 큰 영향력을 갖는 미술계의 특성은 그 구조의 가장 하위에 있는 젊은 여성 작가들을 더욱 무력화시킨다. 한 신인 여성작가는 “여성 작가나 기획자들은 분노하고 답답해한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성이고 그들 대부분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공론화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즈]에서는 그에게 남성 중심적인 미술계의 분위기가 창작자로서의 여성을 어떻게 긴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억압하는지에 대해 들었다.


# 학교
미대에 입학하고 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한 것은 첫 만남의 어색함이나 낯선 장소의 공기 따위가 아니었다. 실기실 앞에 쌓여 통행을 방해하던 석고 포대를 치우려 할 때, 선배는 굳이 많지도 않은 남학생들을 끌어 모아 그 일을 대신해줬다. 여초집단임에도 철저하게 나눠진 성역할들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걸 왜 여자애가 해”라는 말은 처음엔 고맙고 달콤했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선배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되었다. “니네는 가르쳐줘도 몰라, 내가 해주는 게 더 빨라.”

친구들이 작업량이 부진하거나 학교생활에 소홀해지면, 남성 교수는 “요즘 연애 하냐”며 물어왔다. 이어서 누구와 연애를 하는지, 연하인지 연상인지 귀찮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연애가 끝나면 끝나는 대로 불편한 질문들이 계속됐다. 졸업이 가까워왔을 때, 진로상담을 구실로 내게 시시콜콜한 것을 질문하던 교수는 내가 같은 전공의 남학생과 연애중이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되도록 건실한 직장인을 만나는 게 어때? 검사, 의사 같은 ‘사’자 직업이면 더 좋고. 나중에 신랑 친구들한테 너나 네 친구들 그림 좀 팔아 달라 그래.” 늦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 온 같은 과 언니에겐 줄곧 남편이 작업하는 것에 돈을 대 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여성이, 스스로 힘으로는 작업해서 먹고 살 수 없다고, 돈 있고 뒤가 든든한 남편이 있어야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걸까. 미대를 다니는 내내 나는 이렇게 여자가 많은데 왜 교수나 이름난 작가들은 대부분 남자일까 걱정스러웠고 또 궁금했다. 학부 시절이 끝날 즈음 나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데뷔
학교라는 사회는 생각보다 폐쇄적이어서, 실기실 안에서 성실히 작업만 한다고 주목받기 힘들다. 외부의 요청을 받은 교수의 추천이나 수업과정 중에 오가는 외부강사들(선배작가, 평론가, 기획자)의 눈에 드는 것이 미술계에 노출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기회를 차치하고서라도 아직 데뷔하지 못한 학생으로서 현장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다.

문제는 그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선생-학생의 관계보다는 전문가-비전문가의 관계, 나아가 평가하는 자와 평가 받는 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학생 신분일 때 작업에 대한 확신, 작가가 된다는 것의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 앞에 선다는 것은 꽤나 두려운 일이다. 이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업 외적의 불미스러운 일들은 자연스럽게 묻혀 진다. 수업 후 가진 술자리에서, 굳이 여학생 틈에 가 앉으려 하거나 가벼운(어디까지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스킨십이나 볼 뽀뽀를 하는 어떤 평론가의 행동은 ‘쿨함’이나 ‘자유분방함’으로 포장된다. 현장에서 직면하는 불쾌감들은 오롯이 학생들의 몫이다. 내가 너무 쿨하지 못하고 예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속앓이를 동석했던 여학생들에게 털어 놓았을 때, 모두가 비슷한 감정들을 공유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책은 끝이 났다.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관계자의 귀가 없는 사석에서, 혹은 단톡방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분노에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이 나곤 했다.

교수라는 직함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들 역시 미술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특히 졸업자격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 학생시절에는 현장의 전문가들만큼이나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주 일반적으로는 사제지간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따뜻(?)하게는 딸 같다는 이유로 ‘살갑게’ 구는 그들 앞에서 정색하기란 쉽지 않다.

# 현장 1
내가 현장에 진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술자리 문화’였다. 대부분의 전시는 오프닝 이후 술자리를 갖는다. 예술의 ‘술’자가 술(術)이 아닌 술(酒)이라는 농담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뒤풀이 자리에서는 술잔치가 벌어진다. 술자리는 사실 분위기를 유연하게 해주지만 그 유연한 분위기는 서로가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들까지도 흔들어 놓는다. 대부분의 술자리는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그 안에서 여성작가는 술을 잘 즐겨도, 못 즐겨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신인여성작가인 나는 분명히 불편하면서도, 그 분위기 속에서 내색할 수 없다. 언젠가 붐비는 좌석에서 앉을 자리를 찾던 내게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 여기 앉겠냐는 농담을 건네는 남성 기획자 앞에서 그것이 성추행이라고 언급-그것도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과 어투로 했다가 “네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하겠다”며 되레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이후 다른 자리에서 같은 장면을 목격했지만, 오히려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 그나마 용기를 내서 지나간 불편함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 술에 취해 한 실수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너스레로 대답을 돌려받았다.

나는 미술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겪었던 셀 수도 없는 불쾌한 경험들이 싫어 그 자리를 피해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태도는 ‘사회성 부족’이라는 꼬리표로 따라왔다. 실제로 전시와 관련된 술자리에서는 많은 관계망들이 새롭게 형성된다. 작가들은 사적으로 친분이 없는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자연스럽게 노출 시킬 수도 있다. 선배들은 전시도, 기획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연한 만남이 어떤 기회가 될지 모른다며 나를 달랬다. 그러면서도 작업만 좋으면 다 된다는 첨언은, 허망하게만 들렸다.

# 현장 2
미술계에서 작가로서 주목받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이나 인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평론가나 기획자들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부분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은 이들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앞으로의 작업들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우연히 나는 내 작업을 영향력 있는 기획자에게 소개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 또래의 동료작가들과 함께였고, 공교롭게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그 (남성)기획자는 일상의 경험을 소재로 삼은 내 작업의 말하기 방식을 두고 ‘여자들 작업’이라 평가했다. 아직 어리고, 시야가 좁아서 그렇지 나중엔 더 크고 중대한 문제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다른 동료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평가할 때도, 그의 문제의식은 어리고, 여성적이어서 작업이 부진하다는 데에 닿아 있었다. 한 기획자의 의견이라고 하고 흘려듣기엔, 미술계 내에서 ‘여성적인 말하기’ 방식을 선택하는 작가에게 쏟아지는 평들은 부정적으로 소비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것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미술계의 흐름에 반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부족함 보다는 ‘여성적’이라는 젠더적 정체성에 대한 평가 절하라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일까.

# 미래
나와 함께 졸업한 동기들 중에 작가의 길에 들어선 친구는 셋, 선배들은 이마저도 10년 내로 정리될 거라고 한다. 이 일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성별을 막론하고 모든 신인 작가에게 주어진 두려움이자 숙제다. 본질을 탐구한다는 것, 10년 후에 탈 수 있는 적금처럼 분명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와중에 여성인 내게 던져진 또 다른 문제는 결혼, 임신, 육아와 같은 것들이다. 작가인 남자친구와 긴 연애를 해온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둘 다 작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들을 많이 들었다. 순간 우리가 만약 결혼을 하고, 어떤 현실적인 문제로 둘 중 하나가 작업을 포기해야 할 때, 내가 그만둬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아내가 작업을 하고 남편이 다른 일을 선택했다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고, 주변에 적지 않은 부부 작가들의 경우에도 출산과 육아문제 앞에선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의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여성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인생이 원래 다 그렇다고, 딸아이처럼 나를 어르던 그 선배. 선배, 원래 그런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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