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방], ★★★☆ 침묵으로 말하는 연극

2016.11.02
연극 [두 개의 방_Two Rooms]
라이선스 초연│2016.10.20~11.13│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작: 리 블레싱│번역·연출: 이인수│무대미술: 여신동│배우: 전수지(레이니), 이승주(마이클), 배해선(엘렌), 이태구(워커)
줄거리: 마이클은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어 인질로 잡혀 있다. 수갑이 채워지고 눈이 가려진 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 갇힌 마이클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내 레이니에게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것뿐이다. 지구 반대편, 레이니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마이클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언론은 마이클을 특종거리로만 여긴다. 고통스러운 인내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레이니는 지쳐간다. 결국 신문기자 워커의 설득으로 방송 인터뷰에 나서게 되는데.

★★★☆ 침묵으로 말하는 연극
이야기는 고요한 물처럼 흘러간다. 담담한 독백과 배우들의 에너지만이 찰랑이는 물결처럼 파동할 뿐이다. 그러나 표피 아래, 알맹이만큼은 격렬하다. 두 시간 반 내내, 주인공 레이니는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어 있는 남편을 돌려받기 위해 홀로 싸운다. 이 과정에서 ‘테러’라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는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와 맞닿는다. 이 극명한 대비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작품이 미국의 극작가 리 블레싱(Lee Blessing)의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1970년대부터 우리 주변을 둘러싼 부조리한 사회와 그 사회를 딛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무수한 사회고발극들 틈에서 유독 그의 목소리가 굵직하게 들린 이유는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 작가는 극 안에서 희생자들의 입장, 정부의 입장, 미디어의 입장, 심지어는 테러리스트의 입장까지 하나로 아우른다. 이 소리 없는 아우성 틈에서 관객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게 될까?

PRODUCTION: 연극으로 인생을 전하는 사람들
시작, 한동안 빛도 소리도 없는 공간에 갇힌다. 그 공허가 불안해질 무렵 한줌 소리가 들려온다. 저 먼 곳에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깜깜하고 깊은 어둠이 울고 있는 소리 같기도 하다. 암전은 그 후로도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자주 등장한다. 장면과 장면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분절되고, 그렇게 탄생한 각각의 조각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담아낸다. 레이니, 마이클, 엘렌, 워커, 다시 레이니. 그들의 시점을 따라 파고들다 보면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서늘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다분히 문학적이다. 플롯과 인물, 대사 한 줄마저도 비유로 가득 차 있다. 2010년 창단 이후, 노네임씨어터컴퍼니(이하 노네임)는 상업성에 매몰되지 않고 마틴 맥도너와 엘렌 베넷 등 현대거장들의 영미 희곡을 무대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관객을 이해시키느냐’하는 과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으며, 번역가이자 윤색가로서 [필로우 맨], [히스토리 보이즈], [글로리아]를 함께 해온 이인수 연출은 적임자였다. 자연과학 교수인 레이니가 늪지에서 관찰한 휘파람새와 뻐꾸기를 통해, 운명과 희망을 논하는 대목에서는 작품을 직접 번역하며 보태진 깊이마저 묻어난다.

STAGE: 또 하나의 주인공, 무대
[두 개의 방]은 레이니와 마이클의 보금자리, 마이클이 갇혀 있는 레바논의 감옥을 오가며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방’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마이클과 레이나가 갇혀 있는 숨 막히게 고요한 진공 상태이자, 오롯이 둘만이 존재하는 안식처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이 방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무대디자이너 여신동은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으로 방을 완성한다. 정면으로 나 있는 문과 측면의 창문이 전부인 긴 네모꼴의 방. 매끈해서 차가운 느낌마저 드는 나무 벽과 회색조의 바닥, 소품은 오로지 바닥에 깔린 러그와 약간의 빛뿐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구조에서 도리어, 레이니가 신의 뜻을 발견하는 늪지대처럼 초월적인 공간이 탄생한다. 진정한 소통은 오로지 이 방을 통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레이니와 마이클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 생략만으로 신의 공간을 구현한 무대는 여신동 디자이너의 작품. 연출가로서의 여신동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대에 대한 그의 선택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REALITY: 역사는 반복된다
사전 지식 없이 [두개의 방]을 본다면 이 공연의 배경이 지금, 현재, 이곳일 거라고 생각한다. 매년 미국과 영국에서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지만, [두개의 방]은 엄연히 1988년생이다. 국내에서는 평화의 시기지만, 미국에서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당시 미국인들은 중동 지역에서 빈번히 납치로 희생당해도 정부는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고수할 뿐이었다. 정부는 소수의 희생은 감내해야 하는 대가쯤으로 여겼고, 언론은 특종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 테러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작금의 상황과 다른 점을 찾기가 더 힘들다. 사설을 여기까지만 더해도 충분할 테지만, 리 블레싱은 이러한 언급으로 방점을 찍는다. “잘 쓴 정치적인 연극은 유통기간이라는 것에 묶여 있지 않다. 1988년에 만든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아직도 관객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만성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분쟁 지역은 이동하고 변화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들과 우리의 방법도 달라졌지만 같은 퍼즐 조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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