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_내_성폭력│① 여중생 A, B, C의 사정

2016.11.01
웹툰 [여중생 A](허5파6/네이버)의 주인공이자 중3인 미래에게 개학은 “지옥의 시작”이다. 가정 폭력과 빈곤에 지친 그에게 학교에서 관계를 맺고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다.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시혜적 태도를 완강히 거부하는 그를 다수의 반 아이들은 ‘또라이’라 부르며 멀리하고, 그럴수록 그는 온라인 게임과 길드에서의 친목에 집중한다. 그의 게임 아이디는 ‘다크666’. 여자인 걸 숨기고 길드에서 활약하는 ‘다크666’을 길드원들은 길드마스터 다음으로 인정해준다. 미래는 생각한다. “내가 진실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처럼 현실의 돌파구라 생각한 가상세계의 뒤에는 언제나 현실세계의 음습한 폭력성이 웅크리고 있다. 미래가 연애 감정 비슷한 걸 느끼며 동경했던 길드마스터 오빠는 ‘OO녀’ 사건 같은 것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유포하는 인간이다. 코스튬플레이(이하 코스프레)를 즐기는 같은 반의 하늘 역시 유키라는 닉네임으로 현실의 자신과 다른 세계를 살지만, 또한 그를 찍어주는 사진사이자 성인인 남성은 하늘을 비롯한 미성년들과 연애 관계를 맺고 종종 야한 포즈의 사진을 요구한다.

이 이야기들은 가상세계를 찢고 들어서는 현실 폭력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니다. 최근 서브컬처 영역에서 활동하는 한 성인 남성이 같이 활동하는 십 대 초반의 여성 유저에게 SNS로 성적인 농담과 요구를 한 것이 알려지며 [여중생 A]의 장면 장면이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었다. 해당 남성이 쓴 것으로 알려진 과도하게 화려한 카우보이 모자와 만화 속 남성 사진사의 모자가 완벽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이룬 건 덤이다. 하지만 픽션인 [여중생 A]가 현실에 대한 앞선 예언이라 말할 수는 없다. 현실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폭력, 그것도 대부분 미성년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인 폭력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네이버웹툰이라는 대중적인 지면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그리고 이제, 이 이슈는 만화의 사건이 아닌 현실의 이슈로서 가시화되었다. 앞서의 사건과 함께 해당 분야에서 벌어진 다양한 성폭력이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트위터 해시태그와 함께 폭로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십 대가 된 ‘여중생 B’도 이 폭로에 합류했다. 당시 건강이 안 좋아 오랜 통원 생활을 하며 학교에서 친분을 쌓지 못했던 그는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걸 그룹과 애니메이션 팬 활동을 했다. 이 서비스에서 최대의 화력을 자랑하고 B 같은 소수 팬덤을 공격하던 소위 ‘팸’이라 불리는 무리 중 하나가 B에게 접근했다. ‘팸’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그는 B가 좋아하는 걸 그룹에 대한 공통분모로 친분을 쌓자 ‘팸’으로부터 B를 비호해주었고, B는 어느 정도 그를 동경했다. 그러다 해당 서비스가 종료되자 둘은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걸 그룹의 일본 앨범도 사다 주고 자연스레 손도 잡았고, 만날 때마다 자기 동네까지 오라고 했지만, 한 번도 남자에게선 사귀는 사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종종 남자는 B를 자기 집으로 불렀고, 그러다 동의 없는 성행위를 했다. 남자의 성적인 요구는 점점 과감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포르노 만화에서의 ‘배빵’, ‘신체 결손’의 모티브를 그는 B를 통해 실제로 구현하려는 듯했다(B는 다리에 장애가 있다). 종종 B의 장애 사실을 즐기는 듯한 말과 행동을 하고 ‘배빵’을 하고 그에 대한 리액션까지 요구하던 남자를 보며 B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귀는 것도 아니며 단지 착취할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관계를 끊었다.

이 심란한 이야기는, 하지만 [여중생 B]가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폭로 내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우선한다는 것과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놓은 서사로 접근하는 건 전혀 다른 맥락이다. 후자는 자칫 이야기를 피해자가 경험한 불행의 맥락에 위치시킨다. 우리는 길을 걷던 사람이 뺑소니 사고를 당했을 때,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서 있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그의 선택을 쫓는 건, 오히려 문제를 흐릿하게 만든다. 사건은 도덕적 책임의 주체인 가해자를 중심에 놓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핵심은 사고를 낸 가해자가 고의로 했는가, 고의였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 가능성의 조건은 무엇이었느냐다.

거의 모든 성폭력 문제가 그러하듯, #오타쿠_내_성폭력 역시 권력의 위계를 바탕으로 발생한다. 일련의 사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건 미성년 여성과 성인 남성의 비대칭 구도다. 가장 확실한 건 경제적인 능력의 차이다. B의 경우에도 가해자는 걸 그룹의 앨범이나 B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CD를 사줬고, B는 그가 자신에게 정말 잘해주고 싶었던 거라고 받아들였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의 돈을 쓸 생각이 있다면, 또한 상대방의 취향까지 안다면 접근은 훨씬 쉬워진다.

경우는 많이 다르지만 이제는 삼십 대인 또 다른 제보자 ‘여고생 C’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1990년대 말 PC통신을 통해 만화 동호회 활동을 하던 C는 유일한 삼십 대였던 남성의 접근을 받았다. 동호회에 나올 때마다 신규 회원과 연락처를 주고받던 그는 C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잠시 만남을 가졌고, 찜찜해하는 C에게 남는 MP3 플레이어를 공짜로 주겠노라며 한 번 더 불러냈다. C가 어딘가 불안해서 친구를 동행했음에도 남자는 강제적인 스킨십을 시도한 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MP3를 놓고 도망쳤다. C는 “당시 MP3플레이어 하나에 10만 원은 했던 것 같은데 고등학생 용돈 평균이 3만 원이던 시절이니 꽤 고가품”이었다고 회상하며, 가해자가 자신을 포함한 4명의 여고생에게 똑같은 패턴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치밀하고 고의적이었음을 강조한다. 역시 지금은 성인인 흔치 않은 남성 제보자 ‘남고생 D’는 여장 코스프레를 하며 알게 된 삼십 대 초반 남자 사진사가 따로 사적으로 불러내 용돈도 주고 선물도 주는 것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피했다가, 나중에 다른 여성 코스튬플레이어(이하 코스어)의 블로그에서 그 사진사가 역시 그 여성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줄 테니 유사 성행위를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피해자들이 성인의 금전적 제안에 응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의 한 줌 재력을 무기 삼아 미성년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한 성인 남성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중생 A]에서 변태적인 개인의 문제처럼 그려졌던 코스어와 사진사의 관계는 사실 성년과 미성년의 재력 차이가 서브컬처 커뮤니티 안에서 구조적 비대칭으로 연결된 것에 가깝다. D의 지인이자 현재도 코스어로 활동 중인 E는 말한다. “당장 카메라는 미성년이 살 수 없는 고가품이잖아요.” 돈을 버는 성인에게 DSLR 카메라는 큰맘 먹고 지르는 것일 수 있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미성년에게는 그냥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재력의 문제는 많고 적고의 차이가 아니라 있고 없고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사진사와 코스어는 어떤 면에선 계급적인 구분이다. 코스어가 아무리 얼굴이 캐릭터와 흡사하고, 화장이 잘 받고, 의상을 잘 꾸민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의 결과물로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유통되려면 결국 사진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성년은 사진사가 될 수 없다. 사진사가 근본적으로 코스어에게 접근하기 위해 DSLR을 구입한 이들은 아닐 것이다. 다만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이가 있다고 해도 피하거나 배제하긴 어렵다.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서 어쨌든 사진이 잘 나오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침대나 욕조 촬영을 위해 모텔로 가는 경우, 사진사가 더 좋은 사진을 위해 셔츠의 단추를 하나 더 풀자고 할 때, 속바지를 벗자고 할 때, 코스어는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응하는 경우가 많다. 열일곱부터 코스프레를 시작했던 ‘여대생 F’는 행사장에서 처음 본 사진사로부터 소위 ‘수위 사진(노출 수위가 높은 사진)’을 요구당한 경험이 있다. 어디까지가 성희롱과 성 착취이며, 어디까지가 프로페셔널한 요구인가. 의미 없는 질문이다. 핵심은 모호함이 아니라 그 모호함에 코스어, 상대적으로 어리고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은 집단이 웬만하면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사는 최근 여성 사진사가 늘어나 남녀 비율이 그나마 7 대 3, 코스어는 뒤집혀서 여남 비율이 7 대 3 정도로 추정된다.

모호함이라고 했지만 여기에 고의성이 더해진다면 이것은 교활함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오타쿠_내_성폭력 이후 수많은 분야에서 벌어진 성폭력 폭로는 수많은 남성들이 법적인 의미에서의 강간이나 성추행에는 걸리지 않을 만한 경계에서 알리바이를 챙겨가며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려 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 모든 것이 폭로의 형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자신이 당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피해자의 자각과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면 이것들은 가해자들이 원했던 경계의 모호함 안에 삼켜질 뿐이다. 그 경계선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질문하는 건 가해자들이 만든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그보다는 과연 그들이 어떻게 모호함을 만들어냈는지, 그 음험한 연막의 테크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중생 A]에서 사진사는 하늘에게 “랄까, 하늘 양. 오늘은 오빠 집에서 노는 건 어떠신지요”라는 문자를 보낸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성적 욕망은 일상에선 허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공손함 안에 포장되어 있다. 앞서 말했던 SNS에서의 사건에서도 이런 말투를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넌 어른이라고 말해주거든요.” 코스어 E는 말한다. 넌 이런 것도 좋아하는구나. 넌 어른이구나. 존중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해당 문장은 그 뒤 괄호에 숨은 (넌 어른이니까 OO하자)라는 의미로 완성된다. 넌 어른이니까 치마를 좀 더 올리는 게 어떨까. 속옷이 드러나는 포즈를 취하는 건 어떨까. 물리적으로 억지로 가해하는 것뿐 아니라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응할 때까지 압박하는 것도 강압이고 가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행동했다고 떠넘길 수 있다. 서브컬처계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권력의 비대칭 양태인 ‘존잘’과 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E의 표현을 빌리면 ‘찻잔 속의 아이돌’인 녹음계, 코스프레계 ‘존잘’은 여차하면 트위터 맞팔도 가능하고 행사장에서 만나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D의 증언에 따르면 꽤 잘나가는 남자 코스어가 자신을 좋아하는 여성 코스어와 성행위를 한 뒤, SNS 비밀 계정으로는 그 여성이 헤프다는 식으로 유포해 2차 가해를 가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존중받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지만 한국의 청소년으로선 채우기 어려운 욕망을, 가해자들은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오타쿠_내_성폭력 문제를 청소년 문제라는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청소년 서브컬처 오타쿠가 항상 [여중생 A]의 미래나 ‘여중생 B’처럼 원만한 학교생활과 거리가 먼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브컬처를 좋아한다는 건 동급생들에게 별종으로 찍히는 계기가 되었다. 성인이 된 현재도 코스어로 활동하는 ‘여고생 G’는 당시 학원을 운영하던 어머니에게 자신의 코스프레 사실을 알리던 친구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선생님, G가 ‘나쁜 짓’을 하고 다녀요.” G는 새벽에 자다가 불려 나와 아버지에게 맞고 도망쳐야 했지만, 학교에서도 ‘왕따’였다. G를 비롯한 제보자 상당수는 마음에 어둠이 있는 청소년일수록 현실 도피로서의 서브컬처에 빠지기 쉽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연결고리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현실의 우울을 잊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의 빛나는 청춘이나 새로운 자아를 꾸밀 수 있는 코스프레는 효과적인 진통제이며, 반대로 해당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과 소비에 대해 오타쿠를 멸칭으로 사용하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입시에 특화된 한국의 학교는 학생들이 자존감을 키우기엔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구멍 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서브컬처에 빠져드는 건 ‘나쁜 짓’이 된다. 좋게 봐줘야 별종이다. 그러다 ‘여고생 G’는 자신을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어른을 만난다. 코스프레뿐 아니라 녹음 활동도 했던 그는 성우 관련 커뮤니티에서 보이스톡으로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녹음 커뮤니티 사람답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고, G를 좋아해주는 것 같았다. ‘여중생 B’의 경우와 비슷하게 G 역시 남자를 동경했고 남자는 노출 사진이나 목소리를 통한 유사 성행위를 요구했다. 이상했지만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오프라인에서 만나 세 번의 성행위에 응해준 뒤, 남자의 연락은 끊겼다. 문제는 성적인 착취를 당했음에도 당시의 G는 스스로를 자책했다는 것이다. 내가 나빠서 오빠가 날 버린 거야, 라고.

G와 E 등은 #오타쿠_내_성폭력이 다른 분야보다 청소년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게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청소년의 미성숙함 문제로 환원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첫째, 또다시 문제를 피해자의 처신 문제로 돌리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며, 둘째, 근본적으로 청소년에게서 자존감을 뺏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에는 무관심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자아를 형성해가는 동시대 십 대의 고민은 기성세대에 의해 ‘중2병’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이것은 부당하다. 당장 기성세대가 사춘기의 열병을 앓을 때 읽었던 [데미안] 같은 소설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완벽한 ‘중2병’ 텍스트다. ‘카인의 표식’이라니. 대체 ‘흑염룡’과 얼마나 다르다는 건가. 문제는 청소년의 미성숙함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감을 빼앗는 생활세계의 무심함과 그 빈틈을 노리고 접근하는 음험하고 악한 어른들이다. 여기서 서브컬처 커뮤니티는 안전장치가 부족하니 아이들을 격리시키자고 말한다면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오히려 당사자들은 서브컬처를 좋아하고 즐기는 걸 어른들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오타쿠_내_성폭력 문제를 더 키웠다고 생각한다. 거기 소속되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분위기에서 그 안에서 벌어진 일, 그것도 한국에선 피해자의 수치심을 강조하는 일에 대해 밝히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에서 배제시켰던 B, C, D 등을 다시 주인공으로 호명해야 하는 건 이 지점이다. 앞서 피해를 입고도 자신이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던 G가 자책에서 벗어나 자신이 당한 일을 깨달은 건, 몇 년 뒤 가해자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착취당한 여성이 둘이나 더 있다는 걸, 그것도 본인과 비슷한 시기에 그랬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내가 나빠서, 내가 미성숙해서, 내가 안 좋은 문화에 빠져서 그렇게 됐다는 생각은 가해자가 나쁜 놈이라서 그렇게 됐다는 훨씬 명징한 설명으로 대체된다. 폭로는 그 자체로 실용적인 고발인 동시에, 무력한 피해자 서사에서 객체화됐던 이들이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을 자신 입장에서 발화하고 다시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과정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장 사각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터져 나온 #오타쿠_내_성폭력 해시태그는 수많은 분야로 확장되며 가해자들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고 더 많은 폭로를 이끌어내고 있다. 끔찍한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호할 일은 아니겠지만, 분명 이들 폭로자들은 새롭게 쓰이는 승리의 서사의 저자이자 주인공이다. 물론 폭로 이후 제도적인 보완과 다양한 각론이 필요하다. 정작 이 운동의 시발점이 된 서브컬처 쪽에서는 너무 점조직이라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고민도 나오고 있다. 결코 작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결국 가해자들이 가해를 안 저지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G와 E의 태도는 이미 많은 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며 이것은 내가 즐기는 문화고, 문제가 생긴다면 나와 문화가 아닌, 문제를 일으킨 놈들을 제재하고 그 배경을 비판해야 한다는 이 당연한 사고의 고리는 앞으로 차차 진행될 모든 문제 해결 과정의 일차 원칙이 될 것이다. 그들은 결코 무기력한 ‘여중생 A’가 아니다. 알아두길, 잠재적 가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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